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여행자가 현실과 마주칠 때(When a romantic traveller encounters reality)」는 염지혜가 유학 시절 한 수업에서 쓴 에세이의 제목이다. 이 글은 낭만주의부터 제국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글로벌리즘에 이르기까지 여행 및 이주와 관련된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층위를 주유하며 여행을 사색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낭만적 여행자가 낭만적 관점을 유지하는 동시에 현실을 직시할 수는 없는가”다.
일상에 대한 단절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에서 출발하는 모든 여행은 일말의 근대적 낭만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동에 전제되는 경제적 특권과 서구 제국주의 역사에서 파생된 오리엔탈리즘은 이국을 단순한 볼거리로 대상화하기 쉽게 만든다. 유학생으로, 레지던시 거주자로, 여행자로 외국에서 체류하며 타자와 이국을 소재로 작업을 만들 때 이 질문은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였을 것이다.
최근까지 염지혜 작업 전반에서 여행/자리바꿈(displacement)은 핵심 키워드였다. 그것이 직접적인 체험의 형태든 사물을 평소와 다르게 보는 관찰자의 시선이든 말이다. 그의 작업은 크게 2014년 이전과 이후로 갈리는데, 전반부의 작업이 실제 물리적 이동을 전제로 한 장소 특정적인 유희였다면 후반부의 경우 특정 장소로의 실질적 이동에서 벗어나 생각을 통한 간접 체험으로 방점이 바뀌게 된다. 초기 작업은 작가가 직접 등장해 이방인으로 현지인과 접촉하는 과정을 담은 것이 많다.
〈미스터리한 여행자의 얼굴을 찾아서〉(2006-11)는 여행과 레지던시를 통해 조우한 현지인들(주로 가나와 이란 사람들)에게 작가의 얼굴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녀를 그리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6년여에 걸친 불규칙적인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150여 장의 초상 드로잉을 얻었지만 정작 결과물은 영상에서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보이는 것은 외국인 여행자의 난데없는 요청을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수행하는 현지인의 얼굴이다.
〈솔미에(이방인/외국인)〉(2009) 역시 레지던시로 머물던 아프리카 가나를 대상으로 한 작업이다. 머리에 빵을 둘러 앞이 보이지 않는 외국인(작가)은 현지인들의 인도로 더듬더듬 길을 찾아나간다. 좌충우돌하는 실제 여행 풍경을 연상케 하는 이 해프닝은 머리에 두른 빵을 아이들이 빼앗아가면서 끝이 난다. 이러한 작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여행자의 죄책감이다.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으로 양분된 시선의 권력, 떠날 수 있는 자와 그럴 수 없는 자로 나뉘는 경제적 불평등,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관음증과 물신화를 피할 수 없는 관찰의 폭력성 같은 것이 이들 작업의 제작 동기일 것이다. 〈미스터리한 여행자의 얼굴을 찾아서〉에서 여행자로부터 현지인으로 흐르는 일방적인 응시의 방향은 기묘한 쌍방향 상호작용으로 전환된다. 주된 관찰자가 여행자가 아닌, 초상을 그리기 위해 이방인(작가)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현지인이 되는 것이다.
〈솔미에〉에서 머리에 두른 빵은 선진국 여행자가 제3세계를 바라보는 방식(또한 제3세계가 여행자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은유다. 여행자는 가난한 현지인을 시혜를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동정하나, 현지인이 여행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비굴한 읍소보다 닳고 닳은 장사속이다. 현지인의 호의에 기대 간신히 길을 찾고 종국에는 빵을 갈취당하는 작가(여기서 현지인 아이들은 빵을 구걸한다기보다 사냥감이 죽기를 기다렸다 달려드는 독수리떼 같다)의 모습은 여행과 관련된 일반적인 위계를 뒤집는다.
그런데 여행과 여행자를 둘러싼 복잡한 역학 관계는 이들 작업을 단순히 유쾌한 전복에 그치게 놔두지 않는다. 실제로 이 두 작업에는 모종의 망설임이 배어 있다. 〈미스터리한 여행자의 얼굴을 찾아서〉는 그리는 자의 얼굴을 고정 카메라와 롱테이크로 기교 없이 기록하고, 각 인물들의 푸티지를 이어붙인 정도로 편집도 최소화했다. 이러한 연출은 본격적인 장비로 촬영을 할 경우 불가피한 대상화를 피하고, 최대한 동등한 눈높이를 유지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만드는 자를 최대한 억제한 연출은 부수적으로 주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 작업에서 현지인과 작가의 상호작용은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매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현지인이 골격과 피부색이 다른 낯선 이의 얼굴을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는지를 문화적으로 비교할 수 없고(〈미스터리한 여행자의 얼굴을 찾아서〉), 유색인 여성 여행자와 제3세계인의 관계가 전형적인 백인 남성의 경우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없다(〈솔미에〉).
만약 작가가 백인 남성이었다면, 앞이 안 보이는 여행자를 놀리는 현지인들의 장난이 덜했을까? 여성과 아이들이 대부분인 영상과 달리 현지인 남성이 구경꾼이었다면 성적 흥밋거리라는 젠더 프레임이 애써 만든 역전된 힘의 평형을 허무하게 무너뜨려 버렸을지? 자리바꿈과 그에 따른 차이를 이야기하는 염지혜의 초기 작업이 가지는 딜레마는 바로 이 같은 주체의 추상성에 있다. 그녀의 작업이 이야기하는 망명과 이주는 내가 속한 곳과 다른 어딘가라는 차이가 중요하지 그 장소가 반드시 어디여야 한다는 필연성이 약하다.
핀란드의 눈밭 한가운데 앉아 따뜻한 남쪽 나라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을 이야기하는 TV 프로듀서(〈원더랜드〉)의 이주 희망지는 꼭 호주가 아니더라도 기후가 다르고 영어가 통하는 어디든 무방할 것이다. 언어의 차이와 그에 따른 거리감을 다루는 작업(〈외국어로 하는 도둑과의 대화〉(2007), 〈라트비안 레슨〉(2012))에서도 중요한 것은 모국어가 아니라는 점이기에, 라트비아어가 아닌 아라비아어라 한들 작업에 크게 지장은 없을 듯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특정 장소로의 물리적 이동이 염지혜 작업에서 중요하다는 기존 의견을 명료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주에 따른 기대와 상실감, 그로 인한 차이와 거리감이 물리적인 이동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여기서의 방점은 옮긴 장소의 장소 특정성이 아니라 떠남과 그에 따른 간극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에 있는 탓이다. 사실상 어디여도 무방한 망명의 보편성은 방식은 달라도 작가에게도 한계로 다가온 듯하다.
염지혜는 가나와 브라질, 핀란드 등 해외 레지던시들을 떠돌며 여행이 삶이 되자 차이가 주는 단절의 의미가 없어졌으며, 어디든 다를 바 없다면 귀국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12년 가을 귀국 후, 적응이 어느 정도 완료된 시점인 2014년 즈음부터 달라진 작업들이 나온 데에는 이주에 대한 달라진 생각과 소화되지 않고 축적된 사념들, 반복되어 온 작업의 패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후의 작업은 내용 면에서나 형식 면에서나 이전의 작업과 질적인 차이가 있다. 5분에서 10분 정도의 퍼포먼스 형식의 단순 기록 영상이 다수였던 과거와는 달리, 후기작들은 서사의 층위가 복잡해지고 영상의 길이도 15분 이상으로 본격화되었으며 형식적으로도 파운드 푸티지, 3D 애니메이션, 직접 촬영분이 몽타주되고 사운드와 내레이션, 자막이 밀고 당기는 입체적인 구성으로 진화했다.
〈분홍 돌고래와의 하룻밤〉(2015)은 물리적 여행과 결부된 과거 작업의 특징들을 결산하며,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사적 성찰을 넘어 보다 보편적인 사회적 기제로 확장되는 후기 작업의 속성을 보여주는 가교와 같은 작업이다. 실로 이 작업은 염지혜 작업의 중간 결산이라고 할 만큼 일종의 종합정리의 인상을 준다.
영상은 작가의 실제 여행과 여기서 촬영한 아마존 및 브라질의 도시 풍경에 기반하고 있지만, 이동에 따른 타자와의 만남을 넘어 브라질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공시적·통시적으로 가로지르며 타국의 속살을 보다 깊고 넓게 건드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교직되는 이야기는 크게 네 가지로, 첫째는 분홍 돌고래 보뚜에 대한 아마존의 고대 설화고, 둘째는 고무무역으로 상징되는 아마존의 식민지 역사며, 셋째는 여행자로서의 실제 체험과 섹슈얼리티의 문제, 넷째는 보뚜 설화가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구조와 브라질 관광 산업이다.
개인 서사를 뛰어넘는 사회정치적 맥락은 실상 직접 체험과 무관하지 않으나(여행의 준비 과정이나 현지의 경험에서 접하게 마련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사적 정서에 집중했던 과거 작업에서는 배제되던 부분이다. (일례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바탕으로 한 2008년 버전의 〈아이솔란드〉에서는 ‘집’이라는 하나의 소재에만 집중해, 여행자가 타자의 집과 자신의 집에 대해 품는 동경과 그리움, 향수의 허구성을 사색한 바 있다.)
개인의 체험을 넘어 문명사적인 시대 성찰로 확장되는 경향은 차기작인 〈우리가 게니우스를 만난 곳〉(2015)과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2016)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가 게니우스를 만난 곳〉은 히말라야의 지각변동 과정과 고층빌딩으로 상징되는 근대 물질문명의 욕망을 상승이라는 개념으로 연결시켰고, 미공개작 〈그들이 온다. 은밀하게 빠르게〉는 2015년 한국을 뒤흔든 메르스 공포와 관련해 바이러스와 인류 문명사의 상관관계를 거시적으로 성찰한다.
하지만 거대 서사를 등장시킨다 하더라도 해당 맥락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직간접 경험을 통과한 자기화된 서사/현실에 방점이 있다는 것이 염지혜 작업의 차별성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일반적인 자료조사 기반 작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