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의 회화는 대상의
외형을 정확히 옮기기보다, 대상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발생한 감각과 흔적을 화면에 쌓아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초기에는 서양 건축 도감에서 본 고대·중세 건축물의 구조를 드로잉하며
선과 선이 이어지는 흐름에 집중했고, 이후 도심의 건물, 냉각탑, 학교 풍경, 목공실, 벽과
바닥의 흔적 등 자신이 실제로 마주한 주변의 장소로 관심을 옮겼다.
〈dissonance〉(2013)와 〈냉갑탑〉는 직선, 명도 대비, 차가운 색감, 두터운
물감의 충돌을 통해 대상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불안을 드러낸다. 작가는 테이프처럼 완벽한 선을 만드는
도구보다 자를 대고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방식을 택하며, 미처 마르지 않은 물감이 예상과 다르게 밀리고
충돌하며 남기는 흔적을 화면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인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한성우의 화면에서는 구체적인 풍경보다 물감의 물질성과 표면의 감각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무제〉(2016) 같은 작업에서 대상의 외연은 흐려지고, 물감이 문질러지고
긁히고 뭉개지는 과정이 전면화된다.
작가는 섬세한 붓질보다 나이프의 면, 대상의 원래 색보다 캔버스 위에서 비벼져 경계를 지우는 색을 사용하며, 대상의
외형보다 그 이면에 축적된 시간적 감각을 드러낸다. 이때 화면 위의 흔적들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면서
형태를 모호하게 만들고, 동시에 구체적인 형상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균형》에서 작가는
이러한 표면의 문제를 두 가지 시리즈로 구체화한다. ‘사계-환절기’ 연작은 계절과 계절 사이, 언어로 고정되지 않는 시간인 환절기를
흔적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상상한 장소를 그리고 지우는 제스처는 캔버스 위에 사건의 증거처럼 축적된다.
반면 ‘균형’ 연작은
작업실 내부의 벽을 경계로 나뉜 작업의 흔적을 실마리로 삼아 표면의 이미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룬다. 〈균형 (no.3, no.5, no.4)〉(2020)에서 세 폭의 화면은
서로 다른 질감과 색의 층을 통해 관객의 시선이 표면에 잠겼다가 다시 빠져나오게 만든다. 대상은 사라지는
듯하지만,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대상과의 거리, 보는 행위, 물감이 남긴 물리적 흔적이다.
《, 저기》 이후 한성우는 두터운 마티에르만을 밀고 나가기보다, 보다
얕은 표면, 목탄, 작은 화면, 꽃과 작업복 같은 구체적 대상,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여러 캔버스를
실험한다. 꽃은 작가에게 오래전부터 그리고 싶었지만 명확히 그릴 수 없는 대상이었고, “저기”라는 말은 특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릴
수 없는 것을 화면 안에 붙잡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를 대변한다.
《지평선을 맴돌며》에서는 작업이 ‘풍경’과 ‘장면’이라는 두 범주로 나뉘지만, 이 둘은 고정된 분류가 아니라 서로 전환될
수 있는 상태로 제시된다. ‘풍경’이 형상과 구성을 더 드러낸다면, ‘장면’은 붓질과 물감의 물성을 더 강조한다. 이처럼 한성우의 형식은 대상의 재현에서 출발해 표면의 흔적, 물질적
감각,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불확정성으로 확장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