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은의 작업 전반에서 형태는 소리와 음향의 물질성들이 조합되면서 드러난다. 이는 소리를 만들어 내는 전통과 기술로부터 소리가 향하는 다채로운 지점, 그것을 듣고 응답하는 방식, 그리고 소리가 사회적 공간을 물질화하는 방식, 소리의 순환을 매개하는 관계들, 또는 문화사에서 소리가 차지하는 위치까지 포함한다.
김영은의 작업에서 우리는 소리가 어떻게 감각되고, 지각 가능해지며, 다시 지각 가능한 형태를 만들어 내는지를 작가가 집요하게 질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소리는 (출처가 불분명하더라도) 대기를 통과하고, 벽을 넘어서, 공간을 가로지르며, 확산하고 의미화된다. 김영은의 작업에서 소리는 형태를 갖추고 하나의 세계를 불러낸다.
김영은의 작업에서 소리는 시노그래피적이고 코레오그래피적인 자극이다. 소리는 사물에 생기를 불어넣고, 공간에 주석을 달며, 정동을 널리 분산시키고, 신체들을 그 주변과 곁으로 모이게 만든다. 다시 말해, 소리는 공간을 배열하고 환경을 물질화하도록 유도하는 (시노그래피적) 자극이자, 신체를 조직하고 이 신체들이 반응하고 실연하게 만드는 (코레오그래피적) 자극이 된다.
나는 김영은의 작업에서 소리가 어떻게 시노그래피적이고 코레오그래피적인 성질을 획득하는지를 사유하면서, 소리 이론에서 이와 맞닿아 있는 인터페이스인 ‘디제틱(diegetic)’ 개념을 함께 탐색하고자 한다.
디제틱에 대한 담론은 주로 영화나 시청각적 틀 안에서 전개되어 왔지만, 나는 이 개념이 김영은의 작품들을 논의할 때에도 공명한다고 본다. 이 경우 디제틱은 영화 담론에서 흔히 짝지어지는 ‘논디제틱(nondiegetic)’과의 이분법적 결합에서 벗어난다. 이는 영화학자 슈테펜 흐벤(Steffen Hven)이 해체하려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디제시스는 즉각적이면서도 매개된 시공간적 환경으로 우리에게 경험된다.
그것이 즉각적인 이유는 운동적, 물질적, 정서적, 기호학적 현존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디제시스는 시청각 구조 전체와 관련이 있으며, 그것의 부분들을 엄격한 범주들—예컨대 디제틱 대 논디제틱, 이야기 대 담론, 내용 대 스타일 등—로 해체하려는 모든 시도는 영화의 환경으로서의 디제시스에 대해 우리가 처음 마주하는 다감각적인 경험을 배반한다”라고 역설한다.
흐벤에게 디제시스는 대체로 하나의 텍스트적 전제로 이해되어 왔다. 다시 말해, 영화의 요소들은 시청각적 자극의 매개 작용 이전에 존재하는 서사를 구체화하기 위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서사가 우선시되면서 영화적 대상의 요소들이 가지는 의미를 형성한다. 영화적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디제틱을 “생태적 의미 형성(ecological sensemaking)”의 문제로 제안하며, “관객이라는 체화된 유기체와의 만남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감각된 매개 환경”을 표면화하는 방식의 하나로 본다.
나는 ‘생태적 의미 형성’의 한 형태로서 디제틱을 재고하고자 한다. 즉 디제틱이 “의미 형성을 위한 관객의 인지적이고 정서적인—영화의 재료를 감각되는 환경이나 정서적 생태로 전환시키는—능력에 기반해 나타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미디어 생태계 안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정서적, 지각적 능력뿐 아니라 일반적인 사고, 감정, 성향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 틀 안에서 정서적, 지각적 능력은 미디어 생태계를 통한 조정 과정과 하나로 겹쳐진다. 소리는 “우리의 즉각적이면서도 매개된 시공간적 환경”이 되며, 우리가 처한 환경과 그 환경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구조화한다. 시노그래피적이고 코레오그래피적인 특성은 이러한 즉각성과 매개를 통해 펼쳐진다.
우리는 초기 작업인 〈삼자대면〉(2013)에서 이런 경향들이 교차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작업은 한국계 미국 작가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의 소설 『딕테(Dictee)』(1982) 속의 파악하기 힘든 다중적인 목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에서는 유관순, 어머니, ‘나’, 마더 테레사의 목소리가 유동적으로 변주되면서 발화한다.
전시장에는 전화기, 환풍기 커버, 그리고 액자에 담긴 사진이 놓여 있고, 전화벨 소리, 환풍기 후면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사진 뒤로 울리는 노크 소리와 둔탁한 충격음 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단편적으로 흘러나온다. 이 연출에서 우리는 각각의 소리를 하나의 단서이자 자극으로 받아들이며 반응한다. 전화벨 소리만은 그 출처가 보이지만, 그 너머의 발신자는 끝내 알 수 없다. 전화벨이 울리고 누군가 수화기를 들자마자 전화가 끊긴다.
전화벨 소리는 전화기 기능의 일부이며, 그 소리는 전화기라는 사물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환풍기는 정체불명의 소리가 흘러들 수 있는 경로이며, 다른 곳에서 소리가 흘러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 또한, 소리를 내는 사물이나 통로가 아닌 사진은 소리와 사물의 관계에 관한 또 다른 음향적 존재론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이 둘의 관계가 근원이나 대상의 차원이 아니라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리와 전시된 사물 사이의 관계는 다양한 층위를 제시한다. 각 소리는 소리-사물-관객의 관계로 이루어진 시노그래피를 제공하며 이 경험은 생태적이다. 특정 공간에 모인 사물들은 그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피드백 메커니즘을 통해 경험된다. 곧, 작품들은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삼자대면〉에서의 자극은 〈맞춤벽지음악〉(2014)에서 설득력 있게 확장되었다. 이 사운드 퍼포먼스는 서울의 오래된 건물인 솔로몬 빌딩에서 진행되었는데, 이 건물은 한때 중고 상점들이 입점하여 시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상점들 사이 칸막이는 모퉁이 코너와 폐쇄된 공간을 만들고, 이로 인해 색다른 풍경, 비뚤어진 입구, 막다른 길 같은 독특한 공간 구조가 형성되었다.
김영은은 이러한 건축적 특이성을 활용해 소리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시노그래피를 만들어 낸다. 퍼포머들은 이 은밀한 공간에 숨어서 소리를 만들고, 지휘자의 신호에 원격으로 반응하며, 다른 퍼포머에게서 들리는 미약한 소리를 단서로 삼는다. 관객 역시 같은 상황에 놓여 있으며, 극히 미세한 단서와 알아차리기 힘든 변화에 집중하며 공연을 따라가려 애쓴다. 듣기 위해 움직이는 몸과, 들리기 위해 움직이는 몸 사이의 코레오그래피가 이 공연의 구조를 이룬다.
〈맞춤벽지음악〉은 김영은이 ‘청각적 공간’이라 명명한 개념을 탐구한 작업으로, 이는 “청각적 경험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며, 본래 그 공간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감지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나아가 작가는 청각적 공간—작가 자신이 “시각적으로 특징이 없거나 완전히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 묘사한 것—의 신체성과 장소성은 소리에 의해서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소리 장면들로 이뤄진 생태계가 〈삼자대면〉과 〈맞춤벽지음악〉에서의 경험을 만들어 냈다. 김영은의 소리 개입을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생태적 의미 형성이다. 소리는 단지 기술이나 양식, 미학, 또는 미술사와의 관계로만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감각과 감각되는 것(the sensible)의 역사를 통해 논의되며, 생태계의 역동적인 생명력 속에 자리한다.
이 생태계는 프랑스 영화이론가 미셸 시옹(Michel Chion)이 말한 “아쿠스마틱(acousmatic)”, 즉 그 출처를 알지 못한 채 소리만을 듣는 경험에 의해 구조화되기도 한다. 바로 이 아쿠스마틱한 직관을 통해 더 거대한 관계적 세계가 함축되는데, 정확히 말하면 전시 공간의 즉시성을 넘어 존재하는 생태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생태적 의미 형성이라는 문제는 작가의 맥락 안에서 ‘감각되는 것’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음악(전통 음악의 지식 체계와 악기, 한국 대중음악의 생산 및 수용, 그리고 그것이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이념적 대립에 사용되는 방식), 도시 환경(도시 공간의 청취 맥락, 예를 들면 교통, 통신, 대중 매체 등 공공 인프라에서 사용되는 안내 방송), 시위, 기억의 재구성 작업 등이다.
작가의 작업 전반에서 소리는 보다 넓은 생태와 문화 안에 자리한다. 위에서 논의된 두 작업의 맥락에서 소리는 단지 읽고, 듣고, 해석하는 텍스트성(textuality)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감각, 인식, 가치로의 번역이라는 인프라뿐 아니라, 이에 수반되는 집합성과 순환의 문제를 함께 담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다루어지면서, 문화로서의 소리가 하나의 생태계로 구성되고 구체화된다.
이러한 시노그래피, 코레오그래피적 자극은 고고학적 감수성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특히 물질적, 기술적 흔적에서 혹은 역으로 징후적 공백에서 소리와 그 역사를 끌어내는 방식을 살필 때 이 감수성을 확인하곤 한다. 디제틱은 이러한 자극을 구조화하는데, 특히 의미 형성이 생태적 요소에 의해 매개되는 방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디제틱은 물질적 현실과 이에 대한 우리의 지각, 그리고 소리의 매개가 하나로 만나 확장적 경험으로 합쳐지는 과정을 암시한다. 이와 관련해 흐벤은 “디제시스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단지 지각 체계만으로도, 혹은 환경이 제공하는 행동 가능성만으로도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고고학적 감수성은 〈오선보 이야기〉(2022)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 작업에서 김영은은 음악을 만들고 감각하는 문화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탐구한다. 특히 읽을 수 있는 기보로 매개하는 여러 방식과 한계, 그리고 토착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변형되고 무엇이 소실되는지를 다룬다.
한국 전통음악사의 맥락에서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고찰하며 작가는 ‘정간보’의 역사를 살핀다. 정간보는 ‘음의 높낮이와 길이를 함께 표시하는 흐름 기반의 악보 체계’이다. ‘전통음악을 해외에 소개하거나 외래 감수성을 한국 음악 작곡에 통합하려는’ 노력 속에서, 악보 표기법은 점차 이러한 토착적 표기 체계를 버리고, 서양 고전 음악의 엄격한 오선보 중심의 체계로 옮겨가기 시작했으며, 이후 오선보는 ‘보편적’ 체계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고 기록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듣고 감상할 수 있는 음의 범위까지 제한한다. 오선보 중심의 체계는 한국 전통음악 표기의 유동성을 정확히 담아낼 수 없다.
〈오선보 이야기〉는 조선정악전습소의 교육자인 김인식이 1914년 「영산회상」의 양금 악보를 서양 오선보 표기법으로 채보한 「조선구악 영산회상」을 다룬다. 이 작품은 전통음악 연주자, 작곡가, 연구자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으며, 토착적 악보 체계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함의를 조명한다.
〈오선보 이야기〉는 물질문화와 지식 문화를 관통하며, 듣기와 청취, 그리고 일반적인 의미 형성의 실천이 식민지적 조우를 통해 어떻게 구성되고 변형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삼자대면〉과 〈맞춤벽지음악〉에서 동시대적으로 구현된 시노그래피, 코레오그래피적 차원은 이러한 의미 형성의 고고학을 통해 한층 복잡해진다. 이 고고학적 전환을 통해 ‘감각되는 것’의 역사는, 곧 이런 역사를 구성하는 재료 그 자체인 지식과 정치의 지도학을 암시한다.
감각되는 것을 역사화함으로써 우리는 동시에 무엇이 보이고 들리는지를 구성해 온 지식 체계와 정치 체계 또한 역사화하게 되며, 나아가 특정한 환경에서 지식과 정치의 역사를 더 많이 알수록, 가능한 감각적 형식의 물질성 또한 더 많이 알게 된다.
이와 같은 고고학적 감각은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더 제기한다. 특정한 감각들을 중심으로 지식 체계가 고정되고 공고해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17분 길이의 영상 작품 〈밝은 소리 A〉(2022)는 미국 선교사가 한국 대구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들여온 사건을 다룬다. 이 피아노는 악기를 일반적으로 조율할 때 표준으로 삼는 A음을 소개한다. 〈청음 훈련〉(2022)은 15분 분량의 영상으로, 김영은은 이 작업에서 ‘한국의’ 미적 교육이 일본의 식민 및 군사 역사와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살펴본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 학생과 군 장교에게 군용기의 웅웅거림 속에서 자신들이 듣는 소리를 기록하게 했던 음고 지각 훈련을 시뮬레이션한다. 두 작품은 의미 형성의 학습과 적응 과정을 식민성과 전쟁의 틀 안에서 도식화함으로써 의미 형성 자체를 탈자연화하고 ‘감각하기, 학습하기, 담론화하기’라는 소리를 둘러싼 관계적 주체자들을 정치적·윤리적·실천적 함의에서 탐구한다. 감각되는 것의 역사는 곧 그것의 정치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관점은 외부 현상과 자극을 코레오그래피적 주석으로 번역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소리와 음악을 매개하는 형태들에 대한 김영은의 집요한 관심을 구체화한다. 이 방식들은 악보, 기보법, 전사, 녹음, 심지어 영화적 장치에 가까운 ‘트리트먼트(treatment)’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경향은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2011) 같은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이 작업에서는 싱글 채널 비디오와 함께 여러 부호들과 관련된 13개의 악보 드로잉이 병치된다. 〈세미콜론;이 본 세계의 단위들〉은 김영은의 책과 비디오 3부작 ‘작명소 레슨: 세 개의 트리트먼트’(2009–2011)의 세 번째 장으로, 기호와 소리 사이의 필연적이거나 자의적인 연결을 탐구한다.
“이러한 언어 행위의 재맥락화와 재배치를 통해, 이 작업은 말과 글이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새롭게 성찰하며, 이들 사이의 또 다른 관계를 상상하도록 이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시노그래피적, 코레오그래피적, 고고학적 관점은 우리로 하여금 소리와 음악의 풍성한 역사를 소리의 역사와 정치, 즉 감각되는 것의 미학으로 이해하게 돕는다. 김영은의 미적 실천은 소리의 시적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소리의 구성 방식과 우발성을 동시에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