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은, 〈청음훈련〉, 2022,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와 바이노럴 사운드, 15분 © 김영은

〈청음훈련〉의 소리 중 일부는 바이노럴 마이크로 녹음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이노럴 마이크에는 사람 귀 형태의 모형 두 개가 약 20 센티미터 간격으로 양쪽에 달려 있고, 각 모형마다 안쪽에 마이크가 심겨 있다. 주변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담을 수 있도록 소리가 타고 들어오는 귀의 모양, 두 귀 사이의 거리 등을 감안해 설계되었다. 이로 녹음된 소리를 양 귀를 감싸는 헤드폰으로 들을 때 청자는 입체적으로 재현된 소리의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의 귀에 들렸던 소리일까? 사람 머리처럼 의인화된 바이노럴 마이크는 아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소리, 딱 한 사람이 들었을 소리를 구현한다. 〈청음훈련〉에서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은 2차 세계 대전 중 적군의 비행기나 군함을 소리로 판별하는 훈련을 받던 일본군 청음병이다. 시험지를 넘기는 소리, 테이프를 재생기에 장착할 때의 소음, 녹음 테이프를 재생할 때의 잡음, 폭음 소리 등을 넘나들면서 청자는, 그와 동감하든 그렇지 않든, 청음병의 일인칭 경험 속으로 소환된다.

이렇게 ‘완전’하게 옮겨진 소리가 한편에 있다면, 〈청음훈련〉의 다른 한편에는 악보와 언어로 분절되어 옮겨지는 소리가 있다. 작업 영상은 폭격기 굉음을 오선보에 기보한 소리, 선박의 기계음을 박자와 의성어로 분석한 소리 등을 글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화자인 청음병은 소리와 소리를 표현한 기호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듯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리의 본체는 기호의 망 사이로 속절없이 빠져나가면서 군국주의가 추동하는 신념에 금을 낸다.

그리고 〈청음훈련〉이 관객에게 최종적으로 내미는 자리는, 눈으로 보이는 조각난 소리와 귀로 들리는 완전한 소리 간의 괴리를 하나의 경험으로 봉합해내야 하는 곤란한 자리다.


김영은, 〈밝은 소리 A〉, 2022, 싱글 채널 비디오, 멀티 채널 사운드, 16분 56초 © 김영은

한편 〈밝은 소리 A〉는 대구에 첫 피아노가 도입된 순간을 다루면서 ‘A음’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음악 체제를 글자 그대로 ‘옮겨’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레임 바깥의 힘에 이끌려 바다를 거쳐 산을 넘고 숲을 지나오는 피아노 상자는 힘겹게 덜컹거리고 때로는 바닥에 고꾸라진다.

이 피아노가 가는 험난한 길은 선교사 리처드 사이드보텀의 1900년 편지에 적힌 실제 운송 과정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높아지는 기준음을 둘러싼 서구 근대화의 쟁점들이 조선에 수입되는 순간, 나아가 한국 음악의 장에 탈식민의 각축장이 들어서는 상징적 순간을 구현한다.

그렇게 모처에 도달해 재조립된 피아노가 처음 연주될 때 악기에서 울려 퍼지는 것은 소리를 넘어선, 제도화된 음(音)이다. 작업 중간중간에 흐르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는 연주를 녹음한 후 후반 작업을 통해 기준음의 음고를 인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하지만 청자의 귀는 그 불안정한 선율 속에서도 기어코 ‘음악적인 순간’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 영상의 마지막에 대화를 나누는 연주자들 또한 음정의 충실함을 고민한다.

〈밝은 소리 A〉는 이렇게 소리와 음 사이, 음과 음 사이, 소음과 화음 사이, 감각과 감상 사이를 미끄러져 다니면서 귀를 기울이기만 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소리 바깥의 정치를 드러낸다.


김영은,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 2022,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7분 58초 © 김영은

전시 《소리의 틀》에 포함된 여섯 개의 작업은 소리를 옮기는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해 질문한다. 어떤 소리를 다른 소리로 옮기거나, 한 곳의 소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소리를 매체나 기호로 옮긴다. 하지만 소리는 사물도 개념도 아니기 때문에, 옮김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본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연작은 이런 소리의 운명을 가속화해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 작은 퍼포먼스는 노이즈 제거 플러그인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민족지학적 기록 녹음을 소거해버리면서, 살아있는 실천이 아니라 박제된 자료로서의 음악이 앞둔 다소 어두운 미래를 예견한다.


김영은, 〈오선보 이야기〉, 2022, 싱글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47분 5초 © 김영은

그러나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음악이라 해서 음악의 원형이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연주와 해석이 반복될수록 음악은 환경과 함께 더욱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며 다른 소리로 다시 태어난다. ‘Sounds Lost in Translation(번역 과정에서 잃어버린 소리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영상 작업 〈오선보 이야기〉는 이에 대한 탐구를 종합적으로 담고 있다.

작업의 출발점은 1914년 발행된 한 〈영산회상〉 악보로, 당시 음악교사였던 김인식이 양금 연주를 염두에 두고 전통기악곡을 오선보에 채보한 것이다. 15세기에 처음 기록된 〈영산회상〉은 이후 한 악장에서 아홉 개 악장으로, 성악곡에서 기악곡으로 변모했으며, 보다 역사가 오래된 전통 현악기부터 16세기 이후 서양에서 유입된 양금까지 ‘출신’이 다른 여러 악기로 연주되었다.

이렇게 변천을 거듭한 뒤 발생한 김인식의 양금보는 원본을 소실한 번역본, 게다가 수상한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번역본과 같다. 작업에 등장하는 연주자, 작곡가, 음악연구자 들은 이 악보의 허점과 맹점을 살피며 악보 형식, 음체계, 악기, 음악문화와 교육을 가로지르는 여러 추론을 내놓는다. 하지만 〈오선보 이야기〉는 잃어버린 원본을 추적하고 복원하는 탐사물은 아니다.

그 대신, 문화적 식민주의와 굴절된 전통이 남긴 구멍들을 바라보고 그를 건너가는 다양한 창작의 전략에 주목한다. ‘화음을 모르는’ 이들이 부르는 불협화음의 합창, 연주자가 악보를 배신하며 만들어내는 자의적인 음, 그리고 서로 다른 악보를 참조한 두 번의 연주를 하나로 중첩해 만들어낸 음향적 체험처럼, 과거의 공백은 창작의 재량권이 발휘되는 징검다리가 된다.  


김영은, 〈눈물젖은 트위스트〉, 2022, 멀티 채널 사운드 설치, 5분 루프 © 김영은

김영은의 작업은 음악을 소리로 분해하고, 그를 둘러싼 소리의 체제를 분석하면서 ‘듣는 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작업들에 그림자처럼 편재하는 음악의 막강한 정서적인 힘이 이내 관객의 귀를 사로잡아버릴 때가 있다. 이는 소리를 재료로 삼는 작업들이 피해 가기 어려운 덫이지만, 그만큼 소리는 다른 분석적 매체가 갖는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는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눈물 젖은 트위스트〉는 그런 음악의 위력을 전면으로 가져오면서, 지상 전시장에 위치한 작업들의 접근을 거꾸로 뒤집는다. 〈눈물 젖은 트위스트〉는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법적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던 대중가요 이십여곡을 조합해 만든 사운드 작업이다.

곡마다 특정 악기 파트를 골라 일부 구간을 커버한 후, 기존의 타임라인 그대로 앉혀 하나의 곡으로 재조합했다. 군사정권의 정치적 탄압, 문화적 엄숙주의, 민족주의적 정서 등 음악 외적인 이유로 침묵 당했던 곡들은 가수도 가사도 제목도 없이 오직 음만으로 복귀해 서로와 포개어진다.

소리도 음악도 아닌, 소리이지만 음악이기도 한 이 다성적인 울림이 내포한 바를 듣기 위해서는 옮기는 손을 멈추고, 귀를 조금 더 열어야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