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의 시각 언어는 색채, 기하학적 도형, 타이포그래피, 패턴, 기호 등 그래픽 디자인의 기본 요소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한 시각적 형식을 추출하고 분류한 뒤 새로운 조합과 배열을 통해 독자적인 구성을 만들어낸다. 강렬한 원색과 명료한 형태, 반복되는 패턴이 특징적이며, 인쇄와 편집 과정에서 사용되는 정렬, 비례, 반복의 원리를 조형적 방법으로 활용한다.
이러한 구성은 출판물의 지면에서 출발해 벽화, 회화, 조각, 공간 설치 등으로 확장되며 매체에 따라 서로 다른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개별 이미지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과정에는 형태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디자이너의 판단이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SET’ 연작은 김영나의 디자인 방법론이 미술의 형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제작한 디자인 작업에서 색채와 기하학적 요소를 추출하고, 원래의 용도와 내용을 제거해 분류한 샘플북 〈SET〉(2015)을 제작했다. 이후 책의 페이지를 전시장 벽면에 확대하거나 재배열하면서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벽화 연작으로 발전시켰다.
2023년 〈SET v.24〉에서는 16m가 넘는 벽면을 활용해 이미지의 반복과 리듬을 강조했으며, 2024년 〈SET v.25: View N〉에서는 기존의 비례를 변형해 새로운 구성을 시도했다. 여기에서 파생된 ‘조각(Piece)’ 연작은 벽화의 일부를 캔버스로 옮겨, 이미지가 지면과 건축적 공간, 회화의 표면 사이를 이동하면서 갖게 되는 조형적 특성을 탐색한다.
2009년부터 이어온 ‘발견된 구성(Found Composition)’ 연작은 수집한 재료를 직접 다루고 조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A4나 A5 크기의 종이를 바탕으로 스티커, 포장지, 봉투, 잡지 등 일상적인 인쇄물을 붙이고 떼거나 잘라내며 즉흥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작업은 디자인을 위한 스케치이자 독립적인 작품으로 기능하며, 수집된 재료의 형태와 촉감, 우연한 배열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2023년 《TESTER》와 2024년 《Easy Heavy》에서는 이러한 관심이 다양한 물성을 지닌 오브제와 회화로 확장되었다. 독촉 문구를 부드러운 모직으로 구현한 〈파이널 노티스〉(2023), 스티커의 글자를 떼어낸 빈자리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OP.QUS·TRVWX·Y·Z〉(2024) 등은 문자와 이미지, 재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차이를 드러낸다.
공간의 건축적 특성과 관람자의 움직임 또한 김영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조형 요소이다. 작가는 전시장의 기둥과 벽면, 높이와 동선 등을 관찰하고, 공간에 이미 존재하는 조건을 작품의 구성 원리로 활용한다. 《Easy Heavy》에서 선보인 〈H1276〉(2024)은 전시장 구조물의 높이인 127.6cm를 기준으로 벽면을 가로지르는 작품으로, 건축적 수치가 이미지의 배열과 설치 방식을 결정한다.
이러한 공간적 접근은 2026년 KAIST 미술관 개인전 《느슨한 시간》에서 더욱 감각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 옥상의 기둥과 계단, 바닥에 설치된 거울을 활용한 세 작품은 관람객이 걷고 오르내리며 시선을 옮기는 과정에서 바람과 하늘, 자신의 모습을 경험하도록 구성되었다. 작품의 형식이 관람자의 신체적 경험과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완성된다는 점에서 그의 매체 실험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