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Sungwoo, Untitled, 2019 © Han Sungwoo

가끔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뱉어진 말의 여운이 평생을 가겠다 싶을 때가 있다. 요즘 한성우 작가가 그리는 대상은 큰 건물 옥상이나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에어컨 등의 실외기이다. 그는 회화를 통해 뭔가 모를 불안한 심리적 표현을 반영해 보는 데에 관심을 보이면서 이 실외기를 묘사하길 “옥상 위에서 덩그러니 혼자 부르르 떨고 있는 커다랗고 이상한 물체”라 표현하였다.

이러한 언어적 표현은 아마 한성우 작가의 최근 작업을 보는 내내 나의 뇌리에 함께 떠오를 것이다. 이러한 표현이 주는 여운은 20대에 느껴지는 전형적인 외로움이나 불안함 같은 것인데, 20대 후반으로 치닫고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막연함이 아마도 가장 큰 불안의 요인이 아닐까 싶다.

7월 5일에 있었던 사전인터뷰(참여자: 강석호, 김수영, 오세원)에서 작가가 처한 불안감에 대해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는데, 이러한 의문을 던지는 우리의 모습 또한 어느 하나 명확하지 않은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 한성우 작가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처럼 느껴졌다. 그가 표현하는 작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색감이 아주 세련되었고 묘사력이나 붓놀림이 매우 능숙한데, 2013년 현재 대학원 재학 중인 한성우 작가의 회화 작업에서 기성 작가 못지 않은 테크닉을 구사하는 그의 작업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을 거쳤을지 짐작하게 하였다.

작가가 보여준 자료들, 지금껏 작업해온 페인팅 이미지와 드로잉들은 그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실로 방대한 양이었다. 그리고 이 많은 양의 드로잉들과 사이사이에 꼬적거리며 기록한 짧고 긴 메모들을 넘겨보다 보니 그림에 대한 애정을 포함하여 이를 앞으로 일생의 업으로 가지고 가야 하는 젊은 작가의 고민의 흔적을 보는 듯 하였다.

2010년 동안에 그려진 드로잉북을 살펴보면 고대나 중세시대의 건축 구조를 그린 것들이 대부분인데, 서양 건축사 도감 같은 책에 나오는 사진들을 보고 드로잉을 하였다고 한다. 책 속에 나오는 모든 건축물 이미지를 섭렵하고자 결심한 건가 싶은 정도로 많은 양의 드로잉을 그렸는데 공통적으로 이들은 선과 선의 만남에서 연장되는 구조의 흐름이다.

즉 건물 하나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건물 전체를 구성하는 선의 흐름 중 일부를 잡아서 마치 몸 속 기관의 심장을 중심으로 혈관이 흘러가듯, 어디선가 출발한 선은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전체를 만들어내는 그 출발점의 확장 부분을 꼼꼼히 따라가고 있었다. 옛 건축물 드로잉에서의 선의 흐름은 구조라는 더 큰 단위로 확장되어 나가는데 한성우가 그린 드로잉을 보면 그 흐름이 마치 리듬을 타듯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구조의 느낌이다.

“옥상 위에서 덩그러니 혼자 부르르 떨고 있는” 이 물체는 그의 눈에 이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물체는 지금껏 그려온 아름답고 조화로운 건축물의 요소와는 사뭇 다르다. 일반적으로 건축가는 실외기 디자인은 하지 않는다. 이는 원래 건물이 만들어진 후 추가되는 부속물이지 건축의 일부로 계획된 구조가 아니다. 이는 건물의 선의 흐름을 끊고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곳에 뚝 떨어진 생명체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 있다.

한성우 작가는 대상과 자신과 캔버스 간의 간극을 잘 이해하고 있다. 대상은 하나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감정이 다를 수 있고 이를 표현하는 방법도 또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건물의 조화 속에서 동떨어져 있는 실외기는 주변 환경 속에서 자신을 떼어내려고 하는 그의 심정이 시각화 된 듯한 느낌이다. 동시에 세상과의 소통을 말하고자 고민하고 있는 그의 심정이 반영된 개체로서 실외기를 선택한듯한 그 심정이 드러나 보인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한성우 작가가 학부 때 그렸던 작업을 보면 산동네 같은 지역의 빽빽한 건물들의 집합과 이를 연상시키는 듯 보이는 추상적인 화면이 많다. 특히 추상화는 직관적이면서 즉흥적이며 화면의 표면에 되어있는 재료의 강한 물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서울의 산 중턱까지 밀집해 있는 집들의 빽빽한 전경을 연상시키며 작가가 굳이 특정 구조물을 대상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워낙 쉴 새 없이 그려온 풍경이 손에 익어 추상화 작업까지 연장되는, 일종의 체화된 습관에서 나온 이미지일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본다.

이는 현재 구상표현을 구현하는 화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찾아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즉 요즘 그리고 있는 작업은 그가 위치하고 있는 현재의 활동반경; 학교를 중심으로 찾아낼 수 있는 주변 풍경인데 그는 이 환경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시각적 체험을 충실히 화면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 중 가장 큰 이미지이면서 작가의 초기 건축물 드로잉 연상시킬 수 있는 〈도서관에서 본 풍경〉(oil on canvas, 260.0x387.8cm, 2013)은 평소에 지나다니는 학교의 동선 중에서 작가가 항상 바라보게 되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직선과 면의 분할이 유난히 강해 보이면서 그 흐름이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붕과 바닥, 건물의 표면들은 그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형태가 명확하고 사실적인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이전 추상 작업에서 보았던 표면의 거친 질감, 무게감, 촉각 등의 물질적 감각을 그대로 가지고 온 듯 보인다. 그리고 적막하다. 함께 작업실을 방문한 김수영 작가는 이 작업에서 ‘흔한 풍경 속에서 들릴법한 새소리가 안 들린다’고 얘기한다.

아마 전체적인 풍경의 고즈넉한 서정성보다 건물과 건물이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와 표현력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함께 사전 인터뷰에 참여한 강석호 작가 역시 한성우 작가의 표현력에 지속적인 감탄을 보냈다. 붓과 물감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색채 구성과 표현력의 수려함 또한 타고난 조형감각을 드러내고 있음을 언급하였다.

작가에게 PT&Critic에 참여한다는 것은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신진 작가로서 선배 작가에게 최대한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되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이 작품에 대해 객관화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스스로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윌링앤딜링에서는 PT&Critic에 참여할 수 있는 신진 작가를 기성 작가들에게서 추천을 받아오고 있다. 작가가 작가에게 작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시기로서 ‘신진작가’라는 타이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첫번째 PT&Critic에 참여한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작가와 기획자들이 한 명의 작가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으로 작가를 헷갈리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자리는 아마도 작가 활동에서 그닥 흔치 않은 경험이 될 터이다. 그들이 고민하는 지금이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마음껏 고민하는 이 한때가 매우 부러운 것도 인정하겠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