그
시절, 소년소녀들은 왜 과학기술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나.
정재호(1971~)는 국가 주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서 번영과 발전, 즉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도시 풍경 이면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붉은 십자가로 뒤덮인 서울의 야경, 쇠락한 인천 차이나타운의 풍경, 한때는 서양식 삶의 표본으로 추앙받다가
철거 위기에 처한 1960~70년대 시범 아파트 단지 등을 통해 근대 도시와 건축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켜왔다. 작가는 국가가 개발도상국의 국민 모두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룰 밝은 미래를 꿈꾸도록 ‘권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을지로, 종로 등 도심에 위치한 당시 건축물의 표면을 기록하고, 같은 시기 발간된 정부간행물이나 공상과학만화, 신문기사 등에 등장하는
이미지 자료를 찾아 그림으로써 새로운 아카이브를 구성한다. 마지막으로 공상과학만화 〈요철 발명왕〉 속의
주인공이 결국은 실패했지만 달나라 여행을 위해 만들었던 로켓을 제작한다. 당시의 정부기록사진, 영화와 만화 등 대중문화 속에 남겨진 이미지들을 작가의 방식으로 그린 아카이브 회화 연작을 통해, 전체를 강조한 국가주의 문화 속에서 개개인에게 아로새겨진 특정한 사고방식과 관점을 드러내본다.
작가가 10대인 딸들과의 대화에서 더 이상 ‘우주 탐험’도, ‘천재 과학자’가 되는 것이 지금 시대 소년소녀의 꿈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역설적으로 “모든 소년소녀의 꿈이 달나라 여행이었던 시대”가 가진 부자연스러움을 생각한다. 공상과학만화의
한 장면 같은 정재호의 회화는 경제성장이 멈추고 경제적 위기의 위험을 겪은 이후 일어난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 즉
불가능한 것을 꿈꾸던 시대에서 가능한 것을 꿈꾸는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냉철한 기록이기도 하다. 정재호는
회화로 옮기기 위한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도시를 걷고, 관련 자료를 찾는 연구자의 태도를 취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직접 촬영한 작품을 위한 자료 사진 자료 아카이브가 관객들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이상의
작가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첫째,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과 관념들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에 따른 차별과 규범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서구의 한 국가가 임의로 정한 기준점에 따라 날짜가 변경되는 지점이 발생하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지 등을 묻는다.
둘째, 매체 중심의
장르 구분에 얽매이지 않는다. 영상에서 출발했지만 자연스럽게 공연의 형식으로 확장한 정은영, 퍼포먼스가 영상으로 기록되는 구민자와 옥인 콜렉티브, 회화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중립적이고 충실한 기록자가 되고자 하는 정재호 등 이들은 모두 스스로를 동시대의 예술가로 규정할 뿐이다.
셋째, 현대 예술의 의미나 역할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제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에게 예술은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대상이 아니라, 관객들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고 감각할 수 있는 인식적 전환의 계기에 가깝다.
이와 같은 공통점을 찾아보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의 상황 속에서 찾은 일시적인 상황일
뿐이다. 앞으로 여러 계기를 통해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알 수가 없다.
작업실과 미술관에서의 심사를 통해 선정된 이후 《올해의 작가상 2018》을
준비하면서 작가들은 ‘그동안의 작업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계기’로 삼거나, ‘결과는 잠시 잊고 그간 해보지
않았던 것을 맘껏 해보는 데서 오는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그간 이들의
작품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짚어줄 전시가 아니라, 우리가 이들에 대해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될 것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전시로 만들고자 한다. 그간의 활동을 통해 어느 정도 이
작가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렇지 않다고, 이제 시작이며, 우리는 더 깊이 더 오래 이들의 작품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