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 〈멀티 컴플렉스-헤어 드라이어〉, 2010, 멀티탭, 헤어드라이어, 가변크기 © 정승

정승에게 한번 끼우면 자르지 않는 이상 뺄 수 없는 케이블 타이는 기계 문명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생산력의 향상을 위해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진보 및 역사주의는 부조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단선적 진화론에 내재된 시간의 불가역성은 폭력성을 내포한다.

그의 작품에서 자동차나 복사기 같은 매끈한 기계는 케이블 타이에 뒤덮여 야만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인간과 함께 진화하는 기계는 인간의 모습을 비추어준다. 기계와 인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욕망하는 기계’가 된다. 두 대의 선풍기가 아무 이유 없이 붙어서 뒤틀리는 작품에서 작가는 ‘진화를 위한 몸부림’을 본다. 기능들로 분화되고 다시 융합되는 과정은 이익을 위한 자본의 진화이다.

그의 초기 작업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의 총아인 자동차는 완전히 뜯겨진다. 그 안의 모든 것을 비우고 틀만 남기고 찢어서 벌려 놓은 모습은 괴기스런 거미의 모습이다. 작가는 이 작업을 승인받기 위해 학교의 수위부터 시장에 이르는 복잡한 절차를 통과해야 했는데, 이러한 경험은 궁극적 목적이 불분명한 채 자기 확대만 반복하는 관료주의의 실체를 발견하게 한다.

수많은 멀티 탭을 이어 붙여 전기기구가 작동하게 만든 작품 〈멀티 컴플렉스〉는 구조가 무의미하게 뻗어 나가는 모습이다. 그것은 이미 기능주의를 초과하고 있으며, 시스템 그 자체의 생존만을 위해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바닥에 잔뜩 쌓인 인쇄물을 끊임없이 흡입하고 내뱉는 로봇 청소기에서 작가는 ‘기계의 진화’를 본다. 소비와 생산은 쓰레기에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무한 반복구조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에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내재해 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는 불분명하다. 인간자체가 구조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머리와 팔이 잘려진 사람이 탄 자전거 200대가 트랙을 도는 작품 〈Circling Complex〉는 집단으로 정해진 궤도를 돌고 있는 현대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가 이 장난감을 발견한 것은 지하철에서 어딘가 바삐 가는 도중이었다. 빙글빙글 도는 장난감은 보이지 않는 구조가 강제하는 현대적 삶으로 다가왔다. 원은 반복된 구조를 상징하는 형태로 그의 작품에 종종 나타난다. 최근 작품에서 인형과 결합한 둥근 형광등은 만다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작품에서 현대사회의 구조, 기계적 구조, 종교적 구조, 예술적 구조는 중첩된다. 구조들은 연동되면서 인간의 몸은 물론,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는 권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2011년에 전시된 〈Spectacleless Complex〉는 일본에 원본이 있는 중국제 짝퉁 인형 2000개를 경기장의 관중처럼 배열했다. 그것들은 주변의 빛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살아있는 듯 흔들거리다가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스펙터클 사회에서 이러한 추락만이 볼만한 사건이 된다. 정승에게 전형적인 현대인은 클론이며, 일정기간 동안 입력된 행동을 반복하다 우연적으로 사라지는 소모품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