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블랙 마리아와 화이트 시티〉, 2009, 설치, 가변크기 © 이영호

영화가 미술관으로 들어온 이래, 미술계 영상이 필연적으로 영화 매체와 맺는 관계와 거리에 대한 논의는 불가피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어떤 망각과 양해의 합의가 이미 선결된 듯한 태도로 미술계는 일관하고 있다. 논의와 시도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때때로 (주로 영화에 기반을 둔) 몇몇 작가들이 영화 장치로서의 필름과 영사기를 전시장에 끌어들였지만, (어쩌면 미술과 영화와의 거리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탓에) 영화 장치에 대한 물신화와 숭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영호의 작업은 영화 장치를 시각성과 광학 매체에 대한 독창적 시각으로 재맥락화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미술에서 영화 장치는 여러 차원으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메커니즘의 차원, 즉 장치 이론에서 제시하는 바의 바로 그 장치의 작동과 이데올로기를 다룰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영화 장치가 기계의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설치와 구조물의 구축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기계의 설치는 인간 신체와의 유비나 대립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직조될 수 있다.

이영호의 장치적 작업은 이러한 다층적 차원의 장치를 불러들여 작동시킨다. 그 핵심 수단은 영화의 전사(前史) 혹은 영화사 초기 단계에 속한 광학 장치를 그것이 발명되던 해의 또 다른 발명품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사실: 영화는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장르’이기 이전에)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것. 이것이 영화의 본성을 다른 장르나 매체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구분짓는다는 것. 그러므로 이영호가 미술계 영상을 논하기 위해 영화의 발생 단계로 회귀하고 동시대의 발명품을 소환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깝고 과도하게 익숙하여 자칫 그 본질과 가능성이 간과되기 쉬운 영상 매체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우회전략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영호가 포착한 영화의 동시대 발명품은 대체로 ‘탈 것’의 형태를 띤다. 그런데 이 탈 것은 사실상 탑승자를 그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는다. 혹은 처음 그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시네마토그래프와 더불어 1895년에 탄생한 롤러코스터가 제공하는 것은 (장소 이동에 의한 위치 변동이 아니라) 아찔한 속도와 높이의 낙차 체험, 그리고 이로 인한 새로운 시각 경험이다. 그러므로 ‘탑승자’는 사실상 ‘관객’이 된다.
 
시각의 문제가 속도와 연계되어 있다는 이영호의 통찰은 영화의 전사는 물론 오늘날 영상 매체의 전개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정한 속도에 의해 움직여야 하는 필름은 〈Flip Flap Loco〉(2009)에서 영사기를 넘어 스스로 롤러코스터의 탑승자가 된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은 필름과 구조물의 뜻밖의 대면 속에서 새삼 관객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자신이 바라봐야 할 대상과 보는 행위의 ‘적절한’ 속도를 질문하게 된다.

마찬가지의 질문이, 1933년도 발명품 블랙마리아와 박람회 ‘White City’의 관람용 대전차를 연결한 〈Film Machine〉(2012)에서 발생한다. 관객의 합당한 관람 위치와 시각성의 효과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 더욱 정교해지는데, 특히나 같은 소재를 다룬 바 있는 전작 〈Black Maria & White City〉(2009)가 관람차의 형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여기에 빛을 쏘아 블랙마리아라는 광학장치를 은유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제시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작가의 관심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결국 이 시각장치들을 어떠한 형태로, 얼마만큼의 부피와 규모로, 어느 정도의 속도와 거리로, 어떠한 구조와 연계의 형식으로, 구현해야 하는가는, 작가가 제기한 중요한 질문들이 핵심을 꿰뚫을 수 있게 만드는 관건일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