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 Mihakgwan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지원 선정전시인 《수피 춤을 추자!》가 10월 20일(금)부터 10월 29일(일)까지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 T4에서 진행된다. 본 전시는 독립기획자이자 전시공간 ‘미학관’의 디렉터인 이슬비가 기획했다.

《수피 춤을 추자!》는 이슬람 일파인 수피즘의 종교의식에서 시작된 “수피 춤(Sufi dance)”을 키워드로, 종교적 제의로서 비롯된 춤을 동시대 예술의 퍼포먼스로 확장하여 퍼포먼스가 가진 미학적 함의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낸다. 다시 말해 이 전시는,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며 접신·황홀경에 이르러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의식의 수행자(샤먼)와 퍼포먼스 도중 엑스터시의 경험에 이른 예술가를 연결시켜 현대 예술가를 샤먼의 입장으로 재조명하며, 작가가 직접 경험한 퍼포먼스에 내재된 엑스터시의 기술을 끄집어내 이 경험을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기록한 전시이다.

퍼포먼스의 ‘기록’ 또한 단순하게 지나칠 수 없는 하나의 꼭지이다. 타장르와 구분되는 퍼포먼스의 가장 큰 특징은 퍼포먼스만의 시간성이다. 퍼포머의 움직임이 관객 앞에서 현존하면서, “생생한 현재”로 관람객과 일회성의 경험을 공유한다. 퍼포먼스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 퍼포머와 관객의 호흡, 관객의 감정과 반응, 퍼포머의 사적인 경험은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어떤 기록으로도 재현될 수 없다.

이 전시를 준비하며 진행한 21년 시각예술창작산실 전시사전연구 워크숍에서 근본적으로 전달될 수 없는 퍼포먼스의 기록 불가능성을 주목하며, 퍼포먼스의 문자기록으로서 무보(舞譜)를 제작한 바 있다. 음을 표기하는 음악의 악보가 있듯이, 움직임을 표기한다는 의미에서 ‘무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기존의 스코어(Score)와 구분되는 퍼포먼스의 기록방식을 연구했다. 실제 퍼포먼스 작가를 섭외하여, 퍼포먼스 당시 직접 느꼈던 엑스터시의 경험을 서로 나누고, 각자만의 조형언어와 매체로 전달할 수 없는 그 경험을 기록하였다.

《수피 춤을 추자!》는 작가들의 작업에 시발점이 되었던 무보와 함께, 춤과 퍼포먼스, 샤머니즘과 예술의 관계, 근본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기록의 (불)가능성을 은유적으로 조망한다. 이번 전시에는 개인과 집단의 신념의 현상에서 파생되는 몸과 움직임의 양상에서 춤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되묻는 안무가 권령은, 스스로 ‘샤머니즘의 퀴어적 성격’을 강조하며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듀킴, 몸, 춤, 감각, SNS채팅, 소리의 공명을 통해 서로 호흡하며 다년간 퍼포먼스를 함께 작업해 온 요한한&착, 인간의 믿음과 결탁된 초현실적인 종교적 경험과 관련된 징후들을 가지고 영상, 회화, 설치로 풀어내는 임영주, 자신의 몸을 전면에 드러내는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일상의 정치와 정체성의 욕구들을 (비)언어적인 수행으로 발화하여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흑표범, 총 5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Installation view ⓒ Mihakgwan

고스트 그룹은 이번 전시의 오프닝 퍼포먼스로 트랜스 상태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일종의 비정상적인 각성상태이기도 한 트랜스는 무언가에 극도로 집중하거나 몰입했을 때 나타나는 상태로서, 집중된 정신이나 신체의 어느 부분 이외의 다른 곳이 이완되는 것이 특징이다.

고도의 집중과 이완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 상태를 고스트 그룹은 다른 종류의 ‘깨어있음’으로 해석하고 몸으로 표현한다. 권령은은 2021년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아카이브 프로젝트 ‘밤의 플랫폼’에서 선보인 〈서기 0000〉의 퍼포먼스를 리메이크하여 〈오래된 퍼포먼스〉라는 이름의 작업으로 참여한다. ‘삼재막이’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모방을 통해 그와 유사한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행위의 절정은 ‘태우기’, ‘묻기’, ‘버리기’, ‘던지기’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전시장에는 〈‘오래된 퍼포먼스’에 대한 안무노트와 스코어〉(2023)가 함께 전시된다.

그리고 전시장 안쪽 원형 공간에는 듀킴의 〈십자가의 길〉(2022-23)이 전시된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마지막 시간을 일컫는 조각이나 그림으로 총 14처로 이루어져있는데, 듀킴은 이에 착안하여 동명의 작업을 선보인다.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죽는 순간까지, 손 모양을 통해 예수의 마지막 시간을 드러내는 14개의 손 조각들을 보깅(voguing) 댄스의 손동작과 연결한다. 보깅 댄스는 1960년대부터 1980년 후반까지 미국 할렘에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유색인종 퀴어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듀킴은 예수의 손동작이 지닌 종교적 상징성을 퀴어 정체성을 상징하던 보깅 댄스의 문화적 토양 안에서 다시 해석한다.


임영주, 〈Waiting M〉, 2021, 4채널 비디오 설치 © 임영주

임영주의 〈Waiting M〉(2021-22)은 1990년대에 유행했던 한국 드라마 ‘M’에서 초록 눈의 주인공이 바이러스로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예언을 되새긴다. 인류를 스쳐지나간 수많은 종말론적 예언들이 매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으로 끝나며 또 다시 새해를 맞이하듯이, 〈Waiting M〉은 죽음에 대한 반추이자 세상의 종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목소리, 이미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신작으로 선보이는 〈카밍 시그널〉(2023)은 불안한 상황에서 개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개들이 보이는 행동을 그들의 '언어'로 판단하고 나름의 소통을 시도하려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다. 이미 인간에게 길들여진 개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한 상황일수록 땅을 고르거나 한 자리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임영주는 개들이 보이는 이러한 신호를 인간이 춤을 추는 것과 유사하게 보았다. 신에게 길들여진 인간의 몸짓, 제의적 움직임은 제 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춤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자 수피 춤의 원리이기도 하다. 비디오는 수피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불안함 움직임을 포착하고 기록한다.

요한한과 착은 그동안 함께 작업하며 퍼포먼스를 통해 호흡을 맞추며 몸, 춤, 움직임, 감각, SNS 채팅 플랫폼과 소리의 공명을 활용했다. 요한한은 22년 《수피 춤을 추자!》 워크숍 이후 스코어나 노테이션과 같이 움직임을 기록하는 방식에 흥미를 갖고 접근하다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인류의 흔적을 최초로 기록한 방식들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대문자, 기호, 이모티콘, 라바노테이션처럼 이미지 혹은 도형 형식의 문자들을 이용한 점토판 조각을 선보인다.

〈가이아 노테이션〉(2023) 시리즈는 고대 수메르의 점토판 형태에 착안하여 ‘수피 춤’의 제의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조물주와 피조물, 제의성, 영적 상태로의 진입과 같은 내용을 묵시록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착 역시 8개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점 찍기’ 행위를 영상과 퍼포먼스로 확장하여 보여준다. 〈궤도〉(2023)는 자신을 관찰하고 내면을 탐구하는 수행적인 작업으로, 동일한 제목의 영상 작업과 함께 ‘궤도’를 연결되어 보여준다. 작가는 작업을 감지와 감상의 대상이 아닌 나 자신과 동일화되어 신체적 경험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제안하고자 한다.

흑표범은 〈여름이 끝나다〉(2023)라는 사운드 작업과 함께 제주 강정천의 멧부리에서 촬영한 〈서울에서 오신 예술가분들〉(2022)을 선보인다. 이 영상은 제주 강정천의 자연을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와 촬영팀, 그리고 강정에 위치한 해군기지의 미묘한 대립이 블랙코미디처럼 그려진다. 강정천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적 공간으로 신성시되면서도 제사 때에는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가부장적 공간이다. 영상에는 시종일관 ‘찍지 마세요, 여기 찍으시면 안돼요’라는 강압적인 안내가 들려오고, 작가와 촬영팀은 해군기지가 아니라 바다를 찍는 거라고 설명한다.

같은 시공간 안에 장소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항상 그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자연과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샤먼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과 닮아있다. 또 흑표범은 22년 《수피 춤을 추자!》 프로젝트에서 비둘기 떼를 기억하며 무보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후위기 속 비인간존재들과 같은 생태를 일종의 소수자 주체로 바라보고 이들의 취약성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이어가게 되었다. 작가는 〈Birds〉(2023) 시리즈를 통해 그런 고민의 시간 속에서 기후위기와 화재, 벌목 등 인간이 야기한 재난 속에서 집을 잃고 점차 사라져가는 새들을 그린다.

전시는 10월 20일(금) 19시 30분 고스트 그룹의 오프닝 퍼포먼스와 함께 21시까지 관람 가능한 야간개장으로 시작된다. 전시기간 중 관람시간은 11:00~19:00이다. (전시 중 휴관일 없음) 참여작가 권령은과 착의 퍼포먼스가 각각 10월 21일(토), 10월 22일(일), 10월 29일(일) 3일간 있을 예정이다. 권령은은 21일, 22일 13:00, 17:00, 2회씩 양일간 총 4회, 착은 21일, 22일 14:00, 18:00, 그리고 전시 마지막 날인 29일 18:00까지, 3일간 총 5회 진행된다.

전시 기간 중 퍼포먼스가 없는 10월 23일(월)부터 29일(일)까지는 매일 13시에는 전시설명이 운영되며, 28일(토)에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수피 춤을 만들자!〉 가 무료로 운영될 예정이다. 전시 정보 및 관련 프로그램의 일정 등 상세한 정보는 추후 미학관 SNS(@mi_hak_gwan)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