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작가님의 과거 작업 ‘space measurement’ 시리즈, ‘force-form’ 시리즈, ‘LOST FORM’ 시리즈에서도 그렇지만 작가님의 작업 이미지 속 인물의 신체와 그 신체가 놓인 공간의 관계가 궁금해집니다. 장소가 의미하는 바와 장소의 선정 기준, 거기에 위치하는 인물의 신체, 그리고 그 신체의 연극적 상황을 만듦에 있어서 주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CHANG: 먼저 장소와 관련해서는 작업방식을 설명해 드리는 것으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하고, 그 컨셉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물색합니다. 평소에 눈으로, 또는 핸드폰 사진으로 어떤 장소들을 담아두는 습관이 있어서 이것을 활용하고, 때로는 지인들에게도 부탁합니다. 특정 공간, 공공기관, 개인소유의 공간은 공문을 보내고 촬영 요청 및 문의를 하며, 외부의 공간은 포털 사이트의 지도도 이용하는 편입니다. 두 번째는 특정 장소, 공간을 봤을때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green hose〉(2012)는 마포구 합정동 언저리를 걷다가 발견한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일부러 길을 걷고는 하는데, 특이하게도 유럽식 창문과 한국식 창문이 뒤엉킨 여러 개의 창문을 가진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장소를 발견한 시기는 이른봄이었는데, 소복이 눈이 쌓인 광경을 보았습니다. 바로 촬영은 하지 않고 이듬해 겨울에 눈이 내리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폭설이 내린 날, 봄에 보았던 머릿속 이미지를 그대로 촬영했습니다. 잘 알려진 비스콘티 길 또한 같은 방법이었습니다. 이년 반 동안 매일매일 학교가는 길에 그 길을 지나쳤고, 한결같이 좋았던 것으로만 기억합니다. 삼 년쯤 됐을 때 한 영상이 불현듯 떠올랐고, 떠오른 그 그림을 최대한 반영하여 촬영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저의 작업방식 때문에 연극적인 상황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지극히 현실을 반영한 상상들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공간, 그곳에 실존하는 인체,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생성된 사물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재현하는 과정에서는 진실이지만 연기를 해야 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연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KIM: 이 질문은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작가님과 전시를 하게 된 주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흔히 얘기하는 사진을 위한 사진, 물질로서의 사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도구로서의 사진, 즉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범주 내에서 작가의 언어를 생산해내기 위한 주요한 도구로서 사진을 사용하는 작가로 보입니다. 사진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과 태도는 어떻게 논할 수 있을까요?
CHANG: 정말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있었습니다. 너무 편안한 답변이지만 겉치레 없이 대답 드립니다. 한국말로 직역하자면 조형미술학교 출신인 저는 시대적 흐름과 유행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상태로 많은 매체를 두루두루 경험했고, 방목에 가까운 상태로 자유롭게 작업을 했습니다. 즉 특정한 매체의 구속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가데뷔 이후가 특정적인 매체에 몰입했던 순간이었고, 저에게는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유롭고 성숙한 자세로 가능성은 열어두고자 합니다.
KIM: 위의 질문은 사진이라는 매체적 특수성에 기인하여 드린 질문입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는 작가로서 사진에 대한 작가적 입장을 묻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럼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또 다른 질문을 드려보자면, 본 전시 《Writing Play》는 현실에 존재하는 날것의 현장이나 현상보다는 이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 존재하지 않거나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을 연극적인 이미지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이나 모리야마 다이도(Daido Moriyama)와 같은 주요 사진작가들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사회의 이상적인 이미지 이면의 날것 그대로를 사진으로 기록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 사진작가들에게서 꾸준히 유지되어오는 태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가님은 오히려 이상적인 어떤 상을 조작 – 주입하는 미디어의 기능에 대한 비판이나 현실 고발적인 이미지로부터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리고 담아내고자 하는 그것, 그리고 지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CHANG: 이미 1960년대 사진 이후로 사진에 대한 매체적 실험과 고찰이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디지털화된 사진의 의미는 디지털 기술의 꾸준한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며 갱신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사진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이해가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매체적 실험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면서 예술, 또는 순수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일말의 의구심은 없었습니다. 세상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미술의 영역에서 영상작업이나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붓과 같은 도구가 더 다양해졌다고 생각될 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디오와 사진은 다른 분야에서 더 급격히 발전하고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으므로 순수미술의 범주 내에서 그러한 분야의 고찰까지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다양함을 더 넓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저의 태도는 옳다기보다는 당연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범위를 확장시켜 큰 사유를 해야 하는 것이 미술의 역할이고 한시적이나마 방향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성능이 좋은 카메라와 비디오를 휴대폰에 장착하여 모든 사람이 좋은 퀄리티의 촬영을 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해볼 때 작가로서 더욱 능동적이고 깊이 있는 자세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듯 사진이라는 매체는 다소 경직된 듯 보이며, 미술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되어 사진계라는 영역이 공고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제가 할 일이 있어서 기쁘기도 합니다. 기존에 없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상 갈등을 수반하기에 건강한 발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그 상황에 놓여 있음을 오히려 감사하며 이 갈등을 유연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샘플이 되면 좋겠지요. 이야기하다 보니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여 조심스럽긴 하지만 무플보단 악플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의 의견이 많길 기대해 봅니다.
제가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같습니다. “이상적인 것,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저의 말에 질문을 더해 하시니까 이 단어들이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네요. 다른 단어로 수정하고 싶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라 수습하겠습니다. 단어가 품은 거대한 의미는 아닌 것 같고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사진을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오래오래 이어져 갈 것이고 올해는 그것을 ‘감정을 담은 그릇’으로 표현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언급하신 작가들 때문에 떠오른 작가가 있습니다. 알프레드 스티클리츠 (Alfred Stieglitz, 1863-1946)의 ‘Equivalent’(1925-1931) 시리즈가 생각이 나는데요. 이 시리즈가 저의 의도를 대변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말씀드린 ‘이상적인 것’은 사진 한 장에 오롯한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자 했던 일종의 욕심 어린 의지에 대한 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설정 사진을 찍는 저는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목격하고 기록-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전면에 두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황을 ‘재현’하는 입장입니다. 한 개인으로, 그리고 한 작가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느끼고 관찰함으로써 미세했던 개별의 차이를 가시화시키고자 했고, 그 간극에서 익명의 개인이 이름을 얻게 되고, 공간이 장소가 되는 방법을 저만의 방식으로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KIM: 이번 전시 《Writing Play》에서 주목하는 ‘연극’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연극적인 상황의 이미지적 재현의 문제이기보다는 작품을 가로지르는 핵심적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특정 상황과 환경에서 취해야 하는 연극적인 태도와 그로부터 발화된 감정과 정서에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요?
CHANG: 가까운 과거에 저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 속 반복되는 몇 가지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연극’이라는 말로 갈무리가 가능한 지점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설정 사진을 주로 하던 저에게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이전과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고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그동안 입속에서만 맴돌았던 답답한 말이 시원하게 세상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저의 작업과 작업 사이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 혹은 그것을 지칭할 만한 언어적 키워드가 없었는데 비로소 작은 끈을 찾은 것이지요. 그것이 ‘연극’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면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예의나 예절에 가까우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본적인 조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Witching hour〉(2016) 작품을 보면 키를 키우거나 어깨를 넓어 보이게 하는 패드, 일명 ‘깔창’이라고 부르는 것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부속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대부분 속임수를 쓰려는 나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타인에게 자신을 잘 보이고자 하는 긍정적인 태도, 즉 긍정적인 연극적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꼭 보여지는 것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말투, 자세, 표정, 화장, 헤어스타일 등 겉으로 무수하게 드러나는 것들, 그것들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 풍기는 어떤 뉘앙스, 나와 나의 관계나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연극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평생 연극을 하며 살고, 그러한 연기를 하고 있는 이미지를 우리는 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란 결국 ‘연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