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재, 〈사다리 004〉, 2015, 잉크젯 프린트, 185 x 148 cm © 조경재

조경재의 사진은 눈을 현혹하는 감각적인 색채와 파편적 공간 구성 때문에 표면과 중첩을 강조하는 포스트 인터넷 유의 작업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개념적으로나 물리적 구현의 측면에서나 대단히 고전적이고 원론적이다. 그의 작업은 실제 공간에 여러 가지 오브제들을 설치 후 어떠한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촬영한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포토샵을 이용해 이미지를 합성한 것이 아니므로 일단 제작 과정에서 디지털 리믹스를 강조하는 이미지들과 반대 지점에 서 있고, 더욱이 개념적으로는 이들과 더욱 멀어진다. 컴퓨터 합성 이미지들의 다수는 이미지를 원 맥락에서 분리한 후(기의 제거) 기표적 속성들로 중첩시켜 물리적 시공간으로부터의 이탈을 강조한다. 반면 조경재의 사진은 철저히 실제 시공간의 소산이다. 앞서 말했듯 그의 사진 속 이미지는 물성을 지닌 실물 오브제들을 교묘히 배치해 평면적으로 보이게끔 눈속임한 결과로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재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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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착시는 조경재 사진의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매력이다. 〈검은 소〉(2016)라는 제목의 한 사진에서 관객은 구성주의적으로 분할된 배경 앞에 놓인 검정색 화면을 마주하게 된다. 슬쩍 봤을 때 작업은 데 스틸(De Stijl) 풍의 이미지 앞에 검정 톤의 사진을 세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면 이런 인상은 착각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미지 속 사진의 프레임처럼 보이는 것은 여러 가지 재질의 막대를 사각형처럼 보이게 비스듬히 기대 놓은 것뿐이라 공간에서는 렌즈로부터 제각기 다른 거리를 지닌다.

반대로 사진 속에서 다른 층위에 속해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연속적이기도 하다. 프레임 오른쪽에 보이는 흰색 덩어리는 프레임 안쪽의 검정 비닐과 같은 사물로 검정 비닐을 흰색으로 칠해 연속성이 깨어진 것뿐이다. 채색으로 착시를 유도하는 것은 가상(가짜)의 프레임을 관통하는 막대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왼쪽 하단에서 오른쪽 상단으로 기울어져 있는 나무 막대는 각각 색을 달리 칠함으로써 파편으로 흩어진다. 이러한 효과는 삼차원의 공간을 납작하게 평면화하고 물성을 약화시키는 사진의 위력이다.

굳이 따지자면 조경재의 사진은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유의 연출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물로 볼 경우 크기와 재질의 차이로 인해 숨겨지지 않는 실체가 사진이라는 장치를 거치면서 차이가 다듬어져 그럴듯해지는 원리가 동일하다. 작업의 대부분이 이 눈속임 기제를 만드는 설치 과정에 할애된다 하더라도, 깜박 속게 만드는 착시의 원천은 카메라의 원근법적 공간 구성 방식에 기대고 있으므로 그런 측면에서 그의 작업은 사진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지만 무엇이 이 작업을 이끌고 지탱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작가가 작업을 만드는 동력이 관객을 속이는 진짜/가짜 게임에 있는 것인가? 작가 노트를 보면 그렇지 않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작가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여러 가지 재료를 모아놓은 후 각 사물과 공간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 재료들이 어떻게 놓여 있는가? 이것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나누어지는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화, 실제와 가상, 추상 속의 구상 등 다양한 내용들은 작업 중에 보면서 결정되어진다. 다시 설명하면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 속에서 작업의 내용들이 하나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조경재가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이 사물의 물성과 3차원적 공간감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착시 이미지를 만들려면 이미지의 구성 요소인 각각의 사물들의 모양과 색깔, 질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들을 만지며 공간 속에서 이리 놓았다 저리 놓았다 하는 과정은 사진적이라기보다 조형적이다. 데 스틸 건축이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선과 면의 추상적 구성으로 공간에 접근하는 것처럼(그렇기에 데 스틸 건축은 회화와 다르지 않다), 조경재도 형태와 질감과 색채를 지닌 요소들의 조합으로 2차원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 다른 재료들의 우연한 만남은 얼핏 초현실주의 사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의 실재성과 상충하는 기묘한 언캐니함(비현실성)이 핵심인 초현실주의 사진과 달리, 조경재 작업에서 실재의 전사라는 사진의 속성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했듯 구성의 원리다. 공간적으로 층위가 다른 선들을 카메라 뷰에서 한 점에 모이도록 배치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색면들이 사진 평면을 분할하며 리듬을 만들어내는 구성의 묘가 작업의 본질이다.

이런 원리는 초기 대표작인 〈교실 04 - 008〉(2012)에서부터 〈바람 01〉(2015), 〈Q〉(2016)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조경재의 사진은 몽타주(montage)라기보다 아상블라주(assemblage)에 가깝다. 이질성의 재조합이긴 하지만 2차원에 기반해 있고 연속성의 해체와 파편화를 강조하는 몽타주보다 버려진 일상용품을 이용해 3차원적으로 재구성하는 아상블라주 개념이 그의 작업의 속성에 더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20세기 초반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의 대표작 〈메르츠바우(Merzbau)〉(1923-1937)를 연상시킨다. 보드지, 판지, 석고, 유리, 털실 등 온갖 폐품을 원래 기능을 제거하고 조형적 요소로 활용해 공간을 구성하는 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최종 결과물이 설치가 아니라 사진이라는 점에서 이 둘은 갈라진다.


2.

최근 조경재의 작업은 설치적 사진에서 사진적 설치로 이행하고 있다. 공간 구성의 일부를 접사 촬영한 2013-14년도의 연작은 사진 평면의 구성에 훨씬 방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후 작업은 갈수록 설치가 강화된다. 〈bw 01-008〉(2015)나 〈사다리 004〉(2015)는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상당한 규모의 설치다. 이들 작업 역시 면과 면, 선과 선의 교차가 자아내는 구성의 쾌에 기반하고 있지만, 사진적 눈속임의 측면은 전작에 비해 약하다.

특히 〈사다리 004〉는 착시 효과보다 설치의 구성적 측면이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 마찬가지로 설치의 기록처럼 보이는 〈카펫 002〉(2015) 역시 접히고 구불거리는 카펫의 물성이 사진적 측면보다 훨씬 중요하다. 영은미술관 프로젝트 〈5.5〉(2016)는 사진보다 재료와 설치로 무게중심이 넘어가는 변화의 단초가 되는 작업이다. 여기서 작가는 스티로폼, 나무판, 파이프 등의 재료의 물성을 살려 공간의 구조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여기서 각 재료들의 조합은 공간적 조형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지 사진과는 무관하다. 작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열린 개인전 《부서진 모서리》(2017)는 기존의 사진 작업과 영은미술관에서의 공간 실험을 결합한 구조다. 여기서 작가는 사루비아다방의 공간을 면(벽돌벽, 나무판, 사진프린트)과 선(쇠파이프, 실)으로 분할했다. 이때 사진과 공간은 상호작용을 하며 교차된다.

사진 속 검은 선들과 공간 속 쇠파이프의 검정 선이 시각적으로 연결되고, 바닥에 부착된 사진 프린트 속 실이 실제 공간을 가로지르는 실과 이어지는 것이다. 만약 관객이 전시 장면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촬영한다면, 그 결과는 조경재의 설치적 사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열린 《변형된 공간(Un espace transformé)》(2018) 역시 다르지 않다. 여기서 사진을 거는 지지대의 선은 사진 속의 선들과 교차하며 2차원과 3차원을 잇는다.

사진평면과 그것이 놓인 공간이 하나로 통합되는 이러한 성취는 감상의 질을 바뀌 놓는다. 설치적 사진에서의 감상이 정면적이고 시각적인 것이었다면 사진적 설치에서의 그것은 다면적이고 신체적이다. 공간 속을 움직이는 관객의 시점이 변화함에 따라 지각되는 광경이 끊임없이 바뀌는 공간적이고 현상학적인 체험인 것이다. 단일 시점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의 형태를 파악하는 원근법적인 카메라의 지각은 공간 속에 들어가서 움직이는 시점으로 공간을 인지하는 다면적인 동적 시점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변화가 조경재의 작업이 사진적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고 본다. 관점에 따라, 사루비아다방의 공간 구성은 역설적으로 설치적 사진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삼차원이 사진에 포착될 때 생기는 착시 효과를 공간에서 가능한 모든 앵글로 시험한 설치적 사진의 확장판이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공간을 인지하는 방식은 조각가나 건축가의 감각이라기보다 여전히 사진가의 눈에 기댄다. 하지만 어떻든 평면이 아니라 공간에 펼쳐진 작업은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낳는다. 사진의 비물질성과 사물의 물질성 사이에서 조경재는 어떤 길을 개척할 것인가? 지켜볼만한 흥미로운 기대가 아닐 수 없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