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지난 13일 개관에 맞춰 마련한 5개 주제전에 국내외 70여 작가의 작품 120여점을 동시에 내걸었다. 여기엔 플라스틱 과일박스 400여개를 쌓아 만든 정승의 설치작품도 포함돼 있다. 관람객 누구나 앉아 쉴 수 있게 한 의자 용도의 이 작품은 모듈 연결체에 의미 없이 중얼거리는 사운드를 결합시킴으로써 복잡한 층위의 현실을 투영한다.

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성 오브제를 사용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특징인 산업사회를 비유한다. 공공미술 개념을 접목한 이 작품은 무한생산이 가능한 과일박스를 통해 소비사회를 보여주면서 개인의 정체성이나 존엄성이 마치 상품처럼 소모되는 현실세계를 비틀고 있다.

공산품의 본래 기능을 거세시킨 뒤 남은 형상을 조각 작업으로 변형시켜 인간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생산을 위한 생산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의 숨겨진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정승 작업의 특징은 작가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2013년도 작품 〈Spectacleless Complex〉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정승, 〈Spectacleless Complex (essaie II)〉, 2013, 노호혼 인형 2000개, 나무 구조물, 형광등 구조물, 600(지름) x 400 cm © 정승

유유자적이란 뜻을 지닌 인형의 한 종류인 노호혼 2000여개를 아레나와 유사한 구조물에 촘촘히 앉힌 이 작품은 인형이 머리를 흔들 때마다 발생하는 미동에 의해 하나둘 바닥으로 추락하도록 설계되었다. 검투사들이 고대 로마의 투기장이었던 암피테아트룸 같은 곳에서 혈투를 벌이다 하나둘 희생된 역사를 끝없이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재와 견줘 표현했다.

〈Spectacleless Complex〉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자동차를 작은 조각으로 절단한 후 케이블타이를 이용해 형체만 다시 재조립한 2006년 발표 작품 ‘자동차’ 연작과 비교할 때 구조와 인간을 직접 언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300개의 의자를 쌓아올려 현대판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300 체어〉(2007), 복사기를 주요 재료로 활용해 무한복제 시대를 상징한 〈현대인들의 삼원색에 관한 착각〉(2008) 등 초기작들과 비교해보면, 오브제 형체에 집중한 데서 벗어나 오브제의 움직임에 기계 마찰음 등 소리를 덧대어 스펙터클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이처럼 정승은 〈Spectacleless Complex〉를 통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대량생산체계가 인간과 대상 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일으키는지 주목한다. 현대 도시사회의 시스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소외와 무력감을 화두로 삼은 채 익명의 구조가 유지, 확대, 재생산되는 데 대한 고찰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이때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각종 오브제들은 부조리한 동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면서 사회 이면에 소품처럼 놓여 있는 개개인의 대리물로 작동한다. 그것은 다소 은유적이면서도 차가운 비판으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시선 아래 예술의 역할을 되묻고 있다.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특별전을 둘러본 이들은 서울대 출신들로 채워진 일부 전시에 대해 “서울대 동문전이냐”며 눈살을 찌푸렸고, 청와대의 외압으로 특정 작가들의 그림들이 내려졌다는 주장마저 제기돼 큰 논란이 일었다. 정승 작가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의문을 품어온 비합리성과 익명의 구조가 정작 그곳에도 드리워졌던 것일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