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수는 사진, 영상, 기록물, 설치를 오가며 실제 장소를 조사하는 과정 자체를 작업의 형식으로 끌어들여 왔다. 초기에는 직접 걷고 방문하고 인터뷰하는 행위를 통해 장소를 경험한 뒤, 그 과정에서 얻은 사진과 증언, 문서에 허구적 이야기를 결합했다. 〈독산십이경〉에서 실제 독산동의 풍경에 새로 지은 지명과 이야기를 덧붙여 지역 안내물처럼 배포하거나, ‘관악산 호랑이 프로젝트’에서 전문가 인터뷰와 현장 조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때 기록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보존하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작가가 설정한 사건을 현실 속에서 실행하고 다시 서사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사실과 만들어진 이야기가 한 화면과 기록 안에서 맞물리는 구성은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위성사진, 구글 어스, 3D 컴퓨터 그래픽스, VR 등 디지털 이미지 기술이 중요한 제작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잇따라서〉는 백두산과 천지의 위성 이미지를 와이어프레임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다시 구성하며, 이미 존재하는 지도와 데이터가 장소를 어떻게 표상하는지를 탐색한다.
〈당신의 눈앞에〉, 〈이중 구속〉에서는 VR 영상과 전망대·망원경 형태의 구조물, 관객의 움직임이 하나의 작업 환경을 이룬다. 관객은 가상공간을 바라보는 동시에 좁은 구조물이나 다른 관람자의 움직임에 의해 신체적 제약을 경험한다. 이병수에게 VR은 완벽한 몰입을 제공하는 장비이면서, 이미지와 신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어긋남을 체감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디지털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도 작가는 매끄러운 환영을 완성하기보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조건과 흔적을 작품 안에 남긴다. 〈우울한 렌더링〉과 〈이중 구속〉에는 실제 사물처럼 보이는 3D 오브젝트와 폐기물, 사고의 흔적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등장하며, 〈스크린 케이브〉에서는 가상의 인간이 오래된 브라운관 화면 안을 끝없이 배회한다.
《이음새없는세계》의 VR 작업 역시 관람 장치의 물질적 구조와 제한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가상 이미지가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특히 단순한 장비와 물리적 구조를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방식은 디지털 기술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 동시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최근 작업에서는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허구의 영상과 전시 환경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벼룩 유령》의 〈자유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미술품 운송·보관 기업의 실제 정보를 활용해 가상의 기업 홍보 영상을 제작하고, 〈예술품을 수집하는 뉴비를 위한 안내서〉는 투자 교육 영상의 형식을 유아용 인형극과 결합한다. 〈매트릭스〉에서는 고급 목재 운송 상자를 반복 배치해 전시장을 포트 프랑의 거대한 보관시설처럼 전환한다.
이렇게 이병수는 다큐멘터리, 광고, 교육 영상, 가상 시뮬레이션처럼 현실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시각 형식을 차용하고 변형해 그 형식에 내재된 권력과 가치 판단을 드러낸다. 작업의 매체와 전시 방식은 전달 수단에 그치지 않고, 관객이 현실의 작동 방식을 다시 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