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니다킴,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 2021, 2개의 데이터스케이프, 비디오, 사운드, 소책자, 4개의 내비게이터, 설치, 혼합매체, 가변크기 © 후니다킴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의 주된 작품 구성요소는 ‘데이터스케이프’라는 기계장치다. 이를 부착하고 주행하는 경험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매뉴얼의 존재였다. 예술이 점차 첨단 테크놀로지와 융합되면서 작품 자체가 기계장치와 유사해지는 근래의 경향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독립적인 장치로서 매뉴얼이 필요한 경우는 이번에 처음 경험했다.

데이터스케이프에 딸린 매뉴얼은 「데이터스케이프 운행 안내서」라는 체크리스트와 『관점의 매뉴얼』, 그리고 『바라보고 읽어내는 장치』라는 소책자 2권을 합쳐 기본적으로 3종이나 된다. 이 매뉴얼을 꼼꼼히 읽는다면 3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매뉴얼이 필요한 장치’라는 개념은 매력적이다. 이 장치(작품)가 매뉴얼을 읽어야 할 만큼 작동과정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뜻하며, 특정한 경험을 설계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작가의 의지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스케이프의 매뉴얼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기계의 사용설명서라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니라 작가의 스테이트먼트와 퍼포먼스의 이식 절차 사이에 있는 기묘한 문서였다. 잠깐 기계에 있어 매뉴얼의 의미를 짚어보자.

1994년 어느 날, 고철로 팔려 국내에 들어온 러시아제 항공모함 민스크호는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해 내부 곳곳이 해체되고 부서진 상태였다. 한국 해군은 통관검사를 하던 중 기관실 내부에서 소각이 덜 된 매뉴얼 뭉치를 발견하였다. 일반적인 항공모함의 경우 매뉴얼의 종이 무게만 23톤에 이른다고 하니 그 일부가 채 처리되지 못하고 발견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매뉴얼 일부가 발견되자 그것은 국가기밀의 일부가 되어 함정의 역설계를 위한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항공모함 같은 거대 기계에 있어 매뉴얼은 기계의 근본 성격을 뒤바꿀 수 있는 요소다. 매뉴얼이 없는 기계는 고철에 불과하지만 매뉴얼이 있는 기계는 그 본래의 목적과 사명을 부여 받아 기능하는 객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매뉴얼은 기계의 영혼이자 시민권 같은 것이다.

후니다 킴은 자신의 장치에 매뉴얼을 부여함으로써 이 기계의 사용법에 대한 부단한 주의를 주고자 했다. 『바라보고 읽어내는 장치』의 첫 장은 곤충의 눈에 대한 사유로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바라본다는 감각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눈이라는 장치의 획득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모든 생명이 인간과 같은 눈을 가진 것이 아니며, 곤충의 경우 겹눈을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인지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각을 담당하는 눈-기계가 얼마나 한정된 발명품인지 깨닫게 만든다.

이어 그것의 부단한 변형과 이식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데이터스케이프의 윗면은 곤충의 겹눈처럼 파라볼릭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는데, 이 장치가 실은 새로운 눈-기계의 보철물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품고 있다는 것이 이 장에서 설명된다. 이와 비교해보면 『관점의 매뉴얼』은 의미심장한 단문의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개는 우리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는 절차를 유도하기 위해 쓰여 있다. 그 문장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감각에 임플란트 되어 있는 디지털 장치들”
“내가 움직이는가? 주변이 움직이는가?”
“항상 익숙한 방식으로 읽어내는 대상과의 링크”

관객은 『관점의 매뉴얼』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는 절차를 밟고, 동시에 『바라보고 읽어내는 장치』를 통해 새로운 감각을 이식받기 위한 사유를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소믈리에가 새로운 와인을 음미하기 전 입안을 헹구는 행위와 같다. 조금 까다롭게 느껴지지만 이 절차를 통해서야 데이터스케이프가 선사하는 새로운 감각을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후니다 킴은 데이터스케이프를 사용자가 일시적으로 작동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외과수술 차원의 보철물 이식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데이터스케이프를 관객의 몸에 장착할 때 쓰는 카라비너의 경쾌한 ‘찰칵!’ 소리는 보철물 이식을 알리는 신호음이다. 사실 기술적 지각행위를 일종의 외과수술의 은유로 보는 관점은 발터 벤야민의 글에서 일찍이 발견된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935)에서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마술사와 외과의사의 관계는 화가와 카메라맨의 관계와 같다. 화가는 작업할 때 주어진 대상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거리를 지키지만, 그에 반해서 카메라맨은 대상의 조직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눈-기계를 가진 화가와 카메라-기계를 가진 카메라맨의 차이는 대상과 세계를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해부해 볼 수 있는가에 달렸다. 이는 데이터스케이프가 우리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동시에 세계를 낱낱이 해부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해부라는 단어는 입체의 또 다른 표현이다. 실제로 데이터스케이프 내부의 뷰파인더는 라이다 센서로 인지한 주변공간을 마치 게임 속 버드 아이 뷰(Bird’s-eye view)처럼 보여주는데, 인간의 시지각 능력을 훨씬 벗어나 등 뒤의 기둥이나 복도까지 상세하게 표현한다.

우리는 데이터스케이프를 통해 처음으로 등 뒤를 보는 인간종이 된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세계를 단지 다르게 인식하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눈-기계의 지속적인 발명을 통해 강화된 인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매뉴얼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데이터스케이프’는 일종의 트리거⁵다. 그리고 그 트리거가 촉발하는 세계는 우리가 믿어왔던 단일하고 확정적인 세계보다는, 수많은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다중적 세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새로운 기계를 부착한 자는 세계에 대한 외과수술을 하기 전에 그 스스로가 외과수술을 받은 자다. 이는 지각적 능력의 다변화가 자신이 한시적으로 수용하는 세계의 감각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가 세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기능해, 궁극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데이터스케이프는 우리의 눈-기계의 보철물이면서 세계를 해부하는 보철물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다소 겸손하게 이 장치가 격발의 트리거가 되길 바라고 있다.

기계의 미학을 탐구하는 일은 기계 자체의 능력이나 위력 앞에 인간이 내뱉는 경탄 따위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기계와 인간의 공모가 세계를 어떻게 인지하고 구성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역동적인 탐구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스케이프를 흥미롭게 여기고 기꺼이 수차례 방문해 체험하는 관객들은 점점 더 동기화되는 자신의 신체와 기계 사이의 관계를 스스로 관찰하고자 하는 개별의 탐구자들이다.

작품이 장치가 된다는 것은 기계적 부속물이 많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관객과의 접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이 격발되는 플랫폼이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점에서 작품이 아니라 장치로 나가자는 모토를 가진 후니다 킴의 생각은 매혹적이다.

데이터스케이프는 무엇을 보여주기에 앞서 낯설게 보는 법 자체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광학 펄스(optical pulse)로 목표물을 비춘 후 반사된 반송 신호를 받아 주변을 인식하는 라이다 센서가 한가득한 데이터스케이프를 장착한 관객은 미술관 곳곳을 주행하게 된다. 라이다 센서는 관객이 움직이는 한, 정지한 사물 역시 자신과의 관계에서 움직이는 존재로 판단한다. 라이다 센서의 감각에서 정지하고 죽어 있는 것은 없으며 언제나 관계 맺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멀미를 느끼기도 하며, 라이다 센서와 연동된 소리장치를 이용해 공간을 이동하며 사운드 생성에 몰두하기도 한다. 이 모든 체험은 신체와 장치 사이의 유격을 좁히고 새로운 신체로 육화해 나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후니다 킴의 작품 〈디코딩 되는 랜드스케이프〉는 능동적인 자기개조의 시뮬레이션이 이루어지는 학습 장소이자 놀이터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후니다 킴의 작품들이 컴퓨터, 라이다 센서, 스피커, 소프트웨어 등의 여러 테크놀로지들로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유독 단정하고 통제된 느낌을 주는 이유를 다음의 변에서 알게 되었다.

“컴퓨터의 언어를 읽으려고 하는 것은 기계의 관점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그것은 기계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알아가고, 인간인 나를 더 성찰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마치 사제처럼 우리에게 성찰의 경험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만들어 낸 장치의 매뉴얼이 단순한 설명서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절차를 기록한 문서이며 그 순서를 반드시 존중해야 하는 이유다.

데이터스케이프는 관객에게 지금보다 더 다각적인 세계의 입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반성적 질문부터 라이다 센서의 부단한 관계 맺기의 노력을 인간의 새로운 본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도전적 질문까지 다양한 층위의 경험을 선사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기계의 아름다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