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다시) 울리다
2014년 9월 28일부터 12월 14일까지, 홍콩에서는 우산운동이 벌어져 도심의 상업 지구에서 79일간 민주화를 요구하는 점거 시위가 펼쳐졌다. 경찰의 최루액과 최루가스를 막기 위해 펼쳐 든 우산은 시위대의 비폭력적이고 끈질긴 저항을 상징하는 기표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시위가 그렇듯, 시위 현장은 연설, 활동가들의 구호, 정치적 슬로건으로 채워지며 소리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이 시위에서는 뜻밖의 음향 전술이 등장했다. 시위대와 반대 진영 간의 긴장을 풀려던 한 참가자가 메가폰을 조작하던 중, 실수로 ‘생일 축하’ 노래를 틀어버린 것이다. 이 우연한 사고는 순간 군중의 침묵을 불러일으켰고, 이어 자발적인 박수와 함께 광둥어로 부르는 ‘생일 축하’ 합창이 울려 퍼졌다. 반대편 시위대는 결국 현장을 떠났고, “비논리적 음향 풍경”은 잠재적 폭력을 완화하는 전 세계 시위자들의 정치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 장면은 김영은의 작품 〈소리의 살〉(2015–2019)에 영감을 주었다.
김영은이 “우연히 일어난 작은 사건을 통해 시위 노래로 선택되고, 집단적인 목소리라는 도구를 통해 상징적 힘을 획득한” 노래를 참조한다고 밝힌 〈소리의 살〉은, ‘생일 축하’ 노래가 비물질적 소리로서 집단적 참여를 거쳐 신체화된 저항의 도구로 변모하는 과정을 탐색한다. 작업은 한 사람이 ‘생일 축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녹음으로 시작되며,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이 목소리는 점차 겹쳐지고 축적되어 다성의 합창으로 확장된다.
녹음이 더해질수록, 처음엔 단일했던 목소리는 점점 더 깊이와 무게, 역동성을 띠게 된다. ‘생일 축하’라는 익숙한 말과 그에 수반되는 축하의 정서는 맥락의 부조화와 집단적 발화를 통해 새롭게 재편된다. 집단적 목소리가 지닌 물질성은 의미를 매개하는 강력한 도구로 조명된다. 그러나 이런 맥락에서 소리가 지닌 육체성은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소리는 의미를 가능하게 하지만, 스스로 의미를 창출하지는 않는다.
잘못 눌린 버튼에서 비롯된 우연한 실수와 그에 이은 집단적 합창은 노래와 그것을 부르는 목소리의 의미작용이 신체성과 맥락이라는 특수성에 따라 변형됨을 보여준다. 위니 W. C. 라이 Winnie W.C. Lai는 “시위자들은 시위 공간에서 물리적 신체로 존재하는 자신과 함께 소리를 재맥락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정치적 참여자로서의 역할과 행동을 숙고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소리의 살〉에서 단일한 목소리는 집단적 신체로 변모하며, 김영은은 목소리들의 축적을 통해 정치적 가능성의 음향을 향한 몸짓을 구가한다.
김영은의 작품 전반에서 저항적 소리 민족지학을 엿볼 수 있지만, 그녀는 목소리와 소리가 군사주의를 강화하고 폭력과 전쟁을 조장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2017년 김영은은 남북한 사이의 사실상 국경이자 중무장 지대인 비무장지대 DMZ에 설치된 확성기 방송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은 사운드 설치작품 〈총과 꽃〉(2017)을 선보였다. 1953년,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측 공산군과 미국이 지원하는 남측 정부 간의 한반도 지배권 전쟁이 휴전협정으로 상징적 중단에 이른 이후에도, 남과 북은 여전히 잠재적 충돌 가능성을 안은 채 대치 중이다. 양측 모두 접경 지역에 막대한 군 병력을 배치한 상태다.
작가가 ‘음향 전쟁’의 사례로 설명한 바와 같이, 남북한은 전략적으로 확성기 벽을 마주 보게 설치하고, 선전 방송은 물론 음악, 국제 뉴스, 군악대 소리, 심지어 늑대 울음소리와 징 소리까지 상대 진영 깊숙이 송출했다. 이 고출력 확성기는 20km 이상 떨어진 곳까지도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성기에서 방출된 소리는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 MDL에 갇히지 않는다.
소리는 이동하고, 부풀고, 줄어들며, 관통한다. 소리는 경계를 우회하고, 적진을 넘나든다. 반향은 차별하지 않으며, (때로는 가차 없이) 내용과 형식을 가리지 않고 몰아친다. 소리는 모든 감각을 자극하고 정신에 잔류한다. 소리가 지닌 다감각적 속성은 신체를 주목하게 하며, 소리의 체감적 차원에 대해 탐구하도록 이끈다. 전쟁 행위를 감각적이라 묘사하는 일은 직관을 거스르는지도 모른다. 감각적이라는 말은 종종 쾌락과 연관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앰버 머서 Amber Musser가 말하듯, 감각적인 것은 “몸으로 체감되는 세부들”과 “육체가 스스로 고유한 앎의 방식을 호출하는” 방식에 집중하게 한다. 김영은은 소리를 온몸으로 맞닥뜨림으로써, 경계에 관한 민족지학적 탐구에서 더욱 감각적이고 공감각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총과 꽃〉에서 김영은은 대중적 사랑 노래의 형식을 차용해 소리를 무기로 삼는 것에서 비롯된 청취 경험을 재구성한다. 사랑 노래는 흔히 로맨스와 연관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로 인식되지만, 그것이 실제로 활용되는 방식과 맥락은 이러한 기대와 어긋난다. 이는 어떤 소리든 공포와 지배의 감각을 유발하도록 기계화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 설치 작업은 V자 형태로 배열된 스피커 스탠드에 다섯 개의 혼 스피커를 올린 모습으로, 한국군이 실제로 사용한 대중적 사랑 노래에서 추출한 소리들을 편집·재구성한 4분 길이의 사운드를 반복 재생한다. 작가는 확성기를 통해 사랑 노래가 만들어내는 물질적 경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이러한 증폭된 소리를 두고 “청취의 작동 원리는, 마치 원거리에서 발포된 총알이 목표 대상에 물리적 영향을 미치듯, 진동하는 공기가 소리의 근원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의 고막을 두드려 작동하는 원격 촉각이라는 점을 상기했다”라고 설명한다. 무기로 전환된 사랑 노래는 사정거리 내에 있던 이들에게 물리적 타격을 입혔고, 그 멜로디는 청각적 특성이 사라진 뒤에도 진동으로 몸에 남았다.
니나 선 아이즈하임 Nina Sun Eidsheim은 소리가 우리의 상호 관계를 형성하는 “물질 간의 진동을 통한 실천 intermaterial vibrational practice”이라 부른다. 확성기 방송은 국경지대에 배치된 병사들과 그 지역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총과 꽃〉에서 김영은은 오디오를 ‘조각적 방식’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이러한 감각적 경험을 재구성한다.
오디오의 시각적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스펙트로그램을 활용해 사랑 노래 가운데 하나에서 특정 주파수를 추출한 뒤, 파편화되고 타격적인 음파의 격발로 이뤄진 루프 형태로 편집했다. 이 소리는 때때로 불편할 정도의 강도로 울려 퍼진다. 다양한 음높이와 음색으로 듣는 이를 ‘공격’하며, 원래는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쓰였던 음악이 지닌 모든 연상 작용을 뒤집는다. 이 작품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이로써 김영은은 송은문화재단이 매년 수여하는 권위 있는 미술상인 제17회 송은미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