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며, 생각하는 것이 곧 만드는 것입니다. 회화는 생각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곧 회화를 뜻합니다. —강서경[1]
이브-알랭 부아는 비평적 연구서 『모델로서의 회화』(1993) 에서 회화, 특히 비구상 회화를 이론적 패러다임에 끼워
맞추거나 순수 형식주의적 읽기에 기대지 않고 해석할 수 있는 절충적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앞의 두
방법 대신, 형식과 맥락이 또 다른 탐구 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합쳐진 인식론적 틀로 회화를 여길 것을
제안했다. 부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회화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컬러로 꿈을 꿀 수 있듯, ‘회화로’ 꿈을 꿀 수 있을까?”[2] 이 같은 수사적인 질문에 대해 강서경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강서경은 〈검은자리 꾀꼬리〉 (2011–2018) 라는 제 목 아래
성좌를 이루는 야심 찬 작업을 통해, 그가 회화에 대한 “태도”라고 명명한 것을 만들어 낸다.(3) 이 태도는 통상 서로 다른 영역으로
여겨지는 회화, 설치, 조각, 공예, 비디오 아트 등을 아우르며 전개 중인 강서경의 작업의 핵심에
자리한다. 매체의 특정성을 통해서만 강서경의 프로젝트에 접근한다면 작업에 스며있는 보다 은유적인 제스처와
작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 구조를 놓칠 수 있다.
회화에 대한 강서경의 “태도”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업을 대면하는 현상학적 경험의 감각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ICA에서 열린 강서경의
전시에 들어서는 관람객은 특별히 디자인된 검은 커튼을 통과하게 된다. 전시 제목인 〈검은자리 꾀꼬리〉를
한 글과 영어로 수놓은 이 커튼은 텍스트와 접촉, 색을 가장 먼저 제시한다. 전시장 안에서는 삼면화처럼 영상을 구성한 〈검은자리 꾀꼬리〉 (2018) 를
마주하게 된다. 이 작업에 등장하는 조각 오브제들(이 가운데
일부에는 바퀴가 달려 방향을 틀 수 있다)은 미니멀한 스코어에 따라 움직인다. 배우들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브제 각자의 원칙에 따라 마술처럼 움직이는 듯 보인다. 세 화면 중 한 화면에서 어린 소녀가 조각 하나를 다른 조각에 난 구멍 안에 놓는 모습이 나올 때, 다른 화면에서는 평범한 흰 원통이 화면을 가로질러 굴러간다. 영상이
상영되는 공간을 빠져나와 또 다른 검은색 커튼을 통과하면, 관람객은 영상에 등장한 회화와 조각으로 구성된
설치 작업이 있고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공간으로 들어간다. 전시 공간의 오브제들은 정적인 상태로 있지만, 관람객은 앞서 본 영상을 통해 오브제의 잠재적인 움직임을 직감한다.
작가의 “태도”에서 단단한 바탕이
되는 형식과 개념의 상호 의존성에 관해 생각해보기 위한 한 방법으로, 설치를 구성하는 여러 개별 작업
가운데 〈자리 55 x 40 #18-01〉 (2017–2018) 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전시장 벽에 걸린 이 오브제는 전통 회화를 관람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전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관람객은 캔버스 대신 금속으로 만든 밝은 회색의 사각형을 마주하게 된다. 오브제의 전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선의 형태를 한 구멍이 뚫려 있고, 전면
윗부분에는 수직으로, 아랫부분에는 수평으로 선 모양의 구멍이 배치되었다. 가까이서 살펴보면 금속으로 된 틀 안에는 검은색과 갈색으로 염색된, 손으로
짠 화문석이 있는데, 다양한 색상의 실이 안쪽에 붙어 그것을 매달아 둔다.
화문석에 달린 술은 당장이라도 비집고 나올 것 같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밑 부분에 뚫린 세 개의 구멍으로 실이 나와서 아래쪽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뒤로
물러서면 오브제의 옆면이 주의를 끄는데, 금속 나사로 프레임에 구멍을 뚫고 나사와 프레임 사이에 황갈색, 회색, 노란색 가죽을 끼워 놓았다.
〈자리 55 x 40 #18-01〉의 제작 이면에 있는 논리나 형식에 관한 전략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강서경의 회화 작업에서 주요한 몇 가지 요소에 대한 독해를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회화란 여러 가지를 뜻한다. 그것은 창문이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담는 용기인 동시에 화면인 삼차원의 오브제다. 그리고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자 수공품이고, 표준화된 것이자 불균형한 것이며, 가로막는 벽이자 지지 구조이다.
‘회화의 죽음’이라는
반복적인 사건, 즉 서구 모더니즘이라는 기획에 계속해서 출몰하는 파괴적이고 해체적인 충동을 되돌아보며, 부아는 그가 정전(正典)의
사례로 든 마르셀 뒤샹, 알렉산드르 롯첸코, 피트 몬드리안
이후의 회화 작가들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압박감에 동정을 표했다. 이러한 작가들의 예술적 기획이 남긴
반향은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데, 21 세기에 들어 추상이 짊어진 것, 추상과 관계된 것에는 복잡성이 새로이 더해졌다. 최근 추상 회화가
다시 부상한 것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어왔다. 이미지의 산업화와 디지털화에 대한 대응, 전 지구적 금융 자본의 붕괴에 대한 징후, 순수한 상품 혹은 시장
친화적인 파스티슈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아가 추상 표현주의나 단색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의가 세대적으로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들 각각의 정치적 맥락인 냉전 시대의 국가주의와 한국 전쟁의 여파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기 동안 남한과 북한 사이의 균열과 식민지 트라우마,
독재 정권의 부상은 단지 당대적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겪은 경험이었다. 따라서
회화적 추상에 관여하는 모든 동시대 미술가들이 처한 고충은 그리하여, 만약 그것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 자신을 현재에 위치시키는 동시에 타가수분(他家受粉)된
역사와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맥락의 시급성이 역사화 되면서, 예술적 행위들은 소급되며 장르로 코드화된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동질성, 무의식적 동맹, 비밀스레 이뤄지는 협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듯 직접적인 영향 관계의 도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형식적, 개념적 전략으로 내면화된다. 이러한 어려움에 답하고자, 조앤 기와 같은 학자는 그가 마주침의 순간이라고 정의한 점(points) 과, “주변에 맞서는 중심, 모더니티에 맞서는 전통, 내용에 맞서는 형식, 그리고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많이 환기되는
글로벌에 맞서는 지역이라는 인위적인 구분” 을 회피하려는 방법인 “ 생각의
선, 내재한 계보, 행동의 궤적을 나타내는” 선 (lines) 을 탐구하는 방법론적 접근을 제안했다.[4]
강서경이 이러한 미술의 역사에 가까이 있다는 것에는 분명 다면적인 의의가 있다. 작가는
서구 모더니즘에서 이뤄진 환원(reduction)이라는 기획을 인정하는 한편, 애그니스 마틴의 미니멀한 격자와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의 수행적인 직물 등 다른 작가들의 프로젝트와 모종의
친연성을 찾아냈다. 한편 그가 추상과 맺는 관계는 분명 작가로서의 형성기에 한국 전통 회화를 훈련받은
것에 근간한다.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업을 지속하며 수묵화 기법을 익혔다.[5] 고전적 기법을 배우며,
“ 나 자신의 마음과 육체를 통해 다르게 보고 다르게 움직이는 방법” 을 익혔다. 이런 접근은 강서경이 자신의 동시대적 미술 실천에 대한 태도를 정의하는 데 핵심적이다. 이것은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의 추상주의 세대, 즉 (영어로는 ‘ 모노크롬 회화’로 번역되는) 단색화와
강서경을 구분하는데 중요한 열쇠이다.
단색화 화가들은 반복과 비구상 회화에 몰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다루는 재료와 신체를 관계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강서경은 교과서에서 김환기, 윤형근과 같은 20세기 화가들에 관해 배웠던 것을 기억하지만 (윤형근의 검은 회화는 강서경의 작업과 관련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근과거의 참조점에 전적으로 기대기보다 오랜 수묵화의 역사에 대하여 더 깊이 숙고하기 시작했고, 현재에 이뤄지는 회화적 추상이라는 프로젝트에 그러한 탐구가 무엇을 의미할지 질문했다. 조앤 기는 수묵화가 “한국 동시대 미술의 억압된 타자”라고 언급한 바 있지만,[6] 강서경은 공간, 색, 시간, 언어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방법을 전통 수묵화의 맥락에서 전개하였다. 이우환은 수묵화와 관련된다는
이유를 특정하며 검은색을 사용하기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강서경이 사용하는 색의 조합은 분명 먹의
검은색에 기반한다. 강서경에게 검은색 먹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글로 쓰인 언어와 색상 스펙트럼 전체의
기반을 이루는 색조에 대한 참조점이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게
먹은 단지 색이 아닙니다. 가능성을 담은 재료죠. 물과 혼합할
수 있는 가능성. 제게 먹이란 땅이나 플랫폼에 가까운 것입니다.”[7]
강서경에게 그림의 화면이 그 위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일종의 풍경의 대리물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한 개인의 관점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개념은 ‘진경’ 산수화에 대한 작가의 이해에서 일부 기인한다. 조선(1392–1910) 후기에 성행하였던 진경산수화를 그린 화가들은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의 풍경이 지닌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데 집중했다. 강서경은 묘사적인 진경산수
작품들에서 예술가와 환경 사이에서 이뤄지는 직접적 경험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이것은 작가가 보다 넓은
사회 전체에 대한 자신의 몸, 시선, 행동의 위치를 숙고하도록
이끌었다. 강서경은 긴 시간 수묵화에 천착함으로써 종이를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결국 캔버스를 수평적 장(場)으로 내면화했다. 레오 스타인버그는 회화가 자연을 재현하기 위한 수직적 지향으로부터 문화적인 것을 수용하기 위한 수평적 평면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하며 평판 회화의 화면(flatbed picture plane)에 대한 이론을 전개했는데, 이와 달리 강서경에게 수평성은 점유되어야 할 물리적 공간을 나타낸다. 회화를
공간적 문제로 접근한 덕분에 강서경은 작업 초기부터 영상, 애니메이션 등 시간을 기반으로 한 매체와
설치 등 틀에 박히지 않은 형식에 전통적 방법을 융합할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둥근 것 안에서 인식되는
평면적인 것에 대한 작가의 방법을 규정했다.
이는 그의 3채널 영상 작품과 ICA에서의
전시 〈검은자리 꾀꼬리〉를 구성한 조각의 배치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 전시에서 스크린의 구성과 전시장
안에 놓인 오브제는 강서경의 그리드 체계를 따르는 정확한 수치에 맞춰 결정되었다. 미술사가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1979년에 쓴 에세이 「그리드」(Grids)에서
그리드를 언어에 반대되는 위치에 놓고, 그 자신을 향해 다시 접히고 자신만의 틀을 참조하며 세계의 외부
구조를 언급하고자 시도하는 모델로 제안했다. 큐레이터 헬렌 몰즈워스는 페미니즘 추상 회화에 관한 글에서
크라우스의 논의를 더욱 심도 있게 돌아보았다. “모든 구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역사적 형식의 자취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리드는 예술의 자율성이 지닌 무한한 공간을 나타내는 한편 상징주의적 창구를 나타내기도 한다.” 크라우스에게 “상징주의적 창구”
는 “억압되어야 하는 트라우마”에 비유되나, 몰즈워스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 둘은 서로 반대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
그리드는 항 상 두 양태를 모두 담아낸다.”[8] 강서경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처럼, 그리드는 외부를 가리키는 형식적 체계가 될 수 있다.
강서경의 그리드는 종이 한 면의 경계로부터 시작했고, 음의 길이와 높이를 정확히
소통할 수 있는 조선 시대의 악보 체계인 정간보(井間譜)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정간보의 구조 안에서 각각의 음은 각자의 사각형, 즉 여러 그리드 중 하나를 갖게 되는데, 이것은 개별의 주체성에, 그리고 정치적 공간에 강서경이 몰두하는 것과 비유적인 관계를 맺는다. 강서경에게
종이를 공간화하는 것은 미술관의 건축으로 확장하며, 그 건축 자체가 작가의 회화적 그리드의 일부가 된다. 이런 체계 안에 개별적인 ‘ 정’,
즉 강서경이 〈검은자리〉 의 크기와 연관되어 만든 나무 뼈대로 이뤄진 조각 작업들이 존재한다. 경첩을
접으면 한데 포개어지도록 회전하고, 몸과 오브제를 위한 틀로 기능한다.
ICA 에서 선보인 설치에서는 한데 모여 조각적인 대형을 이뤘고, 다른 오브제 사이에 놓이거나
손으로 짠 자리를 위한 걸개로 매달렸다.
벽으로부터 솟아올라 창문이 되는 방식으로 설치되기도 했는데, 마치 전시 공간이 그리드로 구획된 도시라고 제안하는 것 같았다. 도시
이론가인 케빈 린치는 저서인 『도시의 이미지』(1960)에서 보행자들이 환경을 통과하면서 갖는 시각적
기억을 “심상성”(imageability)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관람객이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언캐니한 순간들로 채워진 강서경의 설치 작업들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도시 보행자들이 특정한 시각적 경계 표지와 교차점, 경계를 기억한다는 케빈 린치의 관찰과 유사하게,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물리적 경험을 통해 공간에 대한 “인지적 지도 그리기”(cognitive
mapping)을 행함으로써 작가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각각의 오브제 배열은 작가
자신의 몸과 전시 공간의 특정성과 관련한 회화와 자리의 논리로부터 시작하지만, 작가는 관람객이 일종의
참여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강서경의 오브제 사이를 움직이면서, 관람객은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고,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을 내리면서 자신의 몸을 조율한다. 전시장은 관람객이 스코어를 수행하는 퍼포머가 되는, 또 다른 종류의 ‘정’이 된다.
강서경은 정의 한자 표기인 ‘井’이
그리드와 유사하기에 이끌렸다고 밝힌 바 있다. 언어학과 맺고 있는 연관성을 강조하며, 강서경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게 그리드란 텍스트(혹은 노트)와 같습니다. 두
가지가 항상 한 데 있는 것이죠.”[9] 이러한 이중성은 색상이 다채로운 강서경의 회화 작업에도 내재하는데, 작가는 이 작업을 〈모라〉로 칭한다. 정간보에 관한 작가의 관심과
궤를 같이하는 ‘모라’는 음성학(소리를 다루는 언어학의 한 갈래)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음절의 무게와 타이밍을 측정하기 위해 쓰이는 개별 단위를 말한다. 강서경이
만든 추상적 구성 각각의 표면은 고유함을 지니고 있으나, 그것이 펼쳐진 화면은 오직 두 가지 크기로만
만들어진다(단지 두께만 예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실제
모라와 같이, 마치 단어나 문장처럼 회화를 각기 다른 조합으로 구성할 수 있다.[10]
이처럼 작품을 유연하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은 〈모라〉를 회화로 벽에 걸 뿐 아니라 조각 작업 위에
자리 잡은 오브제가 되거나 여럿이 쌓여 탑을 형성할 수 있게 해 준다. 회화 구조의 매개 변수는 철저하게
지키지만, 작업 각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매우 개인적이고 직관적이다.
강서경은 회화 작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캔버스를 평평하게 눕히고 그 위에 한지를 덮어 글로 쓰인 언어와 맺은 관계에 또 다른 연결을
더한다.[11] 그런 뒤 색을 쌓고, 겹치고, 붓질하고, 구아슈를 펴 발라 재료가 완전히 스며들게 할 뿐 아니라
가장자리에도 염료가 흘러내리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회화가 여러 방향에서 고려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라〉에서 볼 수 있는 뚜렷한 색상은 각기 다른 염료에
먹을 섞어 만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가 만든 모든 조각적 형태에 사용하는 정확한 색상 배열에
대한 참조점을 제공한다.
이런 기호론적 체계는 강서경이 학업 과정에서 배운 한자처럼 표의 문자에서 단어와 이미지가 얽혀 있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 같은 관심이 순수 서예와 별다른 관련이 없으며 대신 시와 서예 형식을 통합한 한국의 문인화가
진행된 역사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밝힌 바 있다. 강서경은 고전 텍스트,
고전 무용 등 전통 예술의 체계를 밝혀내고 공부하는 데 열중하며, 이것들이 현재에 유익한
가치가 있음을 직감한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강서경은 스스로의 역사와 맥락에 뿌리를 둔 한국 동시대
미술 실천을 위한 틀을 구축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앞선 작업에서는 텍스트와 시를 실제로 포함시켜
문학적 관심을 명확히 했다. 그러한 참조점들은 여전히 작가의 사고에서 핵심적 부분이지만, 점차 작가의 결정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으로서 배경으로 후퇴하고 있다.
사실, 강서경의 작업을 ‘읽을’ 수 있는 요소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작가는 각기 다른 시간성을 가리키는
텍스트상의 참조점뿐만 아니라 발견한 재료로부터 오브제의 용법을 개발해 냈다. 그는 이따금 원래의 기능에서
분리되어 지금은 형태를 위해 쓰이는 실제 오브제를 일종의 닻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원래의 기능에서 추상화시켜
조작함으로써 형태를 다시 만들어 낼 때도 있다. 미술사가 마이어 샤피로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입각하여
작가들이 산업화의 부상과 더불어 신체, 생산 수단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제스처와 손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은 강서경의 작품 전반을 통틀어 산업적인 것과 손으로 직접 만든 것, 정확함과 직관을 병치함으로써 명확하게 제시되고, 이러한 만들기의
여러 방식은 서로 의존하는 듯 보이게 된다. 대량 생산된 실용적 오브제를 발견하여 실을 두른 조각 작업들을
위한 골조로 사용한 〈따뜻한 무게〉 조각 연작에서 이것의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일정한 간격의 구멍으로
가득한 금속 오브제를 제작하고 난 뒤, 섬유 공장에서 남은 여러 색의 실로 오브제를 뒤덮는다. 각각의 오브제에 손수 실을 꿰는데 석 달이 걸리며, 〈모라〉를 제작하는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리 패턴을 정하지 않는다.
공장에서 만든 것과 손으로 만든 것, 계획과 우연 사이의 긴장은 강서경의 작업
전반에 걸쳐 페인트가 쓰이는 방식에서도 명백하다. 〈모라〉에서는 작가의 물리적 존재와 표현이 필수적인
반면, 금속으로 만든 조각 작업들은 작가의 정밀한 지시 사항과 고유한 색상표에 따라 전문가들이 색을
입힌다. 즉흥적 제스처는 기계적 생산의 수평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회화에 대한 이와 같은 이중적 접근은 〈둥근 무게〉에 구멍을 뚫지 않고 표면을 부드럽게 도장한 뒤 손으로 갈아낸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이것은 회화에 대한 그의 확장적 접근에서 각기 다른 시간성이 작동하는 것을 부각시키며, 일련의 작업에서 가장 필수적인 단위라 할 수 있는 〈검은자리〉를 통해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다.
〈검은자리〉 안에서 텍스트, 몸, 그리드는 연합을
이룬다. 지금까지 〈검은자리〉는 두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검은자리〉 는 〈모라〉 회화 연작의 캔버스 크기나, 특정한 종류의 하얀 골풀로
짠 화문석의 크기를 본뜬 금속 오브제다. 화문석에 대한 강서경의 관심은 조선 시대인 1828년에 효명세자가 만든 춘앵무(“봄날의 꾀꼬리의 춤”이라는 뜻이다)라는 전통 무용을 연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왕실을 위해 공연이 이뤄졌고, 오로지 한 명의 무용수가 특별히 제작된
화문석의 제약된 공간 위에서 정확한 동작을 펼친다는 점에서 독특한 무용이었다. 강서경은 무용과 글로
쓰인 단어가 맺은 관계에 특별히 관심을 두었다. 안무의 각 움직임은 이를 묘사한 그림과 시구의 일부를
통해 기록되었다. 예를 들어, 화전태(花前態)는 꽃 위에 앉은 새를 묘사한다.
이것은 움직임으로 번역되고, 그리하여 춘앵무의 진수에 이른다. 무용수가 허리 뒤쪽으로 박수를 치고 미소를 짓는 순간이 있는데, 무용수는
국왕 앞에서 입을 여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기에 이것은 일종의 위반으로 보일 수 있는 행위다. 그러나
이것은 사적인 공간 안에 제약된 개인에 의해 행해진 것이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로 인해 가능하다는
점에서 허용된 위반이라 하겠다. 이 순간이 무용의 절정부이지만, 강서경의
작업 전반에 틈입한 수많은 섬세한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이런 점에서 강서경이 사용하는 화문석은 비유적인 동시에 실질적인 플랫폼이다. 금속으로 만든 ‘자리’는 조각 오브제로서 〈모라〉 연작을 둘러싸는 얇은 막의 역할을
하고 (회화적인 캔버스에 대하여 산업적으로 만들어진 대물로 기입되는 것이다), 작가의 그리드 체계에서 주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는 또한
손으로 짠 화문석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강서경은 남한의 북부에 있는 강화도에서 일하는 여성 장인들과
함께 화문석을 제작했다. 화문석은 한국의 가정에서 한때 흔한 사물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국외에서 저렴하게 생산되어 수입된다. 나아가 한국의
가정이 점차 서구화되면서 그 수요 또한 줄었다. 여전히 화문석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수는 감소하고 있으며, 강서경은 장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이러한 재료의 전통이 살아 있도록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여긴다. 강서경은 ‘자리’ 하나하나를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에는 한 달가량 시간이 걸린다. 강서경의
요청에 따라 골풀이 염색되고 직조가 되면, 서울에 있는 작업실로 가져와 실을 활용해 작가 고유의 그래픽
패턴을 더한다. 요컨대 직물은 그리드에 대한 유기적인 접근이며, 텍스트성과
언어학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12]
〈모라〉와 마찬가지로 화문석은 유연한 방식으로 선보인다. 관람객은 종종 화문석이 벽에 장식처럼 걸려 있거나 선반에 걸쳐 말려 있거나 바닥에 깔린 모습을 보게 된다. 혹은 〈모라〉 연작을 분리하는 역할로 작업 사이에 놓이거나 조각 오브제 사이에 숨겨져 강서경의 오브제들이 전반적으로
내부성(interiority)을 띠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화문석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강서경 작업의 다른 모든 요소와 마찬가지로 화문석은 인간 주체와 직접 연관되어
있고, 작가가 개인을 이해하는 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몸에 의한, 몸을 위한 추상을 전개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주체성과 행위 주체성은 추상 속에서 천천히 확장되는 것이다. 주체성과 행위 주체성은 우리 주변에 산재하는 불균형한 대비와 불안에서 발생하고, 그 이후 추상의 형태들로 구체화(혹은 시각화되거나 가시적이게)된다.”[13]
춘앵무와 마찬가지로, 강서경의 화문석 혹은 〈검은자리〉 는 작가가 〈움직임〉(Activation)이라 명명한 것을 위한 무대로도 기능한다. 춘앵무에서
시를 안무로 해석한 것처럼, 강서경은 일련의 새로운 동작을 위한 드로잉을 만들었다. 작가가 (퍼포먼스나 무용이 아니라)
움직임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이 몸들이 직접적인 효과를 일으키는, 그가 구축한 환경을
강조한다. 검은 옷을 입은 두 안무가(조형준, 장홍석)는 춘앵무에서 단서를 얻어 〈검은자리〉에 서 있는 동안 아홉
개의 미니멀한 동작을 수행한다. 이렇게 이뤄지는 움직임은 신체성이 〈둥근 절벽 – 긴 목 #18-01〉
등 설치에 놓인 다른 조각 작업들로 뻗어 나간다는 것을 부각한다. 조각 작업의 크기는 작가 자신의 몸에
대하여 결정되며, 개별 요소들의 무게는 작가가 손으로 들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정해진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작가가 직접 들 수 있는 무게와 크기는 분명 변할 것이며,
이것은 작가의 육체성에 대한 물리적 자취로 남는 동시에 무게, 균형, 자전적 기록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 그랜드마더 타워〉와 같은 옛 작업과 연결된다. 강서경은 〈검은자리〉가 “사회 속 각 개인에게 주어진 공간으로, 개인이 딛고 서서 제 무게를 버틸 공간” 이라고 설명하며 작업 속
그리드가 단지 형식적 장치일 뿐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정치적 공간에 대한 은유로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14]
강서경은 확고한 예술적 관점이 사회의 개별 구성단위를 결합하는 힘을 지닐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페루 리마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이자 영상 작업인 프란시스 알리스의 〈믿음이 산을 움직일 때〉를 언급했다. 알리스의 영상 작업은 오백 명의 지원자들이 하루 동안 모래 언덕 하나를 삽으로 떠서 몇 인치가량 옮기는 행위를
기록해 보여 준다. 알리스는 페루의 후지모리 정권이 세력을 잃어가던 시기 벌어진 억압을 목격한 뒤 작업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작업은 기념비적인 집단 행위를 위해 모인 개인들의 집합을 상징했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일을 마친 이후의 결과는 알아보기 힘든 미묘한 변화였다.
강서경은 이 작업에 크게 공감했고, 이를 거대한 회화의 한 예로 인식했다. 또한 집단성과 관련해 개인의 행위를 이해하는 방식과 연결해서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강서경의 개별 단위(회화와 조각 작업, 설치 사이를 돌아다니는 관람객들)가 보다 큰 성좌 구성, 혹은 회화를 형성하기 위해 하나로 모인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이는 “가장 최근 남한의 미술 작품”은
“‘나’와 ‘우리’가 나란히 있는 새로운 공간” 을 길러 낸다는 미술사학자 이솔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듯 보인다.[15] 사실, 강서경의 조각 작업을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은 〈좁은 초원 – 꾀꼬리 #18-01〉(2011–2018)처럼
각자의 이름과 정체성이 존재한다. 이 작업은 〈따뜻한 무게 300
#15-02〉, 〈둥근 무게 340 #16-01〉, 〈짧은 여섯 개의 발 #17-03〉, 〈둥근 무게 250 #18-01〉이라는 또 다른 네 개의 개별 조각
작업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자리는 정확히 계산된 위치에 구멍이 뚫리고,
그리하여 각자의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더 큰 전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서로 맞아떨어질 수 있게 된다.
일단 연결되고 난 뒤에는 새로운 조각 작업이 되거나 〈검은자리 꾀꼬리〉와 같은 더 큰 프로젝트 안에서 행위자가 된다. 아니면, 산을 움직이기 위해 하나로 조립될 수도 있다.
강서경이 “회화는 생각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곧 회화를 뜻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작가의 말을
단어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브-알랭 부아는 회화 그 자체
안에서 사고하는 것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이론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강서경의 기획에서
구조적 범위를 파악하는 것은 그의 작업에서 시를 포착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것은 회화로 그려진 사고가 (혹은 꿈이) 어떻게 페이지에서 실제로 읽힐 수 있는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의 획기적인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1969) 역시 이런 점을 잘 이해했다.
이 전시는 개념주의에서 포스트미니멀리즘에
이르는 사조에서 가져온 규칙에 바탕을 둔 작업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전시는 작업의 과정과 무심함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러한 “ 태도”
를 기록 문서나 비평을 통해 적절히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제만에게 “태도”란 한 시대의 에너지와 성향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서경의 작업은 “ 태도”가
또한 신체를 물리적으로 어떻게 두는 것인지 관한 것임을, 즉 내면적 심리나 감정적 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음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16) 생각하는 것과 회화에 관한 강서경의 대구(對句) 를 다시 떠올려 보면, 강서경의
작업은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하랄트 제만의 표현을 빌자면—이것은 곧 ‘ 형식’이 ‘태도’가 되기 위한 것이다.
1.2018년 4월 29일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에서 발췌.
2.부아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잇는다. “ 회화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말하자면 회화의 특정성을 무시하지
않고, 또 회화의 불규칙함을 적절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성긴 그물을 가진 응용 담론에 회화를 부속시키지
않고도 회화에서 이론이 설 자리를 지정할 수 있을까?” Yve-Alain Bois, 『 Painting as Model』( Cambridge: MIT Press,
1990), 245.
3.2018년 4월 29일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에서 발췌.
4.조앤 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모델의 목적은 예술의 후퇴 충동, 즉 이미 탐구된 질문으로
돌아감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더 체계적으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시작점이나 사건, 인물, 작업에 논의를 끼워 맞추지 않으면서도 주제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데도 유용하다. 잠재적 선례를 동시에 식별함으로써 주제와 연관된 영향 모델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어떤
지점에서건 연구를 시작할 수 있으며, 주변에 맞서는 중심, 모더니티에
맞서는 전통, 내용에 맞서는 형식, 그리고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많이 환기되는 글로벌에 맞서는 지역이라는 인위적인 구분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이분법적 서사 모델을 피할 수 있다.”
Joan Kee,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3), 29–30 .
5.2018년 9월 27일 주고 받은 작가와의 서신에서 발췌.
6.Kee, 『Contemporary
Korean Art』, 149.
7.2018년 9월 27일 주고 받은 작가와의 서신에서 발췌.
8.몰즈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럼에도, 모든 구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역사적 형식의 자취를 담고 있다. 따라서, 그리드는 예술의
자율성이 지닌 무한한 공간을 나타내는 한편 상징주의적 창구를 나타내기도 한다. 로절린드 크라우스는 ‘20세기의 모든 그리드 뒤에는 거짓말이 존재한다. 마치 억압되어야
하는 트라우마처럼. 그것은 상징주의적 창문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런 트라우마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의 일부가 바로 그리드라는 변증법적 움직임이다. 이것은 구심적인 동시에 원심적이다. 구심적인 그리드는 내부를 향해
소용돌이치며 틀이 곧 내용이 되도록 만들며 예술이 순전히 자율적인 의사-영적인 영역, 시각적 사색을 위한 공간(애그니스 마틴)을 구축한다. 원심적인 모델은 외부를 향해 소용돌이치며, 세계와 그 구조를 다룬다 (앤디 워홀). 그러나 그리드는 항상 두 양태를 모두 담아낸다. 애그니스 마틴의
회화는 지평선과 바다에 관한 것이기도 하며 워홀의 작업은 화면의 끊임없는 평평함을 다룬다.” Helen
Molesworth, 「 Painting with Ambivalence」, 『WACK! Art and the Feminist Revolution』( Cambridge: MIT Press, 2007), 437–438.
9.2018년 4월 29일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에서 발췌.
10.ICA 전시에서 선보인 회화 작업들의 크기는 55 x 40 cm였다.
11.한지는 이르게는 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전통적인 필사본이나 회화, 책을
만드는 데 쓰이곤 한다.
12.직물 기반 작업들의 정치적 함의에 관한 논의는 다음 자료를 참고하라. Julia Bryan-Wilson, 『Fray: Art and Textile
Politics』(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
13.「불투명할 권리: 강서경, 더그 애쉬포드, 미쉘 웡, 아말리아
피카」, 마리아 린드·최빛나·마르가리다 멘데스· 미셸 웡·아자르
마흐무디안 엮음, 『제8기후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2016 광주비엔날레』(광주: 광주 비엔날레, 2016),
168.
14.이는 미술관 안에서 몸이 어떻게 관리되는가 하는 문제로도 이어지는데, 강서경은 설치 작업에 청록색 기둥을 세워 이 점을 익살맞게 지적한다. 연약한
예술 작품에 관람객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설치되는 장애물을 연상케 한다.
15.Lee Sohl, 『Being Political Popular: South Korean Art at the Intersection of
Popular Culture and Democracy, 1980–2010』(서울: 현실문화, 2013), 5. 한글 번역본은 『 마지막 혁명은 없다: 1980년 이후 그 정치적 상상력의 예술』 (서울: 현실문화, 2012) 을 참고하라.
16.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태도’ (attitude)라는 단어는 미술에서 인물의 배치나 자세를 가리키는 17세기 말의 용법에서 유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