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나 재단의 디렉터 애론 시저(Aaron Cezar)는 2017년 델피나 재단의 프로그램과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정금형 작가를 레지던시 참여작가로 선정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2017년 델피나 재단은 예술가, 기관, 그리고 개인 컬렉터들이 수집하고 소장하는 행위(Collecting)에 대한 심리학, 철학 그리고 정치학을 탐구하기 위해 Collecting as Practice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Collecting as Practice에서는 수집하는 행위(collections)를 문화정체성과 새로운 서사의 성장에 있어 활발하고 중대한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잠재적 영역으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특정한 정치적, 경제적, 예술적, 공동체적 및 개인적 맥락에 따라 사물의 물질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에 대응하는 컬렉션의 구축방식을 연구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예술작품에서부터 우표나 레코드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수집에 대한 충동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레지던시 프로그램 최초로 작가와 큐레이터 뿐 아니라 컬렉터를 포함하고 있으며, 전반적인 예술 생태계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델피나 재단의 미션에 부합하는 컬렉터를 위한 획기적인 레지던시이다. 역사적으로 작가와 컬렉터의 역할은 밀접하게 얽혀 있었지만, 특히 서구에서는 그 관계가 점차 동떨어지게 되었다.
델피나 재단은 ‘미술계’에서 이질적인 부분들을 늘 다뤄왔는데, 그 예로 레지던시에 머무르는 작가들이 큐레이터, 학자, 기자, 컬렉터 및 예술 후원자들과 격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패밀리 런치(Family Lunch)’를 들 수 있다.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컬렉터 레지던시에서 컬렉터들은 거주 작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흥미롭고 지속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많은 언론에서 다루는 투기∙투자형 수집은 미술계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Collecting as Practice는 이 주제를 다루면서 동시에 수집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한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벨기에, 브라질, 프랑스, 우크라이나, 중국, 일본, 대만, 홍콩, 터키 및 아랍에미리트 연방 출신의 컬렉터 10명이 델피나 레지던시에 초대됐고, 이들은 기록물 보관과 훼손되기 쉬운 작업을 소장하는 것을 포함하여 수집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보여주었다.
또한 컬렉터들은 작가들의 작업을 지지하며, 거주 작가들과 열린 자세로 작품 수집 및 소장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이에 대한 서로의 소견을 공유했다.
지금까지 Collecting as Practice 프로그램에 초대된 7명의 큐레이터와 7명의 작가들은 레지던시에 참여한 컬렉터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업수행의 일부로서 수집에 심혈을 기울이거나 단체나 기관에서 운영하는 컬렉션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한다. 델피나 재단은 테이트, 로얄 칼리지 오브 아트,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호니만 박물관, 두바이에 본사를 둔 아트 자밀 등 런던에 위치한 기관들과의 협력으로 이러한 레지던시에 기반한 몇몇의 행사와 전시를 개최하였다.
이 프로그램의 컨셉에 맞춰 델피나 재단은 송은문화재단과의 파트너쉽을 통해 2017년 4월부터 6월까지의 레지던시 기간에 정금형 작가를 초대하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3개월간 진행된 정금형 작가의 레지던시는 런던에서의 새 전시와 테이트 모던에서의 전시 및 퍼포먼스로 마무리되었다.
정금형 작업의 핵심은 사물의 형태와 역할에 대한 강렬한 매혹과 거의 강박에 가까운 수집행위에 있다. 지난 11년간 작가는 재활기구, 마네킹, 섹스 보조기구, 진공청소기, 장난감, 의상과 신체단련기구 등 일상용품과 의료용품을 수집해왔다. 초기에 작가가 이 사물들을 수집한 이유는 작가 자신의 신체와 사물들이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퍼포먼스에 사용하기 위해서였으며, 이 퍼포먼스를 통해 인형 조종사와 인형 사이에 전형적인 역학에서의 성 불균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가라지 매거진(Garage Magazine)』에서 엘렌 마라 드 와쳐(Ellen Mara De Wachter)는 정금형의 전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작가는 소품과 움직임에 대한 통제를 유지함으로써 여성을 수동적인 객체로 표현하는 미술사의 저항하기 힘든 경향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녀가 설계한 상황에서 피해자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정금형의 소장품은 작가의 신중하고도 강박적인 선택을 통해 점차 방대해지면서 각 사물들이 가진 본래의 속성을 잃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사물간의 연관성과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컬렉션 내에서 의료분야부터 성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영역의 사물들을 모아 분류하고 카테고리를 창조해냈다.
본인의 작업에서 수집행위의 중요성과 문명사회 및 성적 특징이 반영된 경제 개념에 도전하는 컬렉션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금형은 제15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로서 서울에 위치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2016년 처음으로 전체 소장품을 선보였다.
작가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연장선으로 2017년 가을, 델피나 재단에서 선보인 전시에서 정금형은 지금까지 '퍼포먼스에 사용되지 않은' 사물만을 전시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사물의 대부분은 이미 퍼포먼스에 쓰였던 것들과 동일한 것들로 사물을 보관하고 축적하고자 하는 작가의 강박이 드러난다. 다른 사물들은 작가가 조작하고 개조했으나 퍼포먼스에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들로 작가의 의사결정과 실패(작가의 표현에 따르자면)에 대한 기록이 되었다.
Collecting as Practice에서 정금형은 컬렉터로서의 작가를 대변한다. 작가의 작업은 수집의 철학적, 정치적, 심리적 관점을 짚어주고, 작가의 소장품은 사물들의 가치와 인간으로서 우리가 사물에 의존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