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경은 영상과 설치를 중심으로 작업하면서 드로잉, 텍스트, 사운드, 오브제, 인터뷰와 퍼포먼스를 필요에 따라 결합한다. 매체를 고정된 형식으로 사용하는 대신 조사와 만남의 과정에서 얻은 자료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에 따라 작업의 구조를 달리한다. 초기에는 장소를 걷고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발견한 사물과 기억을 사진, 기록, 오브제로 수집하고, 이를 네온이나 설치와 결합했다.
《세이렌의 노래: 반짝이는 불협화음》(2016)에서는 대전 원도심에서 발견한 폐타이어, 벽돌, 목재 등의 경계 구조물을 ‘도시-토템’으로 해석하고, 주민들의 이야기와 함께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이 시기의 작업에서 현장 조사와 수집은 작품의 사전 단계에 그치지 않고 최종적인 형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기능한다.
2017년부터 이어진 숙련공과 장인에 관한 작업에서는 인터뷰와 영상 기록에 연출과 수행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작가는 장인들의 노동 과정과 이야기를 촬영한 뒤 그들의 일상을 시와 독백으로 재구성하고, 오랫동안 반복해온 노동의 동작을 도구 없이 몸짓으로 수행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 영상 안에서는 목소리, 신체의 움직임, 반복되는 리듬과 대화가 서로 얽히고, 전시장에서는 영상과 사운드, 다양한 오브제가 함께 배치된다.
신체에 축적된 습관과 기술은 설명의 대상에서 수행의 언어로 전환되며, 인터뷰의 내용 역시 사실을 전달하는 기록과 시적인 장면 사이를 오간다. 이러한 구성은 개인의 직업과 경험을 정보로 요약하지 않고 몸에 남은 시간과 감각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무용가들과의 협업이 본격화되면서 ‘번역’과 ‘스코어’는 작업을 조직하는 주요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Zeros: 오류의 동작〉과 〈I Swear, I Am Not a Robot〉에서는 산업용 로봇의 움직임을 관찰한 뒤 이를 선과 화살표로 단순화하고, 다시 무보로 만들어 무용수들에게 전달한다. 동일한 지시는 각자의 신체와 감각을 통과하며 서로 다른 안무로 변형된다.
영상, 드로잉, 텍스트와 무보가 함께 제시되면서 관객은 완성된 움직임뿐 아니라 정보가 몸을 거쳐 해석되고 변형되는 과정까지 보게 된다. 이러한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엇박자와 차이는 부수적인 오류가 아니라 작업의 내용이 되고, 규칙을 정확하게 복제하는 기계의 운동과 해석을 통해 달라지는 인간의 움직임을 대비시키는 장치가 된다.
최근 작업에서는 시각적 이미지와 서사 외에도 소리, 진동, 호흡처럼 언어로 확정하기 어려운 감각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름 없는 노래: 글래시어 블루〉(2024)에서 퍼포머들은 빙하의 소리를 사실적으로 모사하는 대신 분절된 말, 마찰음, 혀와 호흡에서 발생하는 신체의 소리를 이용해 빙하와 물에 감응한다. 함께 제작된 ‘스코어’는 퍼포먼스를 지시하는 악보이면서 독립된 시각 작업이고, 작가와 퍼포머, 인간과 빙하 사이의 교감을 매개하는 통로로 활용된다.
이처럼 전보경의 형식은 자료를 완결된 이미지로 고정하기보다 인터뷰에서 몸짓으로, 기계의 동작에서 무보와 춤으로, 자연에 관한 기록에서 몸의 소리로 옮겨가는 연쇄적인 번역을 통해 만들어진다. 작품의 내용 또한 이러한 이동 과정에서 생성되며, 서로 다른 감각과 존재가 만나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열린 구조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