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전시 공간에서 이뤄진 전시의 전경 사진과 짧은 영상으로 기록된 복합적인 필름과 오브제 설치는 내게 번역의 형태로 전달되었다. 이 글은 이렇게 중개를 거쳐 이뤄진 조우를 담아낸다 – 애초에 이영호의 작업은 공간 안에서 직접 경험해야 하는 것이기에, 필자로서 나는 상상을 통해 이 같은 물리적 조우를 다시 구축해내는 셈이다.

말하자면 이 글에서 시도하는 상상을 통한 추정이야말로 이영호의 작업들이 공통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핵심요소이다. 작가는 19세기 말 무빙 이미지의 모더니즘적 역사를 공들여 전달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모더니즘에 비하여 느끼는 컨템포러리의 피폐함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현재 우리의 시야는 공유와 디지털화가 이뤄진 대기에 너무나 젖어 있으며, 그런 탓에 전시장을 방문하는 일은 시각적 감각을 씻어내기 위한 행위로써 역공간(liminal space)을 찾아나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영호의 작업에서는 기술이 지닌 인간의 인식과 재현 양식을 박탈하는 경향에 대한 비판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작가의 설치 작업은 인간의 가능성과 그 범위를 향해 시선을 돌리는 데 집중한다. 이 작업들은 인간의 시선이 존재의 감성적 핵심으로 이어지는 확실한 연결매개체라는 확신을 공유한다.

더 나아가, 공간 안에 설치된 작업들은 관람자의 시선을 감안해 구성된다. 즉, 이 작업들은 관람자의 시선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작업이 놓인 장소와 그곳에서 영사되는 것들은 절대 분석적으로 관찰 당하는 것만을 의도하지 않는다. 외려 작가는 관람객들에게 감성적 효과를 던지는 것에 관심을 둔다.


이영호, 〈대관람차〉, 2009, 16mm 루프 설치, 컬러, 사운드, 거울, 프로젝터, 금속 구조물, 2분 37초 © 이영호

프랑스 문화 이론가이자 철학자인 폴 비릴리오는 20세기 말을 전자적 이미지가 만유 인력을 극복하고 사물이 물질성을 잃은(dematerialization)된 시기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무게 없음과 일반적 감각의 보류 현상은 ‘시각적 현실’ 그리고 이를 즉각적으로 또 매개를 거쳐 드러내는 재현 사이에서 점차 혼란이 늘어나는 것을 나타내는데, 비릴리오가 이를 적절히 지적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혼란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 따라서 그는 모더니즘 시대의 무빙 이미지가 시작되었던 때를 의도적으로 돌이켜본다. 이영호의 설치 작업 〈대관람차〉(2009)은 1890년대에 존재했던 모더니즘적 유토피아를 갈구했던 열의, 그리고 기술에 지쳐버린 21세기에 과거의 현상이 일으키는 반향 사이에 존재하는 모종의 관계를 주제 삼는다.

현재 우리는 여전히 변치 않고 존재하는 감각의 잠재성이 디지털 매체와 새롭게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을 마주하는 중이다. 한계가 없는 기술적 확장은 우리 자신의 감각과는 발맞춰 나아가지 않는다. 이영호의 설치 작업들은 여기에 압도되지 않게 해주는 방법을 제공한다 – 확장된 이미지를 창조해 공감각적 환경으로 설정된 공간 안에 집어넣는 것을 통해서 말이다.


이영호, 〈The Flip Flop Loco 03〉, 2007, 16mm 필름 루프 설치, 컬러, 사운드, 거울, 목재 구조물, 협업: 송률 + 크리스티안 슈바이처, 4분 15초 © 이영호

작가는 강력한 모더니즘적 비유, 즉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현대성을 대표하는 경이적 존재로 만들어진 대관람차(Ferris Wheel)를 작업의 소재로 활용한다. 대관람차라는 물체의 움직임은 유동성, 속도, 현대적 시선의 굴절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이 대관람차는 1800년대 후반 영화 분야에서 여러 발명이 이뤄지던 것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

19세기 말 마지막 10년과 20세기의 첫 번째 10년 동안, 프랑스의 영화 선구자인 뤼미에르 형제와 더불어 미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토마스 에디슨 휘하의 에디슨 스튜디오(Edison Studios) 또한 1,200편에 달하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빙 이미지는 전례 없는 인기를 누렸다. 이영호는 투사되는 이미지를 통해 영화사의 물리적 부분에 관해 일종의 역전된 고고학적 접근법을 취한다.

그는 이같은 방식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인 필름 프로젝터는 스크린에 빛을 뿜어내고, 관객은 이를 보게 된다. 이는 이차원적인 경험 방식이다. 나는 이 과정을 삼차원적 경험으로 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현재 기술과 매체, 인간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영호의 필름 설치는 실험적 연출, 즉 설치된 작업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관람자의 감각을 확장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관람자는 설치가 지닌 삼차원적 성격과 상호작용하며 다층적 의미를 발견하며, 작가는 블랙박스 안에서 영상을 상영하는 수동적 역학에서 벗어나기를 주장한다. 그는 ‘The Flip Flop Loco’(2007) 연작에서 시작해 거의 10여 년에 걸쳐 영상 관람이라는 육체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16mm 영상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탐구하고 있으며, 이는 영사된 시야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뒤집고 관람의 공간을 열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영호, 〈The Wrapping Process〉, 2016, 2채널 HD 비디오, 루프, 컬러, 사운드, 거울, 가변크기, 17분 63초 © 이영호

설치 작업인 〈The Wrapping Process〉(2016)에서, 작가는 동시대의 시각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자극을 통해 다시 한 번 관람자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영화가 출현한 이후 줄곧 진화해 온 새로운 재현 기술들, 즉 비릴리오가 ‘시각 기계’(vision machine)라고 일컫는 것은 이 작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디지털화된 비디오 이미지와 새로운 양식의 가상 현실, 멀티미디어 기술이 이제 정보와 오락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점은 작품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명확하다.

동시에, 이런 부분들은 현실적 재현과 상상을 통한 이미지의 경계를 제거하고 흐리게 한다. 이 지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이런 시각 기계들은 억압적이고 인간의 감각을 소외시키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주체의 시야를 그리고 능동적 관람 경험이 지닌 정동적 가능성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비릴리오는 직접적인 현상학적 체험으로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위가 상실된 것을 애석하게 여긴다. 시각적 지각의 대상이 새롭게 부상하는 형태의 기술적 시야와 재현으로 이뤄지고, 직접적 관찰과 상식이 자리를 잃고, 따라서 인식의 대상이 지닌 물질성과 구체성이 상실되며,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체험의 영역을 구성하는 상황을 말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시야에는 근본적인 “가역성”(reversibility)이 있음을 지적한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시야 모델을 변용했는데, 그는 신체를 주체인 동시에 객체인 것, 또한 보는 것(the seeing)이자 보이는 것(the seen)으로 여겼다. 라캉은 가역성의 개념을 채택하고서 이렇게 주장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가역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항상 우선시되는 것은 관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다.

이 점은 시선을 통해 관찰당한다는 수동적 상태가 결국 주체의 온전한 주체성을 부정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주체는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서 소외된다. 이영호의 작업은 설치에서 보이는 유희적 측면들을 통해 이같은 소외를 어떻게 회피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이처럼 각별한 유희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새로운 감각적 경험 방식, 그것을 구현하는 새로운 인간, 그로부터 형성되는 새로운 질서가 창조될 수 있는 지점이 유희 안에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유희의 경험 속에서 인간은 한편으로는 감성에 대한 지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이해 관심에 의한 판단으로부터 인식의 보편적 토대로 이행하죠. 이러한 가능성은 유희 속에서 획득되고 확장된 인간의 미적 경험 방식에서 발견된다고 생각 합니다.”

새로운 기술로 이뤄진 여러 세계가 평범한 경험의 중단과 단절을 의미하고, 따라서 진리, 의미, 타당성을 추상적이고 불가사의한 가상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라면,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 주체(viewing body)를 공간 안에서 다시 정립해야 한다. 미디어화된(mediatized) 우리의 존재는 점차 사이버공간에서 신체의 현실감이 더 희미해지게 만들고, 신체라는 중심에서 벗어나는 가상 현실 기술들을 추구한다.

시야를 다루는 새로운 기술들은 인간의 능력과 경험을 박탈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기술적 지배와 통제의 양태에 각 개인이 속하게 한다. 이영호에게 있어 이것은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중력장 안에서나마 주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되돌려 보고자 하는 하나의 도전이다. 그는 필름을 영사하는 상호작용적 공간을 구축해 이 전략을 구현한다.

작가에게 있어 이 공간은 ‘그곳’에 정체되어 있는 ‘한’ 공간이라기보다는 관객의 움직임을 통해 매 순간 다르게 인식되는 연속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필름 상영의 특징은 관람객이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필름의 퍼포레이션¹과 필름 바디(film body, 촬영과 영사 장치, 화면을 아우르는 하나의 덩어리)가 맞물리며 각각의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나간다.

“이 공간에서 인간의 신체는 필름 바디처럼 작동하며, 퍼포레이션 사이의 현실은 각각의 패널 프레임 위에 반사되고 굴절된 상들로 맺히게 됩니다. 공간은 필름의 도치(space as a negative form of film)된 형상이며, 필름은 공간이 도치(film as a positive form of space)된 형상입니다. 이렇게 패널 프레임들은 계속 서로를 다반사, 난반사해 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며 필름의 다차원성을 이어나갑니다.”

정동의 힘, 즉 관람 중 일어나는 정서적 반응은 이영호의 필름 설치 작업에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작가는 영사된 빛을 산란해 다채롭게 반사할 수 있는 정교한 기계 구조를 구축한다. 관람자는 빛의 비물질성을 필름이 드러내는 물질적 명확함과 관련해 살펴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고, 이것은 단일한 존재로 영사되는 시야가 가진 지배적 권위에 반기를 들고 즐겁게 교류하며 이뤄진다. 따라서 작품을 영사하는 것은 관람자에게 이를 보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작품을 완성하라는 하나의 제안이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