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相》 © Space ISU

옥승철의 회화 작업은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작한다. 먼저 그는 여러 애니메이션과 만화 속에서 인물이 클로즈업된 장면들을 스크린캡쳐(screenshot) 한다. 이 캡쳐이미지들을 컴퓨터상에서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 프로그램을 통해 마우스로 재조합해 새로운 얼굴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지털 벡터 이미지를 프로젝터로 캔버스에 비추고 정교하고 정밀하게 옮겨 그린다. 애니메이션적인 선명한 색감을 내기 위해 아크릴물감을 여러 차례 두텁게 칠하면서도 붓질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매끄럽게 처리한다. 이렇게 체계적인 과정을 거쳐 옥승철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동안 만화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애니메이션에 나올법한 캐릭터를 새로 고안해 그리는 미술가들이 많았지만, 옥승철은 기존 만화 캐릭터 형식을 재구성해 이름 없는 캐릭터를 만들고 얼굴만 클로즈업하는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캔버스와 포토샵, 회화와 만화, 전유와 창조, 참조와 변주를 넘나드는 옥승철의 독특한 작품제작법은 그간 그의 작업을 논하는 여러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져 왔다. 2018년의 《언 오리지널(un original)》에 이어 2020년 《제이펙 서플라이(JPEG SUPPLY)》 등 그의 지난 개인전 제목들도 이 점을 강조한 것으로, 논의의 방향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인터넷 디지털 문화 관련 주제들로 이끄는 데 일조했다. 옥승철의 작품제작 방식이 중요하고 이론적으로도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세 번째 개인전을 앞두고 우리는 그 과정의 ‘결과물’이 나타내는 형식적 미와 도상적 의미에 대해서도 논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이 글에서는 클로즈업(close-up), 아이콘(icon), 이번 전시제목이기도 한 《相(서로 상, 빌 양)》, 이렇게 세 가지 개념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꼼꼼히 고안된 옥승철의 그림들은 즉각적으로 관람자에게 어필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힘을 가진다. 정제된 강렬함이 특징인 옥승철의 화면구성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클로즈업’이다. 옥승철은 얼굴만 클로즈업한다. 배경은 그리지 않고 얼굴만 강조하여 극적으로 표현한다. 얼굴로 화면을 가득 채우거나, 머리와 목까지 그리고 배경은 단색으로 칠하거나, 목이 잘린 채 동동 떠있는 머리만 그리기도 한다. 이 얼굴들은 전형적 만화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무표정이거나 드라마틱한 표정을 짓고 있다. 클로즈업에 대해 옥승철은 “낯설게 보이도록, 이상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보통의 유명 만화 캐릭터들이 친근감을 주도록 디자인되는 것과는 달리, 옥승철의 클로즈업은 이 얼굴들의 형식과 조형성을 드러내고 인위성과 언캐니함을 강조한다. 같은 이유에서 그는 이 인물들에게 이름이나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의 제목 《相》은 옥승철이 제안한 것이다. ‘모양 상像’, ‘형상 상狀’, ‘코끼리 상象’ 등 이미지를 가리킬 때 쓰이는 ‘상’자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서로 상相’은 사전에서 거의 스무 개의 뜻을 나열하고 있는 별난 한자다. 옥승철이 공식적 인터뷰를 자주 갖지 않고 작업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아끼는 편이지만, 그가 전시제목으로 추천한 相자는 사실 그의 작업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木(나무 목)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의 相자는 나무와 눈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하여 ‘서로 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본래 의미는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를 살펴본다고 하여 ‘관찰하다’ ‘자세히 보다’ ‘고르다’ 등이 있다고 한다.

얼굴과 관련 있는 면상이나 관상을 말할 때 쓰이는 한자도 바로 이 ‘서로 상’자다. 그런데 相는 ‘서로 상’자일 뿐만 아니라 ‘빌 양’자이기도 하다. ‘빌 양’자로서의 相은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비는 토속 신앙적 행위와 연결되어 ‘빌다’ ‘푸닥거리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서로 상’이든 ‘빌 양’이든 相자는 나무와 사람의 눈이 만나 어떤 관계가 형성된 모습을 가리킨다. 相자는 컴퓨터나 캔버스 앞에서 얼굴에 그리는 데 집중한 옥승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기묘하게 얼굴만 클로즈업한 옥승철의 그림을 눈앞에 마주한 관람자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옥승철이 천착하는 세계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이 관계하여 만들어내는 이미지(相)의 세계라 말할 수 있겠다. 이 신비롭고 복잡한 이미지의 세계에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얼굴 상들이 지닌 묘한 매력과 힘이다. 나무가 인간의 눈을 마주했을 때 어떤 인상(image)을 남기는 것을 넘어, 일개 나무 이상의 특별한 의미나 힘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힘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든 인간이 부여한 것이든, 어쨌거나 이런 현상 때문에 성상(聖像) 즉 이콘(ikon)이란 게 만들어졌고, 신 대신 이콘이 숭배의 대상이 되자 이를 죄로 여긴 사람들에 의해 성상파괴주의운동(iconoclasm)도 일어난 것이다.

‘아이콘’은 전통적으로 성상이나 성화를 의미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특정 분야에서 대표적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을 가리키는 데에 더 자주 사용되는 단어다. 그 주인공이 성인이든 사회 권력자이든 유명 연예인이든, 모든 아이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얼굴이다. 인물상에서 얼굴은 생명과도 같은 존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상을 의도적으로 훼손할 때 머리만 베어버리는 일종의 풍속 같은 게 있는 것도 얼굴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얼굴은 일종의 인간성(humanness)을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들은 동물이나 물건을 의인화할 때 얼굴을 그려 넣고, 얼굴이 없는 로봇보다 있는 로봇에게 더 쉽게 감정(호감이든 불쾌감이든)을 느끼게 된다.
 
옥승철의 인스타그램에는 수많은 얼굴 사진들이 올라와 있는데, 주로 그의 작품 사진들이지만 불상의 얼굴 사진도 상당수 보인다. 그는 작업실에도 불상을 여러 개 가져다가 그가 제작한 두상들과 나란히 놓았다. 그와의 대화는 종종 불상과 관련된 것들로 이어졌다. 그는 불자는 아니지만 국내외 이곳저곳 불상을 찾아다니며 감상하고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을 기준으로 불상을 수집할 정도로 불상 조각에 대해 조예가 깊고 남다른 열정을 보인다. 그는 얼굴 상들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시대별 흐름을 갖춘 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불상에 끌린다고 한다. 불상과 그가 그리는 만화 캐릭터 같은 얼굴들 사이에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누군가의 초상은 아닌데 오랜 시간에 걸쳐 참조에 참조를 거듭해 미묘하게 변하면서도 어느 정도 유지되어온 일정한 형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옥승철은 어떤 양식이나 형식을 구성하는 개별 이미지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그 흐름과 구조를 추적하는 데에 관심이 있고, 본인의 작업에도 다양한 출처로부터 여러 참조들을 끌어와 결합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컨대 “석고상”을 뜻하는 〈Plaster Statue〉라는 제목의 회화 작품 속에서 소녀가 머리를 젖힌 각도는 (입시미술제도에서 “석고데생”으로 유명한) ‘줄리아노 데 메디치’ 석고상에서 따온 것이다. 이 출처에 대한 정보 없이 〈Plaster Statue〉를 마주하게 되는 관람자는 이 특징적인 각도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적인 느낌’만 받게 된다.

그러다가 줄리아노 석고상에 대한 언급을 들으면 ‘아하!’ 무릎을 치게 만들 정도로 옥승철은 레퍼런스 이미지들을 절묘하게 적용해 섞는 센스를 보여준다. 옥승철은 단순히 만화 이미지를 따라 그리거나 서브컬처의 대중적 이미지에 기대어 관객에게 어필하려는 여느 이삼십 대 작가들과는 다르다. 그는 이미지들의 정체와 흐름을 조사하는 시각적 연구자이자 자기만의 철학과 감각과 전략을 겸비한 아티스트다. 여러 차례 미팅과 대화를 통해 그는 따뜻한 차분함과 이지적인 냉정함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업 철학과 방식에도 반영되어 드러나는 굉장한 강점이자 장점이다. 그의 앞으로의 작업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캔버스크기나 매체를 바꿔가며 이름 없는 얼굴들을 꾸준히 세상 밖으로 내보냈고, 이 얼굴들은 어느덧 미술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이콘 반열에 오르고 있다. 이번 개인전 《相》에서는 모든 작품을 마치 프로파간다 초상화들처럼 사람 눈높이 위에 설치하여 관람자들이 우러러보도록 할 예정이다. 약 스무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옥승철이 추구하는 실험의 스펙트럼과 相의 세계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이수진에 있습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