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리 (b.1989) - K-ARTIST
고우리 (b.1989)

고우리는 건국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불안정하지만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 대하여

Works of Art

불안정하지만 연결되어 있는 관계에 대하여

주제와 개념

고우리는 인간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불안정한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고,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되짚어보는 과정으로 작업세계를 발전시켜나간다. 작가에게 타인과의 관계는 필연적인 삶의 조건이지만, 동시에 불편함, 불안, 공포,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감정의 마찰을 일으키는 자리이기도 하다. 초기 작업에서 고우리는 이러한 내면의 혼란을 화면 위의 신체적 행위로 옮기며, 감정이 말이나 서사로 정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다루었다.

〈Flexible Mark (weigh) 03〉(2017), 〈Flexible Mark (Crack) 02〉(2018), 〈Exterior2 04〉(2018) 등에서 캔버스는 단순한 바탕이 아니라, 감정이 부딪히고 긁히고 벗겨지는 표면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 작업은 인간관계에서 경험한 양가적 감정에 ‘틈’을 만들고, 그 틈을 통해 자신과 타인 사이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개인전 《알 수 없는 · 경계 · 순간 · 틈 · 겉》(대안공간 눈, 2018)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은 ‘겉’과 ‘경계’의 문제로 구체화된다. 작가는 캔버스를 칠하고, 구기고, 적시고,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화면에 여러 겹의 층위를 만들고, 그 위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감정과 그것을 둘러싼 모호한 것들을 투사한다.

이때 작업은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사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진심’과 ‘본질’을 찾는 몸부림에 가깝다. 손, 손끝, 손톱, 손날을 사용하는 행위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고, 물감의 유무와 표면의 탈락은 감정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2020년대 이후 고우리의 관심은 ‘관계 속 불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된 관계’로 이동한다. ‘Uncatchable, Sentimental’(2022) 연작에서 포착할 수 없는 감정은 손의 수행과 지우기의 과정을 통해 화면 위에 남고, 개인전 《하찮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향하여》(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3)에서는 캔버스와 바느질을 통해 얽혀 있는 관계의 불안을 마주하고 풀어내는 태도가 전면화된다.

〈하찮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 6(The trivial and pitiful but beautiful 6)〉(2023)처럼 바느질한 캔버스 위에 손의 흔적과 재료의 층이 더해진 작업은 관계의 상처를 단순히 치유하거나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안과 애착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흐름은 최근 개인전에서 더 확장된다.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온수공간, 2024)에서 고우리는 회화를 ‘친구’ 혹은 ‘모체’처럼 대하며, 회화와 회화 사이,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계속 조율한다. 〈무제-연결된 말(Untitled-Connected Words)〉(2024), 〈흐릿한 언어, 연결된 몸짓(Blurred Language, Connected Gestures)〉(2024), 〈연결된 말-복기 1(Connected Words-Review 1)〉(2024), 〈연결된 말-복기 2(Connected Words-Review 2)〉(2024)는 잘리고 이어진 캔버스의 몸을 통해 기억, 복기, 닮음과 다름의 관계를 보여준다.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소현문, 2025)에서는 여성들과 함께 바느질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성으로 읽혀온 자신의 작업을 다시 검토하면서도 결국 관심의 중심을 ‘인간’, ‘관계’, ‘감정’으로 옮겨간다. 고우리에게 관계는 완전히 이해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계속 마주하고 다시 연결해보아야 하는 불완전한 상태다. 

형식과 내용

고우리의 작업에서 형식은 감정의 전달 방식과 분리되지 않는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붓질을 남기기보다 손 전체, 손끝, 손톱, 손날을 사용해 표면을 밀고, 긁고, 닦아내며 감정의 강도와 방향을 화면에 남긴다.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올라가 손의 압력으로 선율과 파동 같은 흔적을 만들고, 캔버스를 구기거나 압축해 프라이머가 벗겨진 표면을 드러내는 방식은 그의 초기 작업에서 중요한 방법론이 된다. 〈Exterior2 03〉(2017)처럼 긁어낸 캔버스의 표면은 물감이 있는 곳과 없는 곳, 채워진 곳과 벗겨진 곳의 경계를 흐리며, 감정과 본질을 둘러싼 혼란을 물질의 상태로 보여준다. 
 
이러한 수행성은 우연적인 제스처에만 기대지 않는다. 김민관 비평가가 지적하듯, 고우리의 손은 붓을 단순히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훈련과 반복을 통해 하나의 매체이자 질료로 작동한다. ‘Uncatchable, Sentimental’ 연작에서 그리기와 지우기는 감정을 덜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작업을 더하는 방식이 된다.

표면을 지운 뒤 남는 것은 지워지지 않은 부분만이 아니라, 지운 자국과 남은 자국이 섞인 새로운 층위다. 이처럼 고우리의 화면은 하나의 형상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의 흔적, 물감의 탈락, 천의 질감, 표면의 두께가 합쳐진 하나의 총체적 표면을 형성한다. 
 
2023년 이후 작업에서는 바느질과 해체된 캔버스가 중요한 형식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캔버스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접고, 다시 붙이며, 그 과정에서 생긴 올 풀림과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Whispers upon Stroke of a Blur)〉(2024)은 조각난 캔버스를 이어 붙인 뒤 핸디코트와 몰딩페이스트 같은 무채색 계열의 물질을 손으로 이겨 바르듯 펼쳐낸 작업이다.

〈방황하는 바람 사이에(Between Wandering Winds)〉(2024), 〈무제-희미한 단어(Untitled-Faint Words)〉(2024) 등에서도 회화 표면은 더 이상 정면성을 가진 평면에 머물지 않고, 상처 입고 봉합된 피부처럼 작동한다. 이때 바느질은 단순한 수공예적 장식이 아니라, 잘린 표면을 다시 연결하고 관계의 흔적을 남기는 수행적 행위가 된다. 
 
최근 작업에서는 회화가 개인의 몸을 넘어 타인과 함께 수행되는 장으로 확장된다.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에서 고우리는 자신과 멀거나 가까운 관계에 있는 여성들을 초대해 바느질 기반의 개인 작업과 공동 작업을 진행하게 하고, 이후 사적인 이야기를 편지로 옮기는 과정을 마련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캔버스는 작가 혼자 다루는 표면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손과 시간, 이야기가 교차하는 장소가 된다.

〈이렇게 저렇게(This Way, That Way)〉(2023-2024)처럼 바느질한 캔버스에 퍼티와 실을 사용한 작업은 고정된 형태보다 수축과 팽창, 연결과 느슨함의 상태를 보여준다. 고우리의 형식은 손의 직접적인 수행에서 출발해, 캔버스의 해체와 봉합, 그리고 타인과의 공동 수행으로 확장되며 회화와 설치, 물질과 관계 사이를 오간다.

지형도와 지속성

고우리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핵심적 고민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어떻게 물질과 행위로 옮길 것인가에 있다. 그는 불안, 상처, 혼란 같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기보다, 캔버스를 만지고 훼손하고 다시 연결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지나간 자리를 남긴다.

이 점에서 그의 회화는 감정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감정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다. 화면 위의 긁힘, 벗겨짐, 얼룩, 봉합, 접힘은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불완전한 감정의 변화와 맞닿아 있으며, 관객은 그 표면을 통해 말로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의 구조를 감각하게 된다.
 
고우리는 회화를 단순한 이미지의 장이 아니라 ‘접촉의 장’으로 다룬다. 그는 단순한 붓질, 색면, 이미지, 서사의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손의 압력과 캔버스의 반응, 천의 손상과 봉합, 재료의 탈락과 재도포를 통해 회화가 하나의 신체처럼 반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기의 〈Flexible Mark (weigh) 03〉와 〈Flexible Mark (Crack) 02〉가 감정의 충돌을 신체적 흔적으로 기록했다면, ‘Uncatchable, Sentimental’ 연작은 그 흔적의 축적과 지우기를 통해 포착할 수 없는 감정의 운동성을 드러냈고, 〈무제-연결된 말〉과 〈흐릿한 언어, 연결된 몸짓〉은 캔버스 자체를 잘리고 이어지는 몸으로 전환했다. 그의 작업에서 회화는 눈으로 보는 대상이기 전에, 만지고 견디고 다시 붙이는 표면이다.
 
최근의 흐름은 고우리의 작업을 개인의 감정 기록에서 관계의 구조를 실험하는 방식으로 옮겨놓는다. 《하찮고 처연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향하여》에서 바느질은 불안정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연결의 은유로 작동했고, 《흐릿함을 쓰다듬으며 건네는 말》에서는 회화와 회화 사이의 기억과 복기를 다루는 장치가 되었으며, 《흐린 친구에게 보내는 모과》에서는 실제 타인과의 협업과 대화로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주의적 독해의 가능성은 유지될 수도 있지만, 작가가 스스로 밝히듯 그의 관심은 특정한 정체성의 표상에 머물기보다 인간, 관계, 감정의 구조를 향해 이동한다. 따라서 고우리의 작업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관계 맺는 존재로서 인간이 반복해서 마주하는 불완전함을 다루는 방향으로 열려 있다.

고우리는 회화의 표면을 감정의 피부이자 관계의 기록으로 다루며, 앞으로도 재료와 신체, 타인과의 협업을 통해 회화가 감정을 어떻게 보존하고 다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넓혀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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