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경의 대담한 프로젝트 〈검은자리 꾀꼬리〉는 2016년 광주 비엔날레부터 필라델피아, 리버풀, 스톡홀름을 거쳐 가장 최근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마치 유목민처럼
여러 대륙에 걸쳐 소개되었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제 작업에 관하여 사용한 용어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작가는 면밀하고 단호한 언어를 통해 〈검은자리 꾀꼬리〉를 “사회 속 각 개인에게 주어진 공간으로, 개인이 딛고 서서 제 무게를
버틸 공간”으로 제시한다. 유연하게 여러 장소에서 이뤄지는
이 설치 작업에서, 작가는 능숙하게 안무를 활용하여 영상과 회화, 조각을
만들어내 우리가 이미 지배 체계 안에 기입되어 있다는 가정에 형태를 부여한다.
강서경은 한국의 전통 회화, 음악, 무용에
관한 연구와 더불어 서양 미술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작업을 진행한다. 그는 서양 미술사에서
드러나는 데카르트적 그리드의 매혹을 포착하고, 한국 전통예술의 논리에 뿌리를 둔 영상과 설치 작업을
만든다. 작가는 애그니스 마틴, 솔 르윗 등 그리드와 연관되는
작가들을 인지하고 있다. 〈검은자리 꾀꼬리〉 에 등장하는 그리드는 서양 미술에 가까이 있지만, 작업의 원천이라기보다 멀리 떨어진 미학적 참조점으로 기능한다. 작업에
등장하는 그리드는 정간보(井間譜)를 이론적 기원으로 삼으며, 작가는 이것이 “살아 있고, 숨
쉬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15세기 한국의 음악과 안무
기보법인 정간보는 입안에서 이뤄지는 혀의 움직임을 그리드로 나눈 것을 바탕으로 창제된 한글과 함께 만들어졌다. 강서경의
작업을 이끄는 것은 바로 하나의 기하학적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몸(flesh)의 움직임, 즉 말하는 혀, 움켜쥐는 손, 안무
된 형상들이다.
정간보의 그리드는 사각형인 정(井)으로
이뤄졌다. 이 단어는 ‘우물’을 뜻하는 명사로 해석될 수 있지만, 정간보에서는 악보의 기호로 기능한다. 정의 그리드 안에는 음의 길이와 높이, 가사, 안무를 기입할 수 있다. 강서경은 작업을 위한 연구 중 접한 역사적
문헌들을 통해 이러한 측정 형식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는 점에 이끌리게 되었다. 정간보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세종대왕 실록』(1447)이다. 세종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난 진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정간보에 앞서 중국의 형식을
차용한 조선의 옛 기보법은 음의 길이를 설명하지 않았다. 한국의 궁중 음악은 세종 치하에서 새로운 한국식
악기와 음색이 만들어짐에 따라 중국식 체계가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연주되는 음을 갖게 되었고, 그리하여
새로운 형태의 기보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강서경은 정간보가 지닌 유연한 성격에 영감을 받아 측정의 단위를
넓혀 더 개념적인 틀로 확장했다. 이러한 틀은 작가의 몸을 주요한 단위로 삼는다.
〈검은자리 꾀꼬리〉의 구성요소가 되는 오브제는 61 x 81 cm 크기로, 색을 칠한 사각형 금속 조각이다. (〈검은자리〉 연작에서와 같은) 닫힌 육면체 형태와 (〈정 井〉 연작에서와 같은) 프레임이 있고, 이것이 어떻게 다양하게 여러 차원으로 점진적으로
확장될지는 작가의 몸에 의해 대략 결정된다. 작업의 크기와 중량 또한 작가의 완력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가 며칠에 걸쳐 직접 조각을 움직이고 배치하는 설치 방식 때문에, 작업
각각의 무게는 작가의 몸을 기준으로 삼게 된다. 사각형의 단위(unit),
즉 강서경의 주된 ‘정(井)’이자 고유한 ‘음표’는
색을 입힌 수십 개의 금속 오브제로 형태가 다양하다. 이 작업은 최초의 작업으로부터 두 배, 절반, 4분의 1, 3분의 1 크기가 된다. 색을 칠한 화선지와 캔버스(〈모라〉 연작), 금속 회화 (〈자리〉
연작) 의 형태를 취하며, 그것의 크기 단위에 비례하여 발견한
오브제 또는 만들어낸 오브제를 보여 준다.
금속 원기둥에는 색을 칠하거나, 구멍을 뚫고 실로 감싼다. 모양과 크기는 작가가 발견한 오브제를 다시 만들어 낸 것을 기본으로 한다(〈따뜻한
무게〉). ICA 전시에 있던 잘린 통나무는 원기둥 형태로 이뤄진 두 번째 연작(〈둥근 무게〉)의 크기를 결정한다.
둥근 형태는 〈 검은자리〉와 〈정 井〉에 구멍을 뚫고, 작가가 채워 내거나 비워 두는 빈
공간을 제공한다. 강서경은 다양한 ‘무게들’을 위해 쌓을 수 있는 형태의 받침대도 만들어 냈다. 금속 다리에
호두나무나 단풍나무로 만든 바퀴를 달고(〈여섯 개의 다리〉) 금속으로
실감개 모양을 만든 것이다. (〈발〉 과 〈두 발〉). 각각의
오브제와 받침대는 개별 작업이자 더 큰 조각 작업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다양하게 조합, 재조합할 수
있는 단위이다. 〈검은자리 꾀꼬리〉는 함께 설치됨으로써 전시 공간의 특정성에 기반하여 제약 없이 다양한
형태로 되풀이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 작업들 가운데 다수는 전략적으로 계산된 위치에 구멍을 여럿 뚫어 황동으로 만든 나사와 볼트를 활용해
다양한 높이와 각도로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조합을 통해 바닥을 감싸 안거나 위를 향해 균형을
잡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 또한 바닥으로부터 밖으로 확장된 그리드를 따라 수직 혹은 수평으로 쌓아 전시의
풍경을 프레이밍하고, 〈정 井〉 을 벽에 높이 매달아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비스듬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강서경은 이렇게 다양한 부분들을 통해 사적이고 역사적이며 철학적인 참조점으로 층위를 이룬 삼차원 공간을 구축한다.
〈검은자리 꾀꼬리〉 프로젝트는 전체적으로 강서경이 초기 작업에서 보였던 육체성과 그리드에 관한 관심에서 기인한다. 〈검은자리 꾀꼬리〉는 광주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였고, 60 대의
배우인 김선미와 명계남이 등장하는 영상 작업 〈검은아래 색달〉 (2015)이 함께 상영되었다. 나이 들어 가는 배우들이 전하는 우아함은 작가가 자신의 할머니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것은 미술사가 데이비드 조슬릿이 주장한 것처럼 “일상의 세계 그리고
격렬하고 명백한 육체의 존재감에 대한 비유”로 격자를 채우는 작가들의 대열에 강서경을 굳건히 세운다. [1]
연작을 시작하게 한 최초의 작업인 〈그랜드마더타워〉는 작가 자신의 할머니가 보여 준 우아함과 유한성에 대한 일종의 헌사로
기능한다. 할머니는 육신이 노쇠하면서 점차 보행기에 몸을 기댔고, 일어서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보행기의 굽은 금속 구조와 바퀴는 수년에 걸쳐 강서경의 작업의 오브제로 바뀌어
나갔다. 이 요소들은 〈둥근 계단들〉과 〈발〉에서 반복하여 등장했고,
가장 최근에는 〈그랜드마더타워 – 토우〉 (2018)를
통해 다시 살펴보았다. 2018년에 만들어진 이 연작은 첫 번째 작업에 영감을 안겨 주었던 불안정한
균형을 더욱 심도 있게 구현한다. 〈배〉, 〈둥근 계단들〉이라는
제목의 조각 작업들은 〈 그랜드마더타워 – 토우〉의 일부로, ICA 전시에서
벽에 매단 작업들 앞에 배치한 청색의 미니어처 가드레일에 바탕을 둔다. 작가는 이것을 통해 유머러스한
순간을 안겨 주는 동시에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 혹은 노인들을 돕기 위해 화장실에 설치하는 ‘안전 손잡이’ 로 읽히기를 의도했다. 작가가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사적인 기억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팔레트 위에 색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늙어
가는 할머니의 몸에 대한 그의 애정에 대해서 더 명확히 알려 준다.
초기 〈그랜드마더타워〉와 관련 작업을 제작할 때, 금속 표면에 효과적으로 색을 입힐 수
없었던 강서경은 실 염색 공장에서 쓰이지 않고 버려진 실을 구매한 재료와 함께 활용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졌던, 작품을 실로 감는 느린 과정은 이제 개념적 선택이 되었다. 작업에 실을 입히기 위해 수십 시간 애쓰며, 〈정 井〉의 프레임, 〈발〉과 〈다리〉라는 단위(unit)를 실로 감싸며 구멍이 숭숭
난 〈따뜻한 무게〉들에 천천히 실을 꿴다. 손을 사용해서 만든 부드럽고 덩어리진 표면의 촉감은 산업적으로
생산된 금속과 맞붙어 있기에 더 강렬해지며, 금속 보행기에 의지해 세상을 통과해 걸어가는 할머니가 입은
옷을 손으로 쓸어 만져 보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검은자리 꾀꼬리〉는 작품 고유의 색상 조합을 특징으로 한다. 파스텔 색상에
끼어드는 잔잔하고 탁한 색상 말이다. 작가가 사용하는 섬유 또한 유사한 색조를 띤다. 한국 전통 회화를 배운 작가 자신의 경험과 전통 회화에 쓰이는 먹의 사용을 바탕으로, 강서경은 짙은 먹색 염료를 파란색, 분홍색, 녹색, 노란색, 무엇보다
신체와 같은 색조를 만들어 내는 복숭아색과 갈색에 혼합한다. 살이 지닌 무게와 질감, 마찰과 연약함은 강서경 작업의 핵심적 주제다. 살은 인간의 몸을
지키는 방패이자 약점으로, 중력과 시간의 효과를 드러내며 나이가 들어 가고 늘어지는 신체 기관이다. 강서경은 오브제를 고정시키기 위해 가죽을 잘라 쓴다. 황동 볼트로
꽉 조이거나 열을 지어 섬세하게 균형을 잡으며 서로를 누르거나 맞물려 있는 조각 작업들의 채색된 표면을 보호하며,
차가운 금속 사이에 건조한 동물의 피부가 들어가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작가가 몸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키는 것은 전시의 시작점이다. 관람객은 리넨, 벨벳, 검은색 합성 섬유로 이뤄진 패널이 상영실의 암막 역할을 하는
공간을 통과해 전시장에 들어선다. 작가는 이처럼 질감과 색을 조합하여 관람객이 직접 손을 뻗어 작업을
만지도록 이끌며, 이것은 전시 초입에 한글과 영어로 “검은자리
꾀꼬리”라는 글자를 손으로 수놓은 길고 거대한 벨벳 커튼을 달아 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시장 안에 있는 오브제는 관람객이 만질 수 없지만, 강서경의 촉각적인
것에 대한 의도가 전시 전반에 걸쳐 있다.
일상의 소재는 강서경이 화문석이라는 자리를 가지고 온다는 점에서 더욱 긴밀하게 조한다. 이처럼
견고한 오브제들이 〈정 井〉을 가로질러 널려 있다. 〈검은자리〉 안에 말려 있고, 쌓여 있고, 접혀 들어가 있다. 〈자리
검은 자리〉 의 구멍 뚫린 금속 안에 감춰져 있고, 전시장 바닥을 가로질러 펼쳐져 있다. 골풀을 직조하여 만든 화문석 자리는 궁궐의 바닥과 수 세기에 걸쳐 그것을 만들어 온 장인들의 집을 차지한 바닥재다. 최근 몇십 년 사이 외국에서 만든 저렴한 자리가 시장을 휩쓸었고, 전통적인
고르기, 건조, 염색, 직조
기술은 천천히 쇠퇴했다. 강서경은 화문석 위에서 펼쳐진 17세기의
궁중 무용 춘앵무에 영감을 받아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강화도의 직조 장인들과 협업했고, 특별한 염색으로
색을 입힌 여러 가지 자리를 만들었다. 유난히 하얀 강화 지역의 갈대는 대용품으로 구할 수 있는 골풀보다
염료를 더 잘 흡수한다.
화문석은 예로부터 여성이 만들었는데, 이것은 한국의 현대 섬유 산업에서 젠더화된 노동의
형태를 반영하는 한편 노동 운동을 이끌어 온 섬유 산업 여성 노동자들의 긴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화문석은
직조 과정에서 날실과 씨실로 인해 이미 그리드가 새겨졌지만, 작가는 수수께끼 같은 기하학적 패턴을 실에
직접 넣어 자리에 구조를 더한다. 작가는 화문석 장인의 노동에 자신의 손을 통한 노동을 덧붙인다. 이것은 정부가 ‘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이고 번호를 매겨 보존하려는 전통적 농촌 공예와 한국이 20세기 들어 겪은 급속한 도시화 사이에서
벌어졌던 세대적, 지리적 붕괴에 대한 수사적 제스처이다. 화문석은
북한이 보이는 섬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가 맺고 있는 불안정한 균형을 심화시킨다.
〈검은자리 꾀꼬리〉의 설치에서 매체와 물질 사이의 구분이 무너졌다는 것, 즉
이 작업을 하나의 전체(설치 작업) 혹은 보다 작은 부분들(쌓을 수 있고 유연한 큰 조각 작업들) 혹은 가장 작은 부분들(정과 같은)로 독해할 수 있다는 점은 영상을 통해 구현된다. 영상은 오브제가 지닌 잠재적인 역동성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서로
관계가 없는 듯한 원칙을 끊김 없이, 심지어 부드럽게 전체로 연결하는 것은 바로 움직이는 몸이다. 이것은 프로젝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추진하는 안무적 토대이다. 앞서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작업이 움직이고 있거나 손에 잡힌 상태로 작품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검은
옷을 입은 몸은 작품을 움직이며 재빠르게 화면을 가로지르고 주인을 알 수 없는 손은 〈정〉을 잡는다. 이런
이미지들은 강서경이 작업에 퍼포먼스를 포함하려는 의도를 품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런 충동이 명백히
드러난다. 강서경은 이미 안무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17세기
궁중 무용을 접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방향으로 작업을 전환할 우의(寓意)적
플랫폼을 제공했다.
강서경이 ‘봄날 꾀꼬리의 춤’이라고
번역하는—흔히 서구에서 ‘나이팅게일의 춤(Nightingale Dance)’이라고 불리는—춘앵무는 엄격한 양식을
따르는 궁중에서 상연되었다. 강서경은 춘앵무를 추는 가운데 드물게 발생하는 정치적 위반의 순간에 이끌렸다. 무용을 펼치는 도중에 여성 무용수가 화문석 위로 올라가 왕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미소 짓고, 두 손을 허리춤 뒤에 놓으며 목 뒤를 드러내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
제스처는 용인되는 위반의 한 형태인 동시에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강서경을 매혹시켰으며 동시대 정치 주체성에 대한 비유로 작동한다. 강서경의 프로젝트는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몸에서 보이는 파괴적 잠재성 안에서, 즉 안무적인 것 안에서 이런 비유를 찾았다.
영상 속 퍼포머들은 정해진 지시문을 따른다. 〈검은자리 꾀꼬리〉에는 남성, 여성, 그리고 한 아이가 등장하고 그들의 중심으로서 작업의 전면에
나오는 것은 나이 든 남성이다. 검은 옷을 입은 몸들은 강서경이 만든 갖가지 조각 작업을 조작하고 조종하며 3채널로 상영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인다. 작가는
이 작업이 상영되는 방이 관람객이 ICA 전시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첫 번째 공간이기를 의도했다. 이 공간은 김지연의 미니멀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만들어진, 명상과도
같은 속도로 시간 감각을 조작하는 블랙박스이다. 8 분 길이의 영상 설치 작업은 ‘박’ 소리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박은 여섯 매의 나무판으로 이뤄져 국악단의 지휘자가 연주를 시작할 때 한 번, 끝낼 때
세 번 치는 전통 악기이다. 강서경은 박을 영화감독의 클래퍼보드처럼 활용하며, 이 오브제는 화면에 등장하는 유일한 악기이기도 하다. 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검은자리 꾀꼬리〉 프로젝트의 정신은 영화와 지휘 행위가 의도적으로 합쳐지면서 잠깐 동안의 시각적 순간을 획득한다.
작업 속 사운드를 조율하는 강서경의 행위는 〈정〉 을 핵심적 장치로 강조한다. 정간보는
음의 높이와 길이를 하나로 통합해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여러 악기를 기보할 수 있는 악보법이었다. 〈검은자리 꾀꼬리〉 에서, 피아노로 연주한 음은 현의 단조 음이
성기게 겹쳐진 위로 이어진다. 퍼포머들의 행위는 소리와 움직임의 교차를 통해 증폭된다. 예컨대 어린 소녀가 원기둥 형태의 〈무게〉 를 〈검은자리〉에 난 딱 맞는 구멍에 배치할 때, 이것은 세 번의 박 소리와 함께 크레딧 롤이 시작되기에 앞서 영상이 끝났음을 알린다.
이는 영상의 시작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동일한 퍼포머가 〈무게〉 를
제거하면, 그 오브제는 곧 다시 나타나 제힘으로 여러 오브제를 가로질러 구른다. 강서경은 세 개의 스크린을 통해 오브제와 상호 작용하는 몸에 집중한다. 이
몸들은 볼트로 고정된 교차 지점에 〈검은자리〉와 〈정 井〉 을 쌓는다. 상상은 몸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육체를 이탈한 손이 뒤쪽에서 오브제를 껴안는가 하면, 발이 금속의 뾰족한 모서리를 감기도 한다. 퍼포머들은 몽유병에 걸린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스스로의 움직임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의 기미를 풍기고, 심지어 헛된 노력이라는 일말의 암시를 남긴다. 그들은 계속해서 무표정한 상태로 있으며, 끝없이 수행하는 행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영상은 반복 재생되지만, 서사적 시간이 존재하여
시작과 중간, 끝이 있으며, 강서경은 오프닝과 클로징 크레딧으로
이를 알린다.
〈검은자리 꾀꼬리〉 전시의 그리드적 구조는 전시 기간 전반에 걸쳐 일정을 정해두고 벌어지는 라이브 퍼포먼스, 즉 〈움직임(Activation)〉이 진행되는 중에는 그 견고함이
누그러진다. 강서경은 의도적으로 ‘춤’, ‘무용수’, ‘안무’라는
용어 사용을 피한다. “대본을 따르는(scripted)”이라는
단어가 더 정확해 보이며, 전시 안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에는 〈움직임〉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스코어를 따르면서 부드럽고 느린 이 움직임은 강서경의 공간 안에서의 몸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퍼포머들은 제 팔과 다리를 활용해 작가가 설치 안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만들어둔 시선을 틀 짓고, 가리키고, 흐리게 한다. 강서경은
현대 무용 안무가 조형준, 장홍석과 함께 작업하며 춘앵무를 재해석했다.
작가가 ICA 전시를 위해 만든, 2 인무(pas de deux)에 잔존하는 제스처인 〈움직임〉을 통해, 역사적인
무용의 일면을 힐끗 살펴볼 수 있다.
〈검은자리 꾀꼬리〉 전시에서 보인 시간성에 대한 관심은 작품이 움직일 때 최대한으로 드러난다. 지근거리에
불쑥 서 있는 조각 〈모라〉에서 보이는 선형적 시간과 퍼포머들의 실시간이 대비될 때 더욱 그러하다. 이
쌓여 있는 회화들, 각각의 단위 또한 〈모라〉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이 회화 작품은 여러 언어에서 발견되는, 음절 한 마디보다 짧은 언어적 단위의 개념을 나타낸다. 강서경은 이러한 일군의 작업이 시간의 단위를 나타낸다고 본다. 작가는
한국 회화와 서양 회화를 포괄하는 예술 교육을 받았기에, 회화를 일상의 명상으로 지속한다.
이것은 작가가 캔버스의 빈 표면, 그리고 역사적 무게와 교차하는
지점들과 연결되는 순간이라 하겠다. 〈모라〉 는 순간으로서, 작가의
예술 실천을 특정한 매체에 묶어 두는 시간의 척도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원래 전시장 벽면에 설치했으나, ICA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표면을 알아볼 수 없게 하는 높이까지 쌓아 의도적으로 시야에서 가려지도록 했다. 〈모라〉는 퍼포머들 뒤에 어렴풋이 서 있으며, 강서경이 “수직적 시간”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 작업들은 작가의 예술 실천을, 시간의 공간화를 담은 기록이다.
강서경이 작품으로 시도한 첫 번째 “움직임”은
안무가 조형준과 장홍석을 통해 이뤄졌다. 두 안무가는 강서경과 몇 달간 함께 작업하며 움직임을 만들었고
이상적인 형태를 제시했으며, 이후 움직임은 더 평등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어서 ICA에서 진행된 퍼포먼스는 강서경의 스코어와 안내 영상을
활용해 적절한 안무를 익힌 전문 무용수들을 통해 완성되었다. 리버풀 비엔날레(2018)에서는 참여를 원하는 이들에게 지원을 받아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2018년 가을 스톡홀름의 텐스타 콘스탈과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에서는 무용 경험이 없는 주민들이 각자의 ‘ 자리’, 즉 요가 매트나 작은 깔개, 타월 등을 가지고 와서 움직임을 따라 할 수 있도록 하여 민주적인 성격을 더했다.
강서경은 통합성이라는 민주적 제스처를 통해 〈검은자리 꾀꼬리〉 를 확장하고 있지만, 작품의 움직임을 ‘자리’ 위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점, 작가가 제공한 스코어를 자유롭게 해석하되 각자의 ‘자리’를 공간적 제약으로 둘 것을 요청한다. 결국, 공간이란 권력의 틀이다. 강서경은
푸코를 익히 알고 있지만, 〈검은자리 꾀꼬리〉 안에서 작가가 전개하는 권력 이론은 춘앵무에서 유래한다. 정치적 자유와 위반, 경계와 그것을 파괴하는 즐거움 사이의 협상으로부터
말이다.
17세기의 악보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는 미소를 띠고 목을 드러내며 주권자에게 복종과 동시에
도전을 뜻하는 신호를 보낸다. 21세기의 예술 경제에서 벌어지는 전시장과 비엔날레에서,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달러를 유통시키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강서경은
이 같은 제스처를 되찾아 보여 준다. 그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다른 이들과 함께, 공동으로, 목적을 갖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한다.
1.David Joselit, 「Mary Heilmann’s Embodied Grids」, 『Talking Painting: Dialogues with Twelve Contemporary Abstract
Painters』(New York: Routledge, 2002),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