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휘(b. 1988)는 힙합 음악을 작가로서의 일상 혹은 비평적 오브제로 전유하고 재맥락하여 전시의 맥락에 재배치한다. 그는 가사와 랩, 비트와 영상을 통해 매체로서 힙합음악이 미술계 안에서 탈맥락화/재맥락화되는 과정을 가시화하며, 매체 환경이 제도에 따라 달라지는 예술/예술가의 가치와 역할에 관한 연구와 작업을 해오고 있다.


《Noise Cancelling》 전시 전경(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19)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힙합음악은 안광휘의 작업에서 주요한 소재로 다루어지지만, 이는 하나의 장르가 아닌 전시를 작동시키는 매체로서 다루어진다.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낸 2000년대 초 중반은 케이블 TV가 개통되며 다양한 콘텐츠의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하고,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이 급부상하여 정보교류의 여건이 물리적, 시간적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활성화되던 시기이다.
 
이에 따라, 개인이 소장하고 있거나 직접 제작한 음악을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 또한 여럿 생기기 시작했다. 이 흐름과 함께 언더그라운드와 독립 음악 신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미주 교포나 유학생이 아닌 이상 접하기 어려웠던 힙합음악이 대중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안광휘, 〈Noise Cancelling 비디오 리믹스〉, 2019,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 17분. 《Noise Cancelling》 전시 전경(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19)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안광휘는 인터넷에서 실체 없이 부유하고 끊임없이 생산되는 이미지와 미디어의 흐름에 대해 연구해오던 과정에서 힙합을 예술적 방법론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힙합은 기득권에 대한 반항심과 사회 비판적 정서에서 시작됐지만, 딱히 자본주의를 거스르지 않고 주류 문화에 편입하고자 하는 욕망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작가로서의 삶과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부유하는 여러 이미지를 대하는 자신의 반응과 생각을 힙합 문화의 양면적 태도에 비유하며 작업을 전개해 왔다.


안광휘, 〈Black Sheep Wall〉, 2019, 혼합매체, 각 162x112cm (3점). 《Noise Cancelling》 전시 전경(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19) ©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또한 작가는 매체로서의 힙합음악을 활용하며 미술 제도의 경계를 실험한다. 그에게 있어 ‘미술 제도’는 전시장이나 미술관을 넘어, ‘예술’을 규정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그의 작업은 힙합 음악을 전시함으로써 그 체계의 경계를 구체화시켜보고, 또 확장해보며 제도 내부의 것들과 헛점을 노출시킨다.


안광휘, 〈Outside In〉, 2024, 라이브 퍼포먼스. 《장밋빛 미래: 모호한 경계》 퍼포먼스 전경(영등포아트스퀘어, 2024) © 안광휘

이를 위해, 그는 전시 공간을 ‘블록 파티(Block Party)’로서 전유한다. 블록 파티는 주로 지역 주민들이 모여 개최하는 행사로, 도로나 건물을 막고(block)서 진행되는 행사의 형식에서 유래됐다. 이는 정해진 형식에 따라 진행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으로 창작을 하고 집단적 성격이 강한 힙합 장르의 고유의 정서를 드러내는 문화이기도 하다.
 
전시 역시 다양한 배경의 관객들이 모여 만들어지지만, 그 노고와 과정이 전부 드러나는 일은 드물다. 안광휘는 전시 공간을 ‘블록 파티’로 전유함으로써, 전시를 만드는 사람과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관객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꾀한다.  


《쇼 다운》 전시 전경(디스위켄드룸, 2020) © 안광휘

‘블록 파티’로서의 전시 공간 안에서 그의 음악은 공기를 타고 퍼지며, 그 공간을 빈틈없이 채운다. 이러한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적인 다차원적 스펙타클은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가 아닌, 이 공간 안에서 함께 공명하도록 함으로써 특정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정치적 청중으로서 머물게 한다.
 
동시에, 작가는 이들이 공유하는 모순과 균열을 자극하며 생산적인 논쟁의 단초로서 작업이 작동하길 희망한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현장을 화이트 큐브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퍼포먼스나 온라인 스트리밍, 팟캐스트, 음반, 강연, 라운드 테이블 등 제도 안팎으로 확장해 나간다. 


안광휘, 〈Remix: Greatest Hits of The Pathetic Rhymes〉, 2021,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12개의 사운드 트랙), 37분 23초 © 안광휘

개별 작품을 살펴보자면, 2021년에 발표한 작업 〈Remix: Greatest Hits of The Pathetic Rhymes〉는 작가가 직접 제작한 힙합음악 중 선정한 10곡에 미공개 신작 2곡을 추가해 만든 일종의 믹스셋(Mix set)이다.
 
2017년에서 2021에 걸쳐 제작된 각각의 곡은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태도와 어조로 작가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모습에 대한 반응 방법을 그려낸다. 2021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린 단체전 《노래하는 사람》에서는 음악, 텍스트, 영상이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작품을 소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힙합음악과 현대미술을 비교해봄으로써 작업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안광휘, 〈Remix: Greatest Hits of The Pathetic Rhymes〉, 2021, 단채널 비디오, 사운드(12개의 사운드 트랙), 37분 23초. 《노래하는 사람》 전시 전경(대안공간 루프, 2021) © 안광휘

이 작업에서 역시 작가는 전시공간이라는 물리적 장소를 공유하는 익명의 개개인이 음악을 통해 같은 문제의식과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는 정치적 집단으로 각성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당시 팬데믹으로 인해 달라진 전시 관람 환경을 좀더 극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도록 의도해 연출했다.
 
좌석은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었고, 공용 헤드폰 대신 관객 개인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전시장에서 보는 음악과 전시장 밖에서 듣는 음악을 동시에 제공하여,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안광휘, 〈렌티큘러〉, 2022, 2채널 영상 프로젝션(컬러), 사운드(5.1 채널), 2분 12초. © 안광휘

나아가, 2022년 금천예술공장 오픈스튜디오에서 발표한 전시 《The Pathetic Studio of The Pathetic Label》에서 안광휘는 블록 파티에 이어 레이블 스튜디오라는 새로운 제도를 활용했다. 이 작업은 가상의 구성원 3인으로 이루어진 레이블의 스튜디오 혹은 아지트 공간을 연출한다.
 
이 공간 안에는 안광휘의 랩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컴퓨터 스테이션, 그래피티, 가사를 인쇄한 렌티큘러 굿즈, 그리고 가상의 구성원 3인방을 그린 초상화가 설치됐다.


안광휘, 〈인피닛 태깅〉, 2022, 단채널 영상(컬러), 반복재생 © 안광휘

작가가 구성한 이 공간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비교적 동질적인 ‘멤버’들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블록 파티보다 지시하는 대상이 구체적이다. 레이블 스튜디오라는 가상의 설정이 이루어지는 전시공간의 속성을 고려했을 때, 이곳은 높은 확률로 작가, 비평가, 기획자, 행정가 등의 미술인들(만)이 모이는 공간이다.
 
더욱이 오픈스튜디오 기간의 방문자라면 관계자 및 관계자와의 친분이라는 필터가 더해지면서 점점 폭이 좁아진다. 작가는 이 집단이 “소수집단”과 같다고 말하며, 특권집단이라는 표현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 집단을 바라보게 만든다.


안광휘, 〈ASFS〉 앨범 커버, 2024 © 안광휘

안광휘는 이처럼 제도 안에서 그 바깥의 언어를 통해 내부의 리듬을 흔들어 그 사이의 균열과 오역이 존재하는 자신만의 영토를 개척하고, 이를 무대로 삼아 작업을 전개한다.
 
2024년에 발표한 그의 싱글 〈ASFS〉는 제목 그대로 작가 소개라는 제도의 필수 문서를 랩의 형식으로 치환한 결과물이다. 보통 작가 소개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문장과 전시 이력 및 작업 세계에 관한 논리적 개요다. 하지만 안광휘는 이 구조를 비트와 리듬 속에 분절하고, 구절 사이사이에 의도한 의미의 비약을 삽입하며 시스템의 균열을 낸다.


안광휘, 〈Untitled 13 Tracks - Nanji〉, 2025, 단채널 비디오(컬러), 사운드(스테레오), 오실로스코프, 36분 26초. 사진: 서스테인 웍스. © 서울시립미술관

그 결과, 문장은 제도적 문서의 형식을 유지하지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제도는 언어를 통제하고 서사를 안정화하며 의미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체계”이지만, “안광휘는 그 체계가 요구하는 형식과 어휘를 그대로 빌리며 내부에서 리듬을 비탈지게 하고 의미를 탈락시킴으로써 안정성을 서서히 붕괴시킨다”고 설명한다.


안광휘, 〈Desk Concert〉, 2024, 단채널 비디오(컬러), 사운드(스테레오), 24분 16초. 《습습하하》 전시 전경(아트스페이스 보안, 2024) © 안광휘

한편, 안광휘는 최근 일상에서 점차 비중이 커지고 있는 인공지능(AI)를 일상 매체의 비평 장치로서도 활용하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알고리즘 생성은 샘플링과 비교되며 저자성의 분산을 드러내는 요소가 되고, 데이터 편향이나 반복성 같은 기술의 한계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서사로 활용된다.
 
가령, 작가 자신의 방 또는 작업실에서 약 25분간 진행된 작업 〈Desk Concert〉(2024)에 사용한 래핑은 AI가 생성한 것이기도 했다. 이 콘서트에서 안광휘는 자신의 트랙을 라이브 방송하듯 소개하며 들려주지만, 이는 녹화된 기록으로 이 작업을 듣는 청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안광휘, 〈Desk Concert〉, 2024, 단채널 비디오(컬러), 사운드(스테레오), 24분 16초. © 안광휘

그리고 이 작업은 오직 미술 제도의 공간 안에서만 작동하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처럼 대중적인 플랫폼 형식으로부터 회피한다. 곽영빈 비평가는 이러한 그의 작업을 “어떤 근원적인 의미에서 (한국의) 동시대 미술이란 자신의 작업처럼 대중적이지도 않고, ‘pathetic’하며 자폐적인, 일종의 ‘탁상 콘서트’라는 선언”으로 읽었다. 


안광휘, 〈BE KIND, REWIND, DOUBLE BIND〉, 2026, 복합 매체 설치; 5채널 비디오, 컬러, 2채널 사운드, 코리아나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 아인아 아카이브. © 코리아나미술관

한편, 최근 코리아나미술관의 *c-lab 9.0 프로젝트에서 안광휘는 서구의 미술사가 한국에서 수용된 과정을 힙합으로 은유하는 작업 〈BE KIND, REWIND, DOUBLE BIND〉(2026)을 선보였다. 이 작업은 미셸 공드리의 영화 〈Be Kind Rewind〉(2008)에서 제목을 차용했다.
 
영화는 주인공이 운영하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우연한 사고가 발생해 비디오 테이프의 데이터가 모두 삭제되면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조악한 장비로 영화를 다시 촬영한다. 원본을 대체한 것은 뻔뻔하고 엉성한 상상력뿐이지만, 주인공의 영화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다.


안광휘, 〈BE KIND, REWIND, DOUBLE BIND〉, 2026, 복합 매체 설치; 5채널 비디오, 컬러, 2채널 사운드, 코리아나미술관 제작 지원. 사진: 아인아 아카이브. © 코리아나미술관

안광휘는 이러한 영화 속 사건을 한국 사회가 서구의 미술사와 힙합 문화를 수용해온 과정과 겹쳐보았다. 흑인이 향유하던 거리 음악을 한국의 중산층 문화로, 그리고 다시 예술의 언어로 번역한 이 작업은 ‘가짜’와 ‘무근본’ 사이를 오가는 이중 구속의 상황에 필연적으로 놓인다.
 
그러나 〈BE KIND, REWIND, DOUBLE BIND〉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거나 정당화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 작업을 그러한 조건을 견뎌내는 행위로 바라보며, 가장 거칠고 정치적인 거리의 문화를 가장 정제되고 제도적 공간인 미술관으로 호출한다.


안광휘, 〈BE KIND, REWIND, DOUBLE BIND〉 리스닝 세션, 2026 © 코리아나미술관

이렇듯 안광휘의 작업 안에서 예술의 행정적 절차, 제도를 지탱해온 언어와 형식은 힙합의 리듬과 충돌하며 변형된다. 작가는 그 리듬 안으로 관객을 초대함으로써 예술의 의미와 가치란 무엇인지 주체적으로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나는 제도 안에서 그 바깥을 이야기하며, 제도 바깥의 언어를 통해 안을 내부로부터 흔들고자 한다." (안광휘, 작가 노트)


안광휘 작가 © 퍼블릭아트

안광휘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판화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그는 동대학원 서양화 판화전공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개인전으로는 《BE KIND, REWIND, DOUBLE BIND》(코리아나미술관, 서울, 2026), 《Palimpsest》(우석갤러리, 서울, 2024), 《쇼 다운》(디스위켄드룸, 서울, 2020), 《Noise Cancelling》(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2019)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글짓, 쓰는 예술》(북서울미술관, 서울, 2026), 《휴》(환기미술관, 서울, 2025), 《습습하하》(아트스페이스 보안, 서울, 2024),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경북대미술관, 대구, 2022), 《노래하는 사람》(대안공간 루프, 서울, 2021), 《퍼폼 2019: 린킨아웃》(일민미술관, 서울, 2019), 《가역반응》(SeMA 벙커, 서울, 2018) 등 다수의 단체전과 스크리닝 및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안광휘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2025), 캔파운데이션 명륜동 작업실(2023-2024),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22-2023),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2017) 등 다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캔파운데이션,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