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Play》 전시전경 © 아마도예술공간

KIM: 안녕하세요. 우선 작가님의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CHANG: 대다수 사람이 일상생활의 범주 안에서 하는 행동과 그에 따라 느끼는 감정들은 대부분 동일할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물론 오차범위가 있겠지만, 특별하거나 특수한 경험을 제외하고는 잠을 자고,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청소하고, 일하는 과정들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어제와 비슷한 오늘의 행동을 하고, 비슷비슷한 감정 속에서 그날이 그날 같은, 잘 기억나지 않는 날들을 보낼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가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해내야만 할 때, 그것이 저번 주 화요일이였는지 더 오래전의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는 곤란함을 모두가 경험했을 거라고 확언할 수 있듯이 우리는 기억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실은 늘 미세하게 다른 동작을하고 늘 미세하게 다른 감정을 경험합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바로 이런 부분들입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어서 아주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넘겨 버린 것들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가벼우면서도 소중한 것들을 들추어내는 작업을 하고있습니다.

KIM: 우선 기존의 작업에서부터 질문을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장성은’이라는 작가의 일군의 작업 중에서도 가장 일반에 많이 노출된, 그래서 특히 강력하게 고착된 어떤 이미지로서 소비되었던 ‘space measurement’(2006-2011) 시리즈로부터 시작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거의 특정 시리즈로부터 질문을 시작하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보이는 작업에서도 꾸준히 견지하고 있는 어떤 시선에 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space measurement’ 시리즈에서도 두드러지지만, 개념적으로 봤을 때 장소나 공간에 대한 경험을 신체와의 관계를 통해 – 오브제화된 신체 또는 조각적 신체 – 드러내고 그것을 다시 사진으로 기록한다는 것, 그렇게 공간과 장소성을 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인식한다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에 집중하는 이유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CHANG: 한동안 미술계에서 ‘일상’이라는 단어를 지치도록 사용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지금 저의 답변과 많은 부분에서 내용적으로 연결되어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너무 많이 이용되어 너덜너덜해진 저 단어를 보면서 새로운 단어를 찾거나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 하지만, 여전히 전과 다를 게 없는 생활을 합니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것, 새로운 것을 희망하면서 살죠. 저의 작업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지켜보면서 미세한 차이들을 작품화한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들이 바탕이 되겠지만,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면을 배제할 수 없는 부분들도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space measurement’ 시리즈는 추상적인 언어의 사용에 의해 오히려 명료하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지점, 그러한 아이러니를 작품화했습니다.

작은 방, 넓은 도로, 푸르딩딩하다 등 이런 단어를 사용했을 때 우리는 찰떡같이 참 잘도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준’에서 그것이 작은 방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도,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합니다. 저는 ‘space measurement’ 시리즈에서 이와 같은 추상성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를 들면, 〈Rue Visconti〉(2006)는 ‘그 길의 너비는 19명이다.’라는 것을 작업으로 시각화했습니다. 결국, 그 길의 ‘넓이’를 수학적 측정 단위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19명’이라는 또 다른 추상성으로 그것을 재사유하여 제시하는 시도였습니다. ‘force-form’(2012) 시리즈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힘의 모습을 재현한 시리즈입니다. 가변적이고 볼 수 없었던 힘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고 공간과 인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힘,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없지만 그럴 것이라는 예측으로나 존재했던 것을 실제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LOST FORM’(2013)은 수영장이라는 장소를 지정하고, 그것을 연상해서 사진으로 표현한 시리즈입니다. 수영장이라는 실제 공간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동안 수영장이라는 장소에 대해 가슴속으로 품었던 상상이나 생각을 담은 사진인데, 일상적인 공간에 환상적인 분위기가 깊게 깔린 공간이 중첩되는 순간, 저는 그 공간으로부터 목숨의 높이를 보았습니다. 수영장 바닥에 잠수하였을 때 물의 수표면을 바라보며 그 높이를 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이렇게 저는 일관되게 추상적인 언어를 추상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함으로써 오히려 더 명료해지는 순간을 탐구해왔고, 올해에 선보이는 ‘Writing Play’(2016, 아마도예술공간) 시리즈도 같은 뿌리에서 자란 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Writing Play’는 가지보다는 나무의 몸통과 같은 역할이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지금까지 뿌리와 가지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면, ‘Writing Play’ 시리즈는 굵은 몸통에 해당하며 여기서부터 더 많은 가지를 뻗어 나갈 수 있는 지지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신체가 조각처럼 비치는 것에 대한 흥미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넓은 시각에서 이 지점을 돌이켜 보면 제가 사진을 대하는 태도와 전체 주제(공간과 신체)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성은, 〈green hose〉, 라이트젯 프린트, 140 x 93 cm © 장성은

KIM: 작가님의 과거 작업 ‘space measurement’ 시리즈, ‘force-form’ 시리즈, ‘LOST FORM’ 시리즈에서도 그렇지만 작가님의 작업 이미지 속 인물의 신체와 그 신체가 놓인 공간의 관계가 궁금해집니다. 장소가 의미하는 바와 장소의 선정 기준, 거기에 위치하는 인물의 신체, 그리고 그 신체의 연극적 상황을 만듦에 있어서 주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CHANG: 먼저 장소와 관련해서는 작업방식을 설명해 드리는 것으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하고, 그 컨셉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물색합니다. 평소에 눈으로, 또는 핸드폰 사진으로 어떤 장소들을 담아두는 습관이 있어서 이것을 활용하고, 때로는 지인들에게도 부탁합니다. 특정 공간, 공공기관, 개인소유의 공간은 공문을 보내고 촬영 요청 및 문의를 하며, 외부의 공간은 포털 사이트의 지도도 이용하는 편입니다. 두 번째는 특정 장소, 공간을 봤을때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green hose〉(2012)는 마포구 합정동 언저리를 걷다가 발견한 장소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일부러 길을 걷고는 하는데, 특이하게도 유럽식 창문과 한국식 창문이 뒤엉킨 여러 개의 창문을 가진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장소를 발견한 시기는 이른봄이었는데, 소복이 눈이 쌓인 광경을 보았습니다. 바로 촬영은 하지 않고 이듬해 겨울에 눈이 내리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폭설이 내린 날, 봄에 보았던 머릿속 이미지를 그대로 촬영했습니다. 잘 알려진 비스콘티 길 또한 같은 방법이었습니다. 이년 반 동안 매일매일 학교가는 길에 그 길을 지나쳤고, 한결같이 좋았던 것으로만 기억합니다. 삼 년쯤 됐을 때 한 영상이 불현듯 떠올랐고, 떠오른 그 그림을 최대한 반영하여 촬영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저의 작업방식 때문에 연극적인 상황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지극히 현실을 반영한 상상들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공간, 그곳에 실존하는 인체,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생성된 사물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재현하는 과정에서는 진실이지만 연기를 해야 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연극’적인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KIM: 이 질문은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작가님과 전시를 하게 된 주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흔히 얘기하는 사진을 위한 사진, 물질로서의 사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도구로서의 사진, 즉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범주 내에서 작가의 언어를 생산해내기 위한 주요한 도구로서 사진을 사용하는 작가로 보입니다. 사진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과 태도는 어떻게 논할 수 있을까요?

CHANG: 정말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있었습니다. 너무 편안한 답변이지만 겉치레 없이 대답 드립니다. 한국말로 직역하자면 조형미술학교 출신인 저는 시대적 흐름과 유행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상태로 많은 매체를 두루두루 경험했고, 방목에 가까운 상태로 자유롭게 작업을 했습니다. 즉 특정한 매체의 구속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가데뷔 이후가 특정적인 매체에 몰입했던 순간이었고, 저에게는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유롭고 성숙한 자세로 가능성은 열어두고자 합니다.

KIM: 위의 질문은 사진이라는 매체적 특수성에 기인하여 드린 질문입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는 작가로서 사진에 대한 작가적 입장을 묻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럼 이번에는 다른 관점에서 또 다른 질문을 드려보자면, 본 전시 《Writing Play》는 현실에 존재하는 날것의 현장이나 현상보다는 이상적이거나 추상적인 것, 존재하지 않거나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들을 연극적인 이미지로 치환하여 보여주는 전시입니다.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이나 모리야마 다이도(Daido Moriyama)와 같은 주요 사진작가들은 미디어를 통해 보여지는 사회의 이상적인 이미지 이면의 날것 그대로를 사진으로 기록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 사진작가들에게서 꾸준히 유지되어오는 태도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가님은 오히려 이상적인 어떤 상을 조작 – 주입하는 미디어의 기능에 대한 비판이나 현실 고발적인 이미지로부터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리고 담아내고자 하는 그것, 그리고 지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CHANG: 이미 1960년대 사진 이후로 사진에 대한 매체적 실험과 고찰이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디지털화된 사진의 의미는 디지털 기술의 꾸준한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며 갱신되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사진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이해가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매체적 실험은 이미 지나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면서 예술, 또는 순수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일말의 의구심은 없었습니다. 세상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미술의 영역에서 영상작업이나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붓과 같은 도구가 더 다양해졌다고 생각될 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디오와 사진은 다른 분야에서 더 급격히 발전하고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으므로 순수미술의 범주 내에서 그러한 분야의 고찰까지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다양함을 더 넓게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저의 태도는 옳다기보다는 당연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범위를 확장시켜 큰 사유를 해야 하는 것이 미술의 역할이고 한시적이나마 방향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성능이 좋은 카메라와 비디오를 휴대폰에 장착하여 모든 사람이 좋은 퀄리티의 촬영을 할 수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해볼 때 작가로서 더욱 능동적이고 깊이 있는 자세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듯 사진이라는 매체는 다소 경직된 듯 보이며, 미술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되어 사진계라는 영역이 공고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제가 할 일이 있어서 기쁘기도 합니다. 기존에 없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항상 갈등을 수반하기에 건강한 발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그 상황에 놓여 있음을 오히려 감사하며 이 갈등을 유연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샘플이 되면 좋겠지요. 이야기하다 보니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여 조심스럽긴 하지만 무플보단 악플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의 의견이 많길 기대해 봅니다.

제가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같습니다. “이상적인 것,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저의 말에 질문을 더해 하시니까 이 단어들이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네요. 다른 단어로 수정하고 싶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라 수습하겠습니다. 단어가 품은 거대한 의미는 아닌 것 같고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진이라는 매체를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유는 사진을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은 오래오래 이어져 갈 것이고 올해는 그것을 ‘감정을 담은 그릇’으로 표현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언급하신 작가들 때문에 떠오른 작가가 있습니다. 알프레드 스티클리츠 (Alfred Stieglitz, 1863-1946)의 ‘Equivalent’(1925-1931) 시리즈가 생각이 나는데요. 이 시리즈가 저의 의도를 대변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말씀드린 ‘이상적인 것’은 사진 한 장에 오롯한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자 했던 일종의 욕심 어린 의지에 대한 표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설정 사진을 찍는 저는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목격하고 기록-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전면에 두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황을 ‘재현’하는 입장입니다. 한 개인으로, 그리고 한 작가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예민하게 느끼고 관찰함으로써 미세했던 개별의 차이를 가시화시키고자 했고, 그 간극에서 익명의 개인이 이름을 얻게 되고, 공간이 장소가 되는 방법을 저만의 방식으로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KIM: 이번 전시 《Writing Play》에서 주목하는 ‘연극’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연극적인 상황의 이미지적 재현의 문제이기보다는 작품을 가로지르는 핵심적 개념입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특정 상황과 환경에서 취해야 하는 연극적인 태도와 그로부터 발화된 감정과 정서에 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작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요?

CHANG: 가까운 과거에 저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 속 반복되는 몇 가지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연극’이라는 말로 갈무리가 가능한 지점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설정 사진을 주로 하던 저에게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이전과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고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그동안 입속에서만 맴돌았던 답답한 말이 시원하게 세상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저의 작업과 작업 사이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 혹은 그것을 지칭할 만한 언어적 키워드가 없었는데 비로소 작은 끈을 찾은 것이지요. 그것이 ‘연극’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면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하는 예의나 예절에 가까우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본적인 조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예를 들면 〈Witching hour〉(2016) 작품을 보면 키를 키우거나 어깨를 넓어 보이게 하는 패드, 일명 ‘깔창’이라고 부르는 것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부속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대부분 속임수를 쓰려는 나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타인에게 자신을 잘 보이고자 하는 긍정적인 태도, 즉 긍정적인 연극적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꼭 보여지는 것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말투, 자세, 표정, 화장, 헤어스타일 등 겉으로 무수하게 드러나는 것들, 그것들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 풍기는 어떤 뉘앙스, 나와 나의 관계나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연극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평생 연극을 하며 살고, 그러한 연기를 하고 있는 이미지를 우리는 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란 결국 ‘연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성은, 〈Pompom〉, 201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70 x 127.5 cm © 장성은

KIM: ‘Writing Play’ 시리즈의 인물들을 보면, 다소 과장된 코스튬을 입고 본래의 외형을 가리고 있습니다. 인물의 신체와 코스튬의 관계는 어떻게 연결되며, 그것에 있어서 어떠한 ‘연극’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작업에 임하시는지요?

CHANG: 실제 연극에서는 배우가 어떠한 역할을 맡게 되어 연극무대에 오르는 순간 역할에 몰입하여 본래의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신체를 감싸거나 치장한 오브제 코스튬이 비추는 것은 하나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감정의 이름이 ‘기쁨이’라고 할 경우, 그 코스튬은 기쁨이라는 감정을 지시합니다. 그 감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거죠. 그렇게 신체와 코스튬은 하나의 신체로서 감정을 연기하는 모습입니다. 〈Pompom〉(2016)을 보자면 신체는 감춰졌지만, 어떤 정서는 오히려 더 드러나 보이고, 심지어 실제로 거기에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질들은 감정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신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더 무거워 보이는 이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Pompom〉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드리자면, 그것은 저에겐 나무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트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보셔도 무방합니다. 어차피 이 작업은 제가 ‘감정의 초상화’로 부르는 것이기에 저와 상이한 감정을 갖고, 그로부터 다른 것을 상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저 역시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녹색의 이 이상한 덩어리는 저에게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녹색이고, 빛나며, 기뻐하라는 듯 온몸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어딘가 무거워 보이는 이유는 신체를 뒤덮고 있는 물질-코스튬의 덩어리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무게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정서적인 것, 무거운 어떤 마음과도 같은 것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작업을 할 때 예전에 읽었던 시집에서 메모해둔 ‘크리스마스트리와의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라는 글귀를 되새기며, 그로부터 제가 느꼈던 기분을 최대한 삽입하려 했습니다. 기념일 중 특히 크리스마스는 행복을 강요받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조적인 감정의 명암을 담은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지속해서 관심에 관심이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이유는 메모해두었던 글귀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지만, 또 끊임없이 자신을 응원하는 이 반복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KIM: 위의 질문에서 더 들어가서, 작가님은 연극적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 모델의 신체를 활용한 표현의 역동성이나 그들의 피부, 표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코스튬으로 가리고, 외부의 시선을 등지고 있는 자세로 ‘연극’적인 것을 드러냅니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CHANG: 예전에 작품설명을 하면서 한 이야기인데요, 사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끄러운 사진이 된다고 했었습니다. 그만큼 인체에는 읽을거리가 많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얼굴은 특히 많은 심볼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수많은 의미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기에, 저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인체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실제상황이 아니라면 모든 표정은 드라마와 같고 거짓된 표정에 감동을 받거나 공감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을 통해 일방적으로 드러나고 전달되는 직접적인 감정보다는 신체를 통해 많은 생각이 외부로부터 개입될 수 있는 어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Whitened Floor〉(2014) 작품을 보시면 바닥에 깔린 천은 캔버스를 상징하고, 천 위에 앉아있는 여자는 붓으로 간주했습니다. 여백이 짙게 깔린 이 작품은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관점과 생각에 의해서 완성됩니다. 즉, 이 연극은 뒤돌아 앉은 여자에게 관객이 어떠한 표정을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말을 갖게 되는 미완성의 그림입니다. 오롯한 감정 한 가지를 드러내기보다는 슬픔이나 기쁨 등 큰 카테고리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디테일한 묘사는 남겨두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표현했지만, 보는 사람은 행복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같은 작품을 볼 때 시시각각 다른 감정과 온도를 느끼게 됩니다.


장성은, 〈Scenery 1_4〉, 2016, 혼합매체, 가변크기 © 장성은

KIM: 결국 이러한 ‘연극’은 개별 작업의 프레임을 넘어 실제 공간 안에서 또 다른 연극적 무대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이를테면 작가님의 공간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여 공간 내 전시의 흐름과 구성 등 장소 특정적 접근법, 그리고 작가님의 주요 개념을 프레임 바깥으로 확장하는 독자적 방법론으로부터 구축되는 것이겠지요. 이것과 관련하여 말씀 부탁드립니다.

CHANG: ‘연극’ 시리즈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작품의 전시에서는 액자를 제작해 벽에 거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저는 이 전형적인 방법의 전시 구성에 더하여 새로운 액자, 즉 다른 방법으로 사진을 보여주고자 사진설치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많은 작가들이 사진을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수많은 실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꽤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부분이고 3년 전에는 이러한 시도를 하다 소위 실패했다고 할만한 경험도 했습니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 고민은 다시 시작됐으며, 그 시작에는 아마도예술공간의 물리적 특이성, 즉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독특한 공간성이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결정이 난 이후부터 전시 방향에 대한 많은 스케치가 있었고 머리는 복잡했습니다.

결국, 공간이 가진 독특한 시각적, 물리적 조건을 극복하기 위함인 동시에 그동안 도전하고 싶었던 부분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총 네 개의 사진설치가 있는데요. 이들 작업은 물리적인 공간을 고려한 사진 설치 작품이며, 액자라는 틀을 벗어난 사진설치입니다. 그중에 〈Scenery 1_3〉(2016)은 속칭 ‘온실’이라고 불렸던 지상층에 위치한 야외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액자로 상정했습니다. 사면이 유리로 된 이 이상한 임시건물의 문을 잠그고 작은 사진을 안쪽유리에 밀착시킴으로써 액자 뒷공간의 깊이가 엄청나게 부풀려진 상황을 연상하면 됩니다. 일반액자의 측면 길이는 대부분 4-5cm인데, 여기서는 이 방 하나의 공간이 사진의 액자가 되는 겁니다. 이 설치 작품은 아마도예술공간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작품 더 예시를 들자면 〈Scenery 1_4〉(2016)는 지상층 사무실 옆에 위치한 공간 속 또 하나의 공간인, 소위 ‘다락방’이라 불리는 공간에 위치하는 설치작업입니다.

그 공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서 봤을 때 다락방의 바닥 면이 거의 눈높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공간적인 특징에 주목하여 본 작업을 떠올렸습니다. 누구든 사진을 찍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만 피사체가 눈높이와 일치할수록 촬영이 용이합니다. 이 방의 구조는 사진 촬영에 있어서 가장 좋은 시선의 높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직접 제작한) 오브제 중심의 촬영현장을 세팅하고 관객이 휴대폰이나 사진기로 촬영했을 때 흰 여백이 있는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도록 무대-현장을 재현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그 방을 바라다볼 수 있는 지점, 즉 촬영의 위치가 오른쪽으로 치우쳐져서 중앙에서 촬영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촬영현장의 세팅은 정면에서 찍을 수 있는 구도로 설치할 계획입니다. 이유는 제가 상상했던 한 장면을 누구도 온전히 완성할 수 없게 하고 미완으로 남게 하기 위함입니다.

KIM: 기존 작업에서 보이던 신체의 과장된 연극적 동세를 바탕으로 개념의 재인식을 위해 그 신체와 관계 맺던 구체적 장소들이 이번에는 스튜디오라는 중립적 배경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지속해오던 공간과의 관계 맺기, 그로부터 시작하던 작가님의 고유한 인식은 이번 시리즈에서도 프레임의 안팎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Writing Play’ 시리즈에서는 이 ‘공간/장소’의 문제를 프레임 속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연극하는 인물-신체와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CHANG: ‘감정의 초상화’의 경우는 기본적인 초상사진 촬영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배경이 단조로울수록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한 장의 사진(장면) 속에 장소와 신체가 같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섯 장의 사진의 경우 프레임 안에서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신체, 몸짓, 그리고 코스튬과의 관계 속에 발생하는 감정 그 자체에 집중되길 원했고, 이 프레임의 외부에 존재하는 공간, 즉 사진이 걸리는 전시공간의 실제 배경 자체가 과거 제 작업에서의 배경-장소와 같이 작동하도록 의도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작품이 위치하는 공간과 그 공간성, 분위기에 따라 프레임 안의 이미지-신체는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과거 프레임 안에서 그 모든 관계성을 다루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프레임 밖의 배경을 프레임 안으로, 그리고 프레임 안의 이미지를 다시 프레임 밖의 더 넓은 공간과 연결하며, 또 다른 관계와 정서가 작동하길 의도했습니다. 다른 모든 작품이 그러하겠지만, 감정을 담은 사진이기에 그 여파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동적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예를 들어 빈집 〈Empty Room〉(2016)의 경우 아마도예술공간 안에서 마치 서늘하고 차가운 정서로 수렴될 듯합니다. 하지만 공간이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일 경우에는 이곳의 차가운 인상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달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 작품의 배치와 배열에 따라서 새로운 관계성을 획득하며 그 정서의 흐름에 또 다른 차이가 계속해서 발생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KIM: 작가님은 결국, 추상적인 감정과 그 감정이 품을 수 있는 양가성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추상을 또 다른 추상 – 상징적, 은유적 언어로 우회하거나 관통하며,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정지된 시공간의 이미지로 기록해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작가님의 작업, 그리고 전시를 통해 관객의 자유로운 감정의 발화가 있기 전에, 작가님이 본 전시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주목하는 그 감정이란 어떤 것인지요? 그리고 전시에서 다양한 감정을 사진의 이미지로 연결, 표출한다고 하였을 때, 그 감정의 흐름선은 어떤 것일 수 있을까요?

CHANG:  ‘心鏡’, 마음’심’ 거울’경’, 마음의 거울로 풀이되는 이 말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입니다. 현실적인 것이든 상상이든, 생각이든 잡념이든, 의식적인 것이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마음을 오롯이 보이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작업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은 한 감정이 정점을 지나 그 감정의 끄트머리에서 최소한의 여운이 남아 침윤의 상태로 돌입하는 순간, 즉 이성적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그 지점을 바라고 있습니다. 한 감정에 몰입하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고 금세 빠져나와 다른 감정으로 이동합니다. 감정의 여운 뒤를 신체에 저장했고, 식기 시작한 온기를 어떻게 현실적으로 느끼는가입니다.

KIM: 마지막으로, 사진을 매체로서 어떤 추상적인 개념에 접근하고, 그것을 사유하는 작가님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CHANG: 사진을 매체로서 어떤 추상적인 개념에 접근한다기보다는, 그저 추상성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추상성이란 일종의 아름다움의 가능성이 응집된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의 본질인 상상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작품은 추상의 영역 속에 있으므로 마치 설렘과 같은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확한 듯하지만, 사실은 추상적인 것들에 대해 자문하지만, 그 추상성을 완전히 해체하지 않고 오히려 조금 더 명확하게 그것에 다가서고자 하는 방식들이 저의 작업입니다. 허무맹랑한 허상에 대한, 그저 느낌으로만 짐작되는 그러한 추상성을 얘기하기보다는 저의 직관과 무언가 분명히 명확할 것 같다는 가능성, 그 무엇이 합쳐짐으로써 그 대상이 가진 추상성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생활 밀착형 추상’이라고 해두고 싶습니다. ‘따뜻한 검은 돌멩이’ 따뜻한, 검은, 돌멩이 어디 하나 추상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이 조합되는 순간 묘한 추상적인 감정이 맴돌게 됩니다. 검은 돌멩이는 바로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검은 돌멩이가 따뜻하게 보이게 하려면 하고 물음표를 띄는 순간, 그 이미지는 선뜻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예시는 작년부터 저의 생각 주머니에 있었던 하나의 아이디어입니다. 아직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글로 소개가 되네요. 제가 하는 작업이란 바로 이러한 부분을 저 나름대로 고민하고 생각해서 그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것입니다.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사진은 주요 매체였으며, 아마 앞으로도 사진을 주요한 도구로써 사용하여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진이 그 답을 온전히 드러내주지 못한다면 그때는 다른 방법으로도 보여줄 가능성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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