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r image of 《White Noise》 © Art Space Pool

그림 숲

만남 초기에 작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곤란해 하는 모습에 난처했다.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인가 오해할 뻔했다. 그런데 이런 섣부른 편견을 갖기도 전에 자꾸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말은 밖으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고, 발화로서의 말은 현실에서가 아니라 꿈에서만 하는 것이라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대신 매일 아버지와 산에 가고 입을 다문 채 그의 얘기만을 듣던 기억들이 살아났다.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산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발밑을 보면서 땅의 질감과 깊이를 느끼라고 귀에 못이 박히듯 읊어댔다. 숲 속을 헤치는 시야는 정면이 아니라 발 아래로만 향하였다. 사각사각 푹신한 낙엽 소리, 마른 흙과 운동화가 부딪혀 미끄러지는 신경질적인 소리, 절도 있는 바위 소리 위로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과 또 다른 곡조의 새 소리가 섞이고 흩어지고 다시 이어졌다.

유난히 겁이 많던 나는 매일 가던 그 산길과 숲들에 관한 시청각 이미지를 몸으로 기억하여 불안을 떨쳐내려 했다. 그러나 그곳엔 언제나 우연과 끊없는 변화가 있었기에 항상 겨드랑이에 땀이 고였다. 산을 오를 때의 불안감과 내려왔을 때 느끼는 안도감 사이의 긴장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Installation view of 《White Noise》 © Art Space Pool

숲이라는 그림 속

한진의 그림이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거나 그린 것은 아니지만 이름 모를 숲을 떠올릴 때가 있다. 무성한 수풀을 손으로 헤쳐가며 길을 찾는 사람이 화면에서 떠오른다. 그의 그림에 사람의 이미지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가 자신의 기억 속 시청각적 질감을 그려내면서 화면을 유영한 신체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흔적의 겹과 결들을 따라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어떤 리듬에 이끌려 헤매다가 결국 길을 잃고 만다.

산속을 걷다가 우연히 난 샛길로 발걸음을 돌려 결국 좌표을 상실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좌표를 잃어버려도 상관 없다는 태도다. “숲 속에서는 나는 나의 온전한 전체로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서는 작은 협곡의 숨은 장소에서처럼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는 시각적 이미지를 보기에 앞서 대상에 담긴 소리에 반응하며 발현된 불안과, 그 불안의 소리를 소거하기 위해 이동과 머묾을 반복했던 기억 속 시공간을 시각화하는 방법을 찾고자 그림이라는 숲 속에 머물고자 한다.

Installation view of 《White Noise》 © Art Space Pool

이미지는 행위다

한진이 그린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밝혀내는 일은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그의 이미지들을 따라가다보면 사르트르가 『상상력』에서 이미지 문제를 다룬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분석해낸 후 내린 하나의 결론, “의식 속에는 이미지가 없고,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미지는 의식의 어느 한 유형이다. 이미지는 하나의 행위이지 하나의 사물이 아니다.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라는 생각에 기대게 된다.

그가 그려낸 이미지들은 사물이 아니며, 의식의 결과물도 아니고, 그 자체로 의식이자 행위로서 고유한 운동성을 가진다. 디디 위베르만이 단지 형용사와 명사만으로 이미지들이 무엇인지 말한다고 믿는 데 그쳐서는 안되며 동사를 동원해 그것들이 무엇을 하는지 또 그것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지 말해야 한다고 한 지적은 한진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적절한 설명이 될 것이다.

쌓고, 지우고, 모이고, 흩어지고,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끊어지고, 이어지는 다양한 동사들로 형성된 그 이미지들이 무엇을 하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Installation view of 《White Noise》 © Art Space Pool

전시장이라는 화이트 노이즈

한진 개인전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는 작가가 겪은 특정 소리에 대한 불안과 고통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한편 그것을 소거하고자 한 시청각적 실험이다. ‘화이트 노이즈’ (백색소음)는 정신적이거나 물리적인 어긋남이 몸으로 반응하는 알레르기처럼 특정 소리에 대한 불안 반응으로 나타날 때, 그러한 청각과민을 소거하기 위한 방법을 일컫는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들려오는 소리와 소문으로 저마다의 청각과민증을 앓고 있는 현실에 대한 치료법이기도 하다.

백색소음을 시각화한 회화 작품들을 선보이는 이 전시는 전시장 풍경 자체가 백색소음이 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작가가 하루 하루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오롯이 쏟아낸 에너지와 감정은 불현듯 기억 저편의 어딘가를 건드리며 노크를 한다. 예술의 상상력, 이미지의 상상의 힘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쩐지 쭈뼛한 감정을 들게 하지만, 한진의 그림들은 그 힘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그의 작품은 회화라는 시각매체의 앞과 뒤, 수많은 겹과 결들을 보여주고 들려주면서 회화에 대한 색다른 방법론을 제안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