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수, 〈독산십이경(제2경 진도벽)〉, 2011,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80 x 100 cm © 이병수

늦여름의 긴 장마가 지나간 뒤 가을이 시작되는 화창한 어느 날을 상상해보자. 왜인지 신나고 설레는 기분에 서울에서 가장 높다는 63빌딩 전망대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이 거대한 도시가 마치 내 것이 된 것 마냥 한 눈에 들어오는 황홀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도시의 일상사로부터 벗어나 느끼는 황홀함도 잠깐, 이내 곧 저 도시로부터 내가 초대받지 못한 누군가가 된 듯 한 소외감을 받게 될 수도 있다고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셀 드 세르투는 그의 책 『삶의 일상(The Everyday of Life)』에서 말한다. 이렇듯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은 도시와 인간이 관계하는 방식을 정의한다.

현대 생활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이루어지게 되면서 도시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예술가들은 수도 없이 등장했다. 도시라는 주제로 이루어지는 상당수의 많은 작업들은 곧 도시와 인간이 관계하는 방식의 끝없는 변주였다. 〈독산십이경〉은 작가 이병수가 정의하는 도시와의 관계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그는 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외롭지만 황홀한 도시의 모습이 아니라 두 발을 딛고 땅에 서서 거리를 배회하며 일상의 삶이 만들어낸 도시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평범한 일상의 장소를 작가의 시선이 개입하여 예술적 풍경으로 전환시키는 그의 작업은 독산동이라는 서울 외곽의 살풍경한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낸다. 어딘가 일그러진 듯한, 어딘가 현실에 비낀 듯 한 사진 속 풍경은 마룡대(馬龍臺), 환상절벽(幻像絶壁)과 같은 제목과 함께 약간의 허구가 덧붙여져 실제 현실과는 다른 맥락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독산십이경〉은 일종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미술(도시미화에 대한 개념으로 만들어지거나 혹은 사회적 과정을 필요로 하는 형식)의 범주에 비껴나 있다. 금천예술공장에 거주하며 작업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작가에게 독산동이 삶의 공간이자 작업의 대상이 되면서 사진 속에 담아내고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이자 대중을 위한 가이드로 재생산한다.

여기에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개선하거나, 미화시키거나, 혹은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독산동이라는 공간을 산보하면서 생각한 사적인 순간을 하나의 가이드로 만들어 대중에게 배포하는 과정을 진행함으로서 공공의 영역으로 환원시킨다. 마을버스에 비치하여 배포하는 리플렛을 통해서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독산동이라는 지역성을 재확인시킨다.

한편, 12장소의 사진과 사진에 담긴 이야기는 찍힌 진실과 만들어진 이야기의 경계 사이에서 확장되어진다. 〈독산십이경〉이 단순한 서울의 한 변두리에 있는 지역에 대한 자료 수집이나 보고서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 특별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진실과 허구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지친 하루의 삶이 주는 노곤함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회색빛 도시의 일상을 어딘지 낯선,그러나 아직은 호기심으로 가득한 무언가로 만들어주는 힘이 그 충돌의 과정 속에서 생성된다. 그 충돌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잉여가 〈독산십이경〉을 하나의 자료가 아닌 작품의 범주에서 고려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어딘가를 향해 이동 중이거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며 살아간다. 그리고 좁게 구획되어진 도시의 한켠 어딘가 파편화된 삶을 붙잡고 집단 속에 익명화된 개인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도 각각의 삶이 가진 일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진정성을 발견한다. 지친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삶의 의미,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의미를 발견해 나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꽤나 만족할만한 삶이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아름다운 핑크빛 환상 속에 놓인 것이 아닌 회색의 잿빛 도시 속에 갇힌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그 진실한 풍경이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는 진정한 진(珍보배 진)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