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사람들이 거울 앞에 있는 나르시스를 상상한다면 유리와 금속의
저항은 그의 시도들에 있어서 하나의 장벽으로 대립하게 된다.” “거울은 그에게 그가 포착하지 못하는
하나의 ‘뒤편 세계’를 가둬 두고 있다. 이 세계란 [이곳에서 나르시스가]
자신을 파악하지 못한 채, 좁힐 수는 있겠지만 뛰어넘을 수는 없는 거짓 간격을 통해 그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세계이다.”5)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거울은 만질 수도 없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동떨어진 세계이다.
연결된 것 같지만, 고립된 영역이다. 인간은 거울로 자신을 볼 수 있으나 거울상에 손을 맞댄 순간조차 붙잡을 수 없다. 모든 세계를 담아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거울 속의 신비로운 평행 세계는 대상을 불완전하게 반영한다. 자기를 인식하는 도구로서의 거울은 마주한 모든 것을 반영하는 무한이지만 인간이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거울상과
매끄러운 표면이기에 수많은 얼굴을 가진 동일자이면서 타자이고, 닮았지만 다른6) 주체와 완벽히 일치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거울은 거리를 만든다. 그것은
하나의 다른 공간, 즉 자아에 대한 우리의 개념들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 공간을 만든다.” 거울이 제공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자아의 이미지는 “변형”되거나 “다른 누군가가 된 자아의 모습을 제공한다.” “한 면 위의 ‘실재적인’ 것이
지닌 불완전성을 제시하기 위해 거리와 차이를 이용”하는 거울은 “자아의
타자로의 예측 불가능한” “변신을 제공한다.”7) 거울은 “사물을 하나의 광경으로” 바꾸고,
“다시 그 광경을 사물들로” 바꾸며 “나 자신을
타인으로, 타인을 나 자신으로 바꿔 놓는 우주적 마술의 도구이다.”8) 이와
같은 거울의 속성은 설치 각도 때문에 거울 앞의 관객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동시에 〈Never Again〉
속 인물과 눈을 맞추게 되는 상황 덕분에 한층 뚜렷해진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단발의 인물이 관객을
보는 것인지 거울에 비친 관객의 상을 보는 것인지 모호하기에 더욱 그렇다.
실재하는 작품이 아닌데도 글을 쓰는 동안 계속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개인전
《Create Outlines》(2022)의 도록 속 전시
전경 사진에서 작품의 자리를 대신한 파란 색면인데 크로마키(chroma key),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Microsoft Windows)의 치명적 오류 시 등장하는 블루스크린(Blue
Screen of Death), 깊은 물 혹은 하늘의 색채 같다. 작가는 자기 작품의 시작이
현존하지 않는 디지털 이미지라는 사실에 근거해 컴퓨터 그래픽 작업 전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영화 촬영에 쓰이는 블루스크린의 색을 입혔다. 벽에 걸리고 좌대 위에 놓인 -〈Head〉(2022)의 배경색과 동일한-파란 색면들은 상이 반사되도록 주석과
납의 혼합액인 텡(tain)을 칠한 거울의 뒷면9)을
닮았다. 이는 무한한 반영체로서 거울이 가진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그것이 단지 평면일 뿐이라는
진실을 폭로한다. 이미지의 이면을, 자신의 내면을 들춰보고
싶어 하는 작가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옥승철에게 모니터는, 캔버스와 스크린 그리고 거울은 “공간
속의 다른 공간,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통로(구멍)와 같다.” 그것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 모두 창작의 동력이 된다. 아주 고요하고 차분하지만 언제든 고정된 이미지와 관념을 흩어버릴 수 있는 이 표면은 너무나 매력적인 여러 겹의
세계이다.
1) 본 평론은 전시 《매끄러운 돌밭 2》 (쉐마미술관,
2023.9.1.~2023.10.8.) 도록에 실린 「매끈한 표면, 여러 겹의 세계」를
옮긴 것입니다.
2) 윤난지, 『현대미술의
풍경』, 한길아트, 2012, pp. 65-66.
3) 사빈 멜쉬오르 보네, 『거울의
역사』, 윤진(역), 에코리브르, 2001, p. 123.
4) 사빈 멜쉬오르 보네,
2001, p. 123, p. 287. ; 벵자맹 주아노,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 신혜연(역), ㈜북이십일 21세기북스, 2014, p. 47.
5) 루이 라벨, 『나르시스의
오류』, 이명곤(역), ㈜하움출판사, 2022, p. 19.
6) 사빈 멜쉬오르 보네,
2001, p. 17.
7) 로지 잭슨, 『환상성』, 서강여성문학연구회(역), ㈜문학동네, 2004, p. 117.
8) 메를로-퐁티, 『현상학과 예술』, 오병남(역), 도서출판 서광사, 2021, p. 302.
9) 루이 라벨, 2022,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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