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형제, 〈M의 장〉, 2014, 운정 건강공원 설치 전경 © 무진형제

어느 날 파주 여러 곳곳에 들어선 원통형의 검은 구조물. 그 안 중심에는 유리기둥이 세워져 있다. 그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기둥의 존재를 전혀 알 수 없다. 유리기둥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유리기둥을 보고 있는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파주의 네 곳. 건강공원, 초등학교 운동장, 철거를 앞두고 있는 미군부대, 임진각 평화공원에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설치된 이 구조물의 이름은 ‘M의 장 (場)’이다.

2014년 무진형제가 시도한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 〈M의 장〉은 자신들의 습관적 시각 행위를 확장한 예술 실천이다. 비디오작업을 통해 그들이 줄곧 관찰한 삶의 아포리즘은 이제 카메라 밖으로 나와 관객의 동의와 피드백을 기다린다.


무진형제, 〈M의 장〉, 2014, 웅담초등학교 설치 전경 © 무진형제

1.

(…) 어쩔 수 없이 멈춰선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니 갑작스런 병에 멈춰선 형제들 뿐이었다. 나이도 다르고 가족 내에서는 뚜렷한 위계로 구별되며, 그에 따른 고정된 역할을 해내야만 했던 이들. 하지만 비슷한 분야, 같은 병이 지금까지의 삶과 형제관계를 거대한 장애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 - 무진형제 작업노트

무진형제들 가운데 문학을 전공한 첫째는 글을 쓰고, 조소를 전공한 둘째는 소품을 제작하고, 사진을 전공한 셋째는 촬영을 한다. 이 세 형제는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우리 주변의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이들은 문학, 미술, 사진이라는 각기 다른 장르 안에서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그것을 비디오라는 매체에 기록하여 또 다른 언어를 창조한다.

이 예술적 과정은 무수히 많은 대립과 충돌을 반복하지만, 그 특별한 언어는 결국 ‘무진형제’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고 이들이 예술가로서 지탱할 수 있는 무기와 같다.

제법 터울이 있는 이들이 각각의 삶을 충실히 살다 하나로 뭉치게 된 계기는 미술작업을 홀로 해 오던 둘째의 영상작품을 나머지 형제들이 ‘함께’ 도우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2004년 첫 번째 공동 작품을 제작하면서 이들은 예술가로서의 도전과 협업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문학은 이미지의 표현이, 미술은 서사가, 사진은 연속된 호흡으로 움직임을 담아내기가 너무도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무진형제에게 지금, 첫 작업에 대한 공통의 기억은 ‘떨림’과 ‘쾌감’이다. 더듬거렸고 휘청거렸던 그 무모한 도전은 이들이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들의 역할은 여전하다. 첫째 무진은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둘째 효영은 설치물을 제작하고, 셋째 영돈은 카메라를 사용한다. 이렇게 무진형제는 함께 마주하고 공유하는 매 순간의 삶의 방정식을 자신들만의 협업의 공식으로 풀어간다. 이것이 무진형제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무진형제, 〈M의 장〉, 2014, 철거 전 미군부대 설치 전경 © 무진형제

2. 파주, M을 위한 장소

무진형제가 작업하는 장소는 파주다. 헤이리와 출판단지가 있고, 임진각이 있는 오묘하고 외진 그곳이다. 이들이 10년 이상 함께 거주하고 있는 파주는 삼형제 각각의 삶의 단편들이 얽혀있는 곳으로 이들에게는 매우 일상적인 장소이다. 그들이 생활하는 아파트 단지 주변에는 신도시 개발로 매년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선다. 그들의 눈에 익숙한 것들이 어느새 낯선 것들로 바뀐다.

파주 신도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옥상을 작업장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은 그곳에서 낯설음의 일상을 습관적으로 관찰하고 채집해 왔다. 〈M의 장〉은 이렇게 습관적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감각적 행위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작가들에 따르면 여기서 ‘M’은 어떠한 단어로도 변신 가능하며 무수한 단어들의 좌표 구실을 한다. 〈M의 장〉에는 고정된 의미도 해석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진형제는 파주 네 곳에 원통형의 검은 구조물을 설치하고, 그 안 중심에 ‘메모리얼’ 이라는 이름의 유리기둥을 세워 〈M의 장〉이라는 무대를 설정했다. 무진형제가 선정한 공원, 학교, 버려진 공간 등은 지도를 펼치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호로 표기되는 일반적 장소이다.

무진형제는 이 장소를 ‘M’의 영역으로 표시하고, 자신들이 생활하고 작업하는 공간인 파주를 삶에 밀착된 형태로 변환시키고자 했다. 높이 2.3미터, 폭 6.5 미터의 원통 모양으로 제작된 이 구조물에 들어서 메모리얼을 마주한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게 된다. 유리기둥에 포착된 이미지는 오직 관객들만이 관찰할 수 있다.

관객들의 경험을 무진형제가 간접적으로나마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기둥 안에 설치된 세대의 카메라를 통해서인데, 관객들의 모습은 원통형 구조물 밖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실시간 상영된다. 관객들은 짧은 경험을 마친 후 밖으로 나와 자신들이 느꼈던 감정이나 삶의 이야기를 주저 없이 구조물의 벽면에 글로 남긴다.

‘M이란 알파벳이 다양한 낱말과 의미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도화선이 되듯’ 무진형제의 〈M의 장〉 은 매번 다른 기억과 이야기가 구축되어 새로운 의미가 확산되는 무수한 교점으로서 기능한다. 작가와 관객에게 모두 습관화된 일상의 공간은 언어와 문화가 작동하여 다수의 기억 속에 축적된 논제들이 보관된 ‘토포스’(Topos)로서의 장소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M의 장〉은 상상과 사유의 장으로, 소통과 토론의 장으로 모두에게 인식되고 아카이브 된다.


무진형제, 〈M의 장〉, 2014,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설치 전경 © 무진형제

3. 현장-작품-참여자, 그리고 작품

예술가들은 결코 자신의 작품을 둘러싼 해석행위에 가담하지 않는다. (…) 그래서 예술가들은 작품 주변에 남겨진 의미를 찾아다니는 강력한 관객 (Super Viewer)을 필요로 한다. - 1957년, 마르셀 뒤샹

무진형제는 소통의 결과를 다시 작품으로 피드백한다. 그렇게 완전한 소통을 이룬다. 관객들의 관심과 참여가 이 소통 과정의 계기를 만들어냈다면, 작품을 둘러싼 토론과 비평은 무진형제가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는 실천력을 마련해줬다.

결국 작가들은 네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 예를 들어 운동하는 사람들이 겪는 자기관리에 대한 강박증, 공무원이 장래희망인 초등학생의 꿈, 폐허가 된 미군부대에서 돈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든 가져가려는 사람들의 심리, 여전히 임진각에서 역사를 소비하는 사람들 등을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는 날카로운 쾌감을 모두와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관객과의 만남은 작품 설계 과정에서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

〈M의 장〉에 기록된 영상과 관객들의 행동, 남겨진 텍스트 등은 제2의 구조물로 창작되었고, 이 구조물이 놓였던 곳 주변에서 수집한 온갖 재료들은 세 개의 모니터와 함께 또 다른 설치작업인 제3의 구조물로 확장되었다. 관객의 참여에 의한 콘텍스트가 작가들의 텍스트와 대화하고 논쟁을 펼치는 가운데 〈M의 장〉은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로 완성된다. 〈M의 장〉에서 관찰되는 확장된 연쇄적 프로세스는 미술의 새로운 공공적 가능성을 생산한다.

무진형제에게 비디오작업은 ‘함께’ 마주했던 고민과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서로간의 이해와 화합 작용으로서 작업 활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반면에 이번 프로젝트 〈M의 장〉은 개별적 색의 배합에서 파생되는 ‘공명으로서의 소통 과정’에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참여적 문화 프로세스를 작업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무진형제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이라는 끈끈한 유대감과 예술이라는 공통된 언어의 존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세 명이기에 가능한 이들의 작업은 다른 작가들 간의 협업 모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조정과 교환이 발견된다. 〈M의 장〉은 그런 의미에서 분명 비주류적 집단의 움직임이 진화한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장이요, 이들만의 고유한 예술적 퍼포먼스이다. 이것이 바로 무진형제가 소통하는 예술 실천 행위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