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물리학자이자 양자론의 아버지인 닐스 보어(Niels Bohr)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지인이 티스빌드에 있는 보어의 집을 찾아갔다가 대문에 걸려 있는 말발굽 편자를 보고 “설마 당신 같은 과학자가 이것이 행운을 가져온다는 미신을 믿지는 않겠죠?”라며 놀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보어는 큰 소리로 웃으며 “물론 믿지 않죠. 하지만 믿지 않아도 행운은 찾아온다고 사람들이 그러더군요”라고 대답했다.
보어의 명랑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 약간의 감성을 더한 작가 염지혜의 카니발적인 개인전 《모든 망명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이 있다》는 비슷한 영역을 전설과 행운, 신념과 진화하는 장소의 교차점에서 탐험한다.
이 전시는 영상과 다양한 매체를 이용한 조형물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가가 기존에 탐구한 주제 의식과 같은 문맥을 이어가지만, 그 규모는 보다 확장되었고 장소에 대한 폭넓은 개념을 포함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2015)은 아마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한 잉태 설화를 추상적으로 전한다.
촬영한 영상, 발견된 푸티지,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조합하여 영적인 설화를 우화적인 여행으로 재해석하며, 도시의 성장과 확장 그리고 정글을 정복하는 과정과 신화적인 능력을 가졌던 신비한 동물에서 수족관과 놀이시설의 구경거리로 변한 분홍돌고래 자체의 망명을 동시에 쫓는다. 작가는 작품의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가 장소에 대해 가진 생각이 과연 맞는지 의문을 던지지만, 수면 아래 ‘진정한’ 관점을 찾는 것은 피한다.
대신, 그녀는 구전 설화가 개인의 경험과 경제적 현실이 함께 뒤섞이고, 자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곳—팰럼시스트(palimpsest, 원래의 글 일부 또는 전체를 지우고 다시 쓴 고대 문서,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번역자 역) 자체가 변화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이솔란드〉(2014)는 회색 누에고치와 같은 외형에 둘러싸여 있는 영상인데, 이 작품 또한 망명과 관련 있지만 보다 개인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작가는 분리와 고독을 예측하는 수상가(手相家)의 예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영상을 시작한다. 그녀는 개인과 개체성(individuality)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우리 자신과 타인들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 있어서 자연스럽지만 인위적인 측면들 간의 갈등과 내속된 괴리감을 지적한다.
영상 작품을 담고 있는 누에고치와도 같은 조형물은 이러한 갈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매우 인위적이면서 동시에 씨앗이나 산호충(히드라, 산호류 같은 원통형 해양 고착 생물—번역자 역)과 같은 자연물을 연상시키는 조형물 안에 숨겨져 있는 영상은 특정한 시점에서만 온전히 볼 수 있고 멀리서는 희미하게 보인다. 이 영상은 고해성사하는 것 같이 속삭이다가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가며 종국에는 조형물 안으로 후퇴하는 듯하다.
〈원더랜드〉(2012)은 앞의 질문의 맥락을 잇는다. 이 작품은 아마존의 풍경과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을 떠올리게 하는 브라질의 배경을 사용한다. 영상 초반에는 국적이나 여행에 대한 평범한 인터뷰로 보이나, 이내 작품은 작가와 주제 그리고 작품 자체 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퍼포먼스로 바뀐다. 핀란드의 설원 한가운데에 브라질을 주제로 한 인공 자연림이 위치해 있고, 그곳에서 한 남자가 여행에 대한 꿈과 국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이 남자의 독백은 국민주의에 대한 일부 정치적 오해를 강한 어조로 부정하지만, 여행 계획에 대해서 그리고 자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는 애매하게만 표현한다. 왜 자국을 떠나려고 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어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카메라가 인공 자연림의 무대에 머무르는 동안 어느덧 배경은 어두워지고, 인공 야자나무의 잎은 매서운 눈보라에 날아가며, 결국 이것을 보고 있는 관람객은 답보다 질문이 더 많이 남게 된다.
인공적인 지형을 보여주는 〈프레스케이프〉(2015)는 본 전시장을 들어서기에 앞서 입구에 있는 영상이다. 이 디지털 영상은 계속 변화하는 풍경 속에 자리잡은 다양한 생물체들이 녹아 들어가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뒤에서 앞의 투명한 스크린(홀로그램 레어스크린)에 상영되는 영상은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화면의 정면으로 비춰지는 프로젝터 전구의 밝은 빛은 이 영상을 직접 마주보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하여 관람객은 스크린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서성이며 곁눈으로 봐야만 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디지털 영상에서 보여주었던 인공적인 풍경과 3D로 제작된 검은 강의 물결을 표현한 디지털 프린트가 모티프처럼 반복되어 보여진다. 프로젝터 전구의 밝은 빛 또한 〈원더랜드〉의 일몰과 〈분홍돌고래와의 하룻밤〉의 불빛과도 유사하게 주된 모티프로 반복된다.
신념과 정체성 그리고 장소에 대한 흐름을 탐험함에 있어 《모든 망명에는 보이지 않는 행운이 있다》 전시는 주제와 전시 공간의 배치에 대해 일관된 접근 방법을 보여준다. 염지혜는 전시의 가장 장난스러운 순간에도 애도의 감성이 있지만,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는 단순한 그리움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분홍돌고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또는 미래를 예측하는 수상가(手相家)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작가는 망명이 제공하는 불확실성과 자유를 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전시는 망명자에게 이 특별한 행운이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보리스 그로이스(Boris Groys)는 “설치 공간에서의 사물과 사건은 문장의 단어나 동사처럼 나열되어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숨겨진 행운”에 대한 작가의 개념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이 전시는 질문에 대해 쉬운 답을 전혀 제공하지 않지만, 대신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각각의 작품은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나타냄에 있어 콘텐츠를 투명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조형물의 신체적 경험 인식(physicality)에 더 의미를 부여하도록 전시 공간 안에 세심하게 배치된다. 설치물의 조각적 성질은 자체적인 관점과 독특한 시선을 만들며, 이러한 이유로 이 전시는 어떠한 매체로도 기록하기가 어렵고, 관람객은 작업을 직접 마주해야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각각의 영상 작품 역시 신체적 경험 인식(physicality)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분홍돌고래의 설화를 교훈적으로 전달하는 데서 그치거나 핀란드의 여행자를 멀리서 인터뷰하는 것으로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은 듯하다. 작가는 실제로 아마존으로 가서 분홍돌고래를 찾았으며, 툰드라에 실제로 인공 자연림을 만들었다.
그녀는 망명이라는 개념을 탐험하기 위해 그 행위 속에 그녀 자신을 내몰고,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행운을—부적이나 밀교처럼 난해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망명의 자유가 넓게 펼쳐져 있고 동시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닐스 보어(Niels Bohr)가 이미 알고 있었듯이, 망명의 자유는 미신이나 신념에 대한 말과 같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문 앞에 말발굽 편자를 걸어두는 이상 그것은 알아서 스스로 작용하는 것과 같다. 즉,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위해 만든 장소와 정체성의 직물과 편물의 한 가닥으로서 작용하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