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혜의 작업은 여행과 이주, 경계와 이동이라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인간과 비인간, 신화와 기술, 개인과 문명 사이를 가로지르는 관계망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초기 작업에서 그는 이방인으로서 낯선 장소를 직접 경험하고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가나와 이란, 아이슬란드 등에서 제작된 작업들은 타자와의 만남, 여행자의 시선, 그리고 이동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거리감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단순한 여행 기록이나 문화적 관찰에 머물지 않는다. 염지혜는 여행자를 둘러싼 권력 관계와 관찰의 윤리, 그리고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내재한 불균형을 지속적으로 의심하며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되묻는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그의 관심은 보다 넓은 사회적·문명사적 차원으로 이동한다.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 〈우리가 게니우스를 만난 곳〉,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 등의 작업에서 개인의 이동은 더 이상 특정 장소에 대한 경험에 머물지 않고, 식민주의의 역사와 자본주의적 순환, 생태 위기와 감염병, 기술 발전과 같은 거대한 흐름과 연결된다.
작가는 신화와 설화, 과학적 사실, 뉴스 이미지와 인터넷 자료를 병치하며 서로 다른 시대와 영역에 속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현재 안에서 공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작품은 특정한 입장을 선언하기보다 서로 충돌하는 층위들을 하나의 장 안에 병존시키며 복합적인 현실의 구조를 드러낸다.
염지혜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벗어나려는 시도에 있다. 그의 영상에는 분홍돌고래, 바이러스, 인공지능, 문어, 굴과 같은 비인간 존재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존재들은 인간 사회를 비추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동등한 행위자로 다루어진다. 작가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익숙한 관점을 해체하고, 서로 다른 생명과 기술, 물질들이 얽혀 있는 동시대의 복합적 생태계를 사유하도록 이끈다.
결국 염지혜의 작업은 이동과 변형, 번역과 공존의 문제를 다루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과정이며, 하나의 이야기와 장소, 존재는 다른 맥락과 만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이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는 동시대 사회가 직면한 불확실성과 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이자,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