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25》 전시전경 © 국립현대미술관

우리의 바람에는 특별한 성질이 있었다. (…) 시간이 흐르면서, 내 귀는 배경의 소음에 조율되어 갔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조용히 하라고,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말라고 가르침 받았을 때조차도, 아니 어쩌면 특히 그럴 때일수록, 닳아 풀리기 시작한 옷감의 가장자리에서는 그 익숙한 침묵의 실을 잡아당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그레이스 M. 조,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김영은은 지난 20년간 한국의 소리 역사와 친밀한 접촉을 여는 다학제적 실천을 이어왔다. ‘소리 민족지학’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작업 전반에 걸쳐 수집되고 무대화된 소리들은 시간과 장소에 깃든 복잡한 심리적·감각적·역사적 특수성을 섬세하게 펼쳐낸다. 김영은의 작업에서 소리는 한국의 군사주의, 이주, 디아스포라 관계성의 유산을 좇으며 식민 폭력과 근대화 과정, 그리고 그에 수반된 감각의 위계가 부정해 온 구멍 난 서사의 틈을 메운다.

그녀의 개념적 개입은 작업 전반에 걸쳐 지식을 시각 중심으로 환원해 온 서구적 인식 체계에 맞선다. 시각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작가는 청취의 양태들이 근대화와 식민주의의 논리에 따라 어떻게 각인되어 왔는지 또한 주목한다. 이러한 탐구로부터, 억압되거나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곤 하는 사회정치적·역사적 맥락을 일상 속 잔여물로 드러내는 강렬한 청각 아카이브가 생성된다.

소리라는 패러다임은 김영은에게, 관객들이 그레이스 M. 조(Grace M. Cho)가 “닳아 풀리기 시작한 옷감의 가장자리”라 부른 지점과 조율될 수 있도록 하는 민족지학적 진입점을 제공한다. 소리는 식민 지배가 남긴 닳아 풀린 경계 속에서 울려 퍼지고, 청취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고 실행하는 형식이 된다.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은 청취가 단순히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를 넘어선다고 말해왔다. 이는 청취 행위 자체에 어떻게 이데올로기가 스며드는지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소치틀 마르실리-바르가스 (Xochitl Marsili-Vargas)는 “청취는 해석의 행위이면서도, 동시에 특정한 사회적 공간을 점유하는 것, 즉 세계에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을 수반한다”라고 시사한다.

청취자의 맥락은 고유하며, 따라서 주어진 소리가 어떻게 코드화되고 재현되는지에 대한 주체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소리를 듣는 것은 윤리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김영은에 따르면, 그녀의 실천은 여전히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추동된다. “청취는 지식 생산과 탈식민화 과정에서 어떤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녀의 여러 작업에서 ‘소리 민족지학’은 공식 국가 서사를 넘어 울려 퍼지는 역사의 중첩과 정치적 저항 행위를 세심하고도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한다.

주목할 점은, 이 방법론이 텍스트에서 음악, 환경음, 준언어적 소리에 이르는 모든 양태의 소리를 관찰한다는 것이다. 김영은은 작업 전반에 걸쳐 의미 없다고 여겨지거나 즉각적으로 읽히지 않는 소리들에 고유한 의미와 변혁의 잠재력을 부여한다.


김영은,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Ⅲ〉, 2025, 단채널 비디오, HD,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2분 © 김영은

소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음향적 실체’를 탐구하며

『작명소 레슨: 세 개의 트리트먼트』(2009)는 김영은이 200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제작한 세 편의 영상 작업을 위한 트리트먼트를 담은 책이다. 트리트먼트는 영상의 전체 개념, 스토리라인, 스타일적 접근 방식을 기술하는 문서를 일컫는다. 또한 제작에 앞서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서사의 세부 사항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책과 그에 연관된 영상 작업 삼부작은 구두점, 발화, 음성 기호라는 예상치 못한 주인공들을 내세운다.

예를 들어, 「제1장: 구술지대」(2009)에서는 텍스트가 소설처럼 배치된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또르르르르르르르—” 이어지는 문장들은 아이가 놀이의 시작을 알리며 혀로 소리를 내는 모습을 묘사한다. “마그마”라는 단어는 처음 등장한 뒤 연속해서 열다섯 번 반복된다. 페이지의 마지막 줄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단어는 아이의 입 속에서 반복될수록 그 의미를 잃어간다.”

작가에 따르면, 이 장의 각 페이지는 하나의 단어로부터 파생된 소리, 기호, 음성 부호, 그리고 그것들이 가리키는 대상을 드러내는 사건 장면을 기록한다. 화용론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비워두고 페이지에 충분한 여백을 남김으로써, 관객과의 공동 저작을 유도한다. “마그마”는 우리의 참여 없이는 줄거리가 정해지지 않는, 모습을 뒤바꾸는 주인공이 된다. 이 수행적 틀은 소리, 기호, 단어, 지시 대상 사이의 관계를 느슨하게 풀어내며, 작품과 맺을 수 있는 다양한 서사나 관계가 등장할 여지를 만들어낸다.

「제3장: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2011)의 트리트먼트에서, 주인공인 세미콜론은 동료 문장 부호들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임무를 맡는다. 붙임표나 줄임표 같은 각 문장 부호는 문장 내에서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지닌다. 그러나 문장 부호들은 언어에 미치는 형성적 영향력과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고 이해되는지를 좌우하는 힘에도 불구하고 소리 없는 존재로 남겨지곤 한다.

한 페이지는 세미콜론과 콜론의 만남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를 만나는 건 쉬웠습니다. 애써 보려 하지 않아도 나와는 너무 가까이 살고 있어서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 하지만 나는 한때 그에게 심한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3:16, 로마서 5:18과 같은 성스러운 일을 해내는 것이었죠.” 문장 부호에 목소리와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김영은은 단어와 기호의 이미지로부터 ‘음향적 실체’를 끌어낸다.

상상력의 확장 속에서, 세미콜론은 개성으로 충만한 존재로 등장하며 관객에게 이야기의 주인공이 지닌 이념과 심리적 삶에 대한 친밀한 통찰을 제공한다. 기호학과 그 감각적 제약에 도전하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언어를 구성하는 소리와 기호는 유연한 사회적·물질적 힘으로 부각된다. 이들이 변주될 때 그 관계의 자의성이 드러나고, 언어적 헤게모니의 ‘거의 같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특성이 유희적으로 연출된다.


김영은, 〈듣는 손님〉, 2025,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다채널 사운드, 38분 © 김영은

역사를 (다시) 울리다

2014년 9월 28일부터 12월 14일까지, 홍콩에서는 우산운동이 벌어져 도심의 상업 지구에서 79일간 민주화를 요구하는 점거 시위가 펼쳐졌다. 경찰의 최루액과 최루가스를 막기 위해 펼쳐 든 우산은 시위대의 비폭력적이고 끈질긴 저항을 상징하는 기표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시위가 그렇듯, 시위 현장은 연설, 활동가들의 구호, 정치적 슬로건으로 채워지며 소리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이 시위에서는 뜻밖의 음향 전술이 등장했다. 시위대와 반대 진영 간의 긴장을 풀려던 한 참가자가 메가폰을 조작하던 중, 실수로 ‘생일 축하’ 노래를 틀어버린 것이다. 이 우연한 사고는 순간 군중의 침묵을 불러일으켰고, 이어 자발적인 박수와 함께 광둥어로 부르는 ‘생일 축하’ 합창이 울려 퍼졌다. 반대편 시위대는 결국 현장을 떠났고, “비논리적 음향 풍경”은 잠재적 폭력을 완화하는 전 세계 시위자들의 정치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장면은 김영은의 작품 〈소리의 살〉(2015–2019)에 영감을 주었다. 

김영은이 “우연히 일어난 작은 사건을 통해 시위 노래로 선택되고, 집단적인 목소리라는 도구를 통해 상징적 힘을 획득한” 노래를 참조한다고 밝힌 〈소리의 살〉은, ‘생일 축하’ 노래가 비물질적 소리로서 집단적 참여를 거쳐 신체화된 저항의 도구로 변모하는 과정을 탐색한다. 작업은 한 사람이 ‘생일 축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녹음으로 시작되며,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이 목소리는 점차 겹쳐지고 축적되어 다성의 합창으로 확장된다.

녹음이 더해질수록, 처음엔 단일했던 목소리는 점점 더 깊이와 무게, 역동성을 띠게 된다. ‘생일 축하’라는 익숙한 말과 그에 수반되는 축하의 정서는 맥락의 부조화와 집단적 발화를 통해 새롭게 재편된다. 집단적 목소리가 지닌 물질성은 의미를 매개하는 강력한 도구로 조명된다. 그러나 이런 맥락에서 소리가 지닌 육체성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소리는 의미를 가능하게 하지만, 스스로 의미를 창출하지는 않는다.

잘못 눌린 버튼에서 비롯된 우연한 실수와 그에 이은 집단적 합창은 노래와 그것을 부르는 목소리의 의미작용이 신체성과 맥락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변형됨을 보여준다. 위니 W. C. 라이 Winnie W.C. Lai는 “시위자들은 시위 공간에서 물리적 신체로 존재하는 자신과 함께 소리를 재맥락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정치적 참여자로서의 역할과 행동을 숙고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소리의 살〉에서 단일한 목소리는 집단적 신체로 변모하며, 김영은은 목소리들의 축적을 통해 정치적 가능성의 음향을 향한 몸짓을 구가한다. 

김영은의 작품 전반에서 저항적 소리 민족지학을 엿볼 수 있지만, 그녀는 목소리와 소리가 군사주의를 강화하고 폭력과 전쟁을 조장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2017년 김영은은 남북한 사이의 사실상 국경이자 중무장 지대인 비무장지대 DMZ에 설치된 확성기 방송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은 사운드 설치작품 〈총과 꽃〉(2017)을 선보였다. 1953년,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측 공산군과 미국이 지원하는 남측 정부 간의 한반도 지배권 전쟁이 휴전협정으로 상징적 중단에 이른 이후에도, 남과 북은 여전히 잠재적 충돌 가능성을 안은 채 대치 중이다. 양측 모두 접경 지역에 막대한 군 병력을 배치한 상태다. 

작가가 ‘음향 전쟁’의 사례로 설명한 바와 같이, 남북한은 전략적으로 확성기 벽을 마주 보게 설치하고, 선전 방송은 물론 음악, 국제 뉴스, 군악대 소리, 심지어 늑대 울음소리와 징 소리까지 상대 진영 깊숙이 송출했다. 이 고출력 확성기는 20km 이상 떨어진 곳까지도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성기에서 방출된 소리는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 MDL에 갇히지 않는다.

소리는 이동하고, 부풀고, 줄어들며, 관통한다. 소리는 경계를 우회하고, 적진을 넘나든다. 반향은 차별하지 않으며, (때로는 가차 없이) 내용과 형식을 가리지 않고 몰아친다. 소리는 모든 감각을 자극하고 정신에 잔류한다. 소리가 지닌 다감각적 속성은 신체를 주목하게 하며, 소리의 체감적 차원에 대해 탐구하도록 이끈다. 전쟁 행위를 감각적이라 묘사하는 일은 직관을 거스르는지도 모른다. 감각적이라는 말은 종종 쾌락과 연관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앰버 머서 Amber Musser가 말하듯, 감각적인 것은 “몸으로 체감되는 세부들”과 “육체가 스스로 고유한 앎의 방식을 호출하는” 방식에 집중하게 한다. 김영은은 소리를 온몸으로 맞닥뜨림으로써, 경계에 관한 민족지학적 탐구에서 더욱 감각적이고 공감각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총과 꽃〉에서 김영은은 대중적 사랑 노래의 형식을 차용해 소리를 무기로 삼는 것에서 비롯된 청취 경험을 재구성한다. 사랑 노래는 흔히 로맨스와 연관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로 인식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활용되는 방식과 맥락은 이러한 기대와 어긋난다. 이는 어떤 소리든 공포와 지배의 감각을 유발하도록 기계화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 설치 작업은 V자 형태로 배열된 스피커 스탠드에 다섯 개의 혼 스피커를 올린 모습으로, 한국군이 실제로 사용한 대중적 사랑 노래에서 추출한 소리들을 편집·재구성한 4분 길이의 사운드를 반복 재생한다. 작가는 확성기를 통해 사랑 노래가 만들어내는 물질적 경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이러한 증폭된 소리를 두고 “청취의 작동 원리는, 마치 원거리에서 발포된 총알이 목표 대상에 물리적 영향을 미치듯, 진동하는 공기가 소리의 근원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의 고막을 두드려 작동하는 원격 촉각이라는 점을 상기했다”라고 설명한다. 무기로 전환된 사랑 노래는 사정거리 내에 있던 이들에게 물리적 타격을 입혔고, 그 멜로디는 청각적 특성이 사라진 뒤에도 진동으로 몸에 남았다. 

니나 선 아이즈하임 Nina Sun Eidsheim은 소리가 우리의 상호 관계를 형성하는 “물질 간의 진동을 통한 실천 intermaterial vibrational practice”이라 부른다. 확성기 방송은 국경지대에 배치된 병사들과 그 지역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총과 꽃〉에서 김영은은 오디오를 ‘조각적 방식’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이러한 감각적 경험을 재구성한다.

오디오의 시각적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스펙트로그램을 활용해 사랑 노래 가운데 하나에서 특정 주파수를 추출한 뒤, 파편화되고 타격적인 음파의 격발로 이뤄진 루프 형태로 편집했다. 이 소리는 때때로 불편할 정도의 강도로 울려 퍼진다. 다양한 음높이와 음색으로 듣는 이를 ‘공격’하며, 원래는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쓰였던 음악이 지닌 모든 연상 작용을 뒤집는다. 이 작품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이로써 김영은은 송은문화재단이 매년 수여하는 권위 있는 미술상인 제17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영은, 〈청음훈련〉, 2022,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사운드(스테레오,바이노럴), 15분 © 김영은

‘청음 훈련’: 사회정치적 지형으로서의 소리와 청취

2022년 발표한 〈청음 훈련〉, 〈오선보 이야기〉, 〈밝은 소리 A〉 등 일련의 작업에서 김영은은 근대화와 식민 침탈의 과정을 통해 매개된 소리와 청취의 역사가 어떻게 중첩되는지에 대한 탐색을 이어갔다. 〈청음 훈련〉에서는 일본군이 병사들에게 적군의 비행기와 잠수함의 음고와 리듬을 식별하도록 훈련시켰던 청음 훈련에서 착안, 음고 인지 훈련을 재연함으로써 한국의 음악 교육 역사를 다룬다.

이 재연은 병사들의 악보, 음성 녹음, 인터뷰, 학술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 육군과 해군 병사들이 한국 점령기 동안 겪은 소리 풍경(soundscape)을 재창조한다. 김영은은 이러한 훈련의 재구성을 통해, 감각이 전쟁 무기로 동원되는 군사화의 과정을 조명한다.

〈오선보 이야기〉 역시 역사적 기록물에 주목하며, 한국에서 이루어진 또 다른 형태의 인식 훈련을 조명한다. 47분 길이의 단채널 영상은 1914년, 한국인 음악가가 처음으로 서양 기보법으로 채보한 악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 다른 기보 체계 간의 번역 과정은 원본 악보 위에 온통 지워짐과 왜곡된 해석의 흔적을 남긴다.

김영은은 한국 전통음악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서양식 기보에서 추출된 작곡 요소들을 재조합한다. 관객은 번역이 문화 권력의 역학에 따라 형성되며, 인종적 수탈과 상실의 역사가 만들어낸 생략과 공백을 남긴다는 사실을 강렬히 자각하게 된다.

〈밝은 소리 A〉 역시 서양 음악의 제도화를 탐구한다. 첫 장면에서는 커다란 목재 운송함이 밧줄에 묶인 채 프레임 밖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해변을 가로질러 끌려간다. 이때 내레이터가 말한다. “3월 26일, 사문에 도착해 보니 피아노가 이미 육지에 내려져 있었습니다. 지극히 감사한 일이었죠.” 이 작업은 20세기 초의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대구에 처음 피아노가 도착했던 순간을 돌아보고, 이와 더불어 서양 음악의 기반을 이루는 음고 체계가 어떻게 도입되었는지를 되짚는다.

서양 음악은 19세기 말 개신교 선교사들을 통해 한반도에 전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피아노는 사문진항을 거쳐 선교사 리처드와 에피 사이드보텀(Richard and Effie Sidebotham) 부부에게 배송되었고, 이를 지켜보던 한국인들은 나무 상자에서 흘러나온 “이상한 소리”에 “귀신통”이라는 별칭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A음은 440Hz의 주파수에 해당하며, 이는 대부분의 현대 악기를 조율할 때 기준이 되는 표준 음고다. 더 높은 주파수로 조율할수록 소리는 더욱 선명하고 맑게 들린다. ‘더 밝은(brighter)’ 음악을 선호하는 서구의 감각에 따라, 피아노와 그에 수반되는 음악적 표준은 한국인의 청각적 취향과 감상의 기준을 전통 음악으로부터 유럽과 미국의 근대적 체계로 이동시켰다.

한국 사회에서 피아노는 특권층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근대화를 향한 정치적 전환을 뒷받침하는 통로가 되었다. 이 악기는 선교 활동과 종교 교육과도 긴밀히 얽혀 있었으며, 선교 수단으로서 서양 음악은 한국의 기독교화에 일조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식 음악 교육과 기독교 이념은 한국인들에게 함께 주입되었다. 〈밝은 소리 A〉에서 김영은은 피아노의 등장이 한국 사회에 초래한 사회정치적 파장을 가리키는 역사적 장면을 재구성한다.

서양 음악의 유입은 한국의 전통적 가치 체계를 변화시켰고, 오늘날 한국인이 소리를 듣고 청취를 경험하는 전반적인 방식을 구축했다. 피아노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악기이지만, 피아노가 담고 있는 소리와 교육 체계는 결코 중립적이거나 무해한 존재가 아니다. 이 악기는 서구에 대한 동질화 기제에 끼워진 하나의 ‘이상한’ 톱니바퀴로 작동한다.

우리가 그것에 다른 방식으로 귀 기울이고, 다시 말해 다른 감각 체계로 조율할 수 있다면, 이는 지식의 감각적 체계를 드러내며 무엇이 상실되었고 무엇이 가능했을지를 사유하게 만든다.


김영은, 〈Go Back To Your〉, 2025, 단채널 비디오, 4K,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앰비소닉), 10분 © 김영은

디아스포라의 소리를 듣다

소리가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일 때, 우리는 어떤 청취의 계보를 포착하게 되는가? 트라우마의 역사는 어떻게 들을 수 있으며, 그것이 몸에 새겨질 때 우리는 어떤 윤리적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는가? 디아스포라는 어떤 소리로 들리는가? 소리는 데이터를 운반하며, 우리는 청취를 통해 그것을 처리하고 소통한다. 하지만 청취란 결코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다.

청취란 “역사적으로 우연하며 문화적으로 특수한 가치 체계에 의해 조건 지어진 해석적이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실천이며, 권력관계의 균열로 가득하다.” 김영은은 최근 작업에서 자신이 구축해 온 소리 민족지학적 접근을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작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언어, 음악, 일상에서의 청각 경험들에 주목하며, 이주의 역사가 어떻게 고유한 청취의 양식을 생성하는지를 탐색한다.

미국 내 한국인 디아스포라와 한국전쟁의 여파에 대해 서술한 그레이스 M. 조는 한국 디아스포라를 “세대를 가로질러 따라붙는 유령 들린 (transgenerationally haunted)” 존재로 묘사한 바 있다. 그녀는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기억되지 못한 트라우마와 상실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썼다. 또한, “말로 옮길 수 없거나 불확실한 개인적·집단적 역사가 ‘유령’의 형상을 취할 때, 그것은 말할 수 있는 육체를 찾아 헤매며 디아스포라의 시공간 전반에 걸쳐 퍼진다.”

김영은은 폭력과 이주로 인한 트라우마의 역사를 형상화하고 소리로 구현하는 작업을 통해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겪어온 “유령 들린 공간(haunted spaces)”을 가리키는 다성적인 서사들을 전달한다.

〈Go Back To Your〉(2025)는 미국에서 한국인 여성들이 경험하는 인종차별적 폭력의 소리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단채널 영상 작업이다. 소리 풍경 속에서는 빗소리 사이로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공의 응답은 텍스트로 제시된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네 쪽으로 걸어갔어. 너는 깜짝 놀라 휴대폰을 꺼내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위협했어. 나는 말했어. ‘난 여기서 태어났다고.’” 한 번도 속해본 적 없는 곳으로 돌아가라는 외국인 혐오의 외침은 가해자의 예상을 벗어난 방식으로 되받아지며 그녀의 주체성과 맞물려 오히려 위협으로 인식된다. “난 여기서 태어났다고”라는 말이 지닌 응축된 정동은 복종에 맞서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인은 군사화된 폭력과 트라우마의 역사를 짊어지고 있으며, 이는 말할 수 없는 상실에 의해 형성된 지움과 침묵을 낳아왔다. 부정된 역사의 “유령들에 살을 붙이는” 글쓰기를 시도한 그레이스 조의 방법론과 같이, 김영은의 소리 민족지학은 인종차별의 트라우마를 “세대를 가로지르는 유령 들림”으로 인식한다. 〈Go Back To Your〉에 등장하는 텍스트는 타자성에 형태를 부여하고, 과거에는 말로 표현하기에 너무 고통스러웠던 주체들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김영은이 구성한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소리 풍경은 청자로 하여금 익숙한 인식의 틀을 내려놓게 만든다. 이러한 인식의 습관은 디아스포라가 민족주의적 상상력으로 구축된 지식 체계를 어떻게 흔들고 교란하는지를 지워버린다. 〈듣는 손님〉(2025)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김영은은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소련 출신 한인) 공동체와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이민자들이 겪는 디아스포라적 경험에 주목한다.

한 장면에서는 두 중년 남성이 마주 앉아 한국 사회가 자신들을 인식하는 방식과 이주 경험으로 형성된 자신들의 모습 사이에 놓인 괴리를 되짚는다. 둘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러시아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꿈꿀 때 러시아 말로 나와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 아니에요. 러시아 사람이에요. 진짜.” 여기서 문화는 언어와 행위가 인종과 민족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맞지 않을 때 생겨나는 어긋남의 경험으로 나타난다.

그는 이어서 사회적 당혹감의 근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디 밖에 나가면 꼭 외국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줘야 해. 왜냐면 어떨 때는 ‘이 사람 장난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해. 얼굴은 똑같으니까. 그래서 시장 같은 데 가면 ‘저는 외국 사람이니까 한국말 부족해도 용서해 주세요’ 해놓고 이야기 시작해.”

고려인은 구소련 출신의 한민족을 일컫는다. 1세대 고려인들은 기근과 착취, 관료적 통제를 피해, 이후에는 일본의 점령을 피하고자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 지역은 이러한 이주의 물결과 함께 한민족의 문화와 정치, 항일 저항의 거점이 되었다. 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뒤, 스탈린은 한국인 디아스포라를 특정 인종에 의한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했다.

같은 해, 스탈린 정권은 약 18만 명의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주로 1990년대 한국과 구소련 국가들의 공식 외교 관계 수립 이후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이주하기 시작한 이들의 후손으로 이뤄진다. 많은 2세대 고려인과 후속 세대에게 있어 ‘인종’은 오직 조상을 통해서만 유령처럼 이어진 문화와 지리적 배경에 그들을 얽매이게 한다.

이 영상 작업은 고려인 디아스포라 2세대가 한국어를 배우고 말하려는 고투를 보여준다. 이들에게 한국어는 디아스포라에 속한다는 감각을 긍정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모순된 조건들을 담은 소리와 기호의 집합체다. 러시아어의 소리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을 명백한 외국인으로 낙인찍지만, 그들을 가족과 역사, 공동체로 이어주기도 한다. 김영은은 이 작업을 비롯해 그녀의 아카이브에 담긴 여러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소리를 관계 속에서 듣는 비판적 청취의 실천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

리스베스 리파리(Lisbeth Lipari)는 『듣기, 사유하기, 존재하기: 조율의 윤리를 향하여』(2014)에서 이렇게 썼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고유한 취약성과 나약함을 드러내게 된다.”

김영은의 작업을 따라 소리가 지닌 민족지학적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신의 무지를 겸허히 인식하고 그와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닳아 풀린 지식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타인을 감각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보다 윤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이는 새로운, 그리고 바라건대 더 정의로운 함께 있음의 형식들을 가능케 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