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전시 전경(기체, 2023) ©기체

오늘의 이미지는 날마다 실재로부터 한달음씩 멀어진다. 매 순간 갱신되는 인터넷 가상현실 속에서 재현의 산물들은 다시금 복제되고, 자꾸만 낡아지고, 낯선 무엇으로 변모하다 금세 잊히기를 반복한다. 여기,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모호한 잔상만을 남긴 채로. 이미지는 때로 자신의 기원과 관계없는 지금 이 곳의 맥락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 향유하는 이의 기호에 따라 편집되고, 보정되고, 재구성된 결과물은 이내 그 자체로서 고유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이번 전시명 《트로피》는 동명의 연작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온라인을 유영하는 이미지의 한 순간을 포착한 낱장의 결과물을 떠올려 본다. 마치 눈부신 기념품 같은 장면들. 그렇게 붙잡힌 이미지를 자유로이 편 집하고 보정하는 요즈음의 일상을 되짚어 본다. 그 몸짓이 만들어내는 화면 모두의 유일무이함을, 수없이 많은 경우의 서로 다른 원본들을. 옥승철은 동시대 매체 환경 속 이미지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을 좇는다. 재생산된 이미지의 원본성에 대한 질문이다.

온라인 가상현실을 경유하는 이미지는 복제와 변형의 원리로부터 재탄생하고, 왜곡과 편집의 언어를 구사하며,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유통된다. 작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다방면의 이미지를 수집한다. 모은 자료들을 변형 및 가공하여 새로운 장면으로 재구성한 뒤 화폭에 옮겨낸다. 작업 과정 속에서 저마다의 이미지는 본연과 다른 정체성을 구축한다. 원형에 서 멀어질수록 의미의 가능성은 확장된다. 창작의 여정 가운데 작가의 주관적 선택이 지속적으로 개입한다.

 
1.
동일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입장에서 사실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현상을 가리켜 '라쇼몽 효과’라고 한다. 세 개 화면으로 구성된 ‘라쇼몽 Rashomon’(2023) 연작에서 인물은 때마다 상이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일관된 윤곽 내에 자리 잡은 눈썹과 눈동자, 입 모양새의 변주에 따라 얼굴이 드러내는 감정이 달라진다. 높다란 배경에 드리운 색채가 각 표정에 호응한다. 하나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세 가지 재현은 곧 같은 상황에 관한 각기 다른 판본의 해석들이다. 미상의 인물이 실제로 어떠한 표정을 지었는지는 어느덧 중요하지 않게 된다. 화자의 관점에 따라 진실은 매번 다른 진술로서 탈바꿈한다. 이미지는 그저 그 자체로서 갱신될 따름이다.
 
화면 안의 얼굴들이 환기하는 것은 보는 이 각자의 잠재의식에 깃든 어떠한 원형이다. 조각난 원본의 유령은 때로 사람이고, 종종 만화책 표지이며, 스치듯 보았던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모두의 연상에는 적당한 근거가 있다. 마치 라쇼몽 효과처럼. 디지털 스크린처럼 매끈한 화면은 엷은 물감을 수차례 덧입혀 올린 세심한 공정의 결과물이다. 3 요철 하나 없이 반듯한 평면이 폭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연다. 회화의 물성으로 옮긴 가상의 얼굴은 현실의 부피를 지닌 또 다른 실체가 되어 우리의 지금을 응시한다. 관객의 시선 높이 언저리에서, 얼굴들은 서로를 때로 대면하고 때로 외면한다. 벽면의 높다란 창문을 통하여 현재의 빛이 내리다. 사실과 허구를 동시에 품은 캔버스들은 제각기 다른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매 순간 갱신되는 날들 가운데 저마다의 시공을 차지한 각각의 이미지는 오롯이 유일한 원본의 화면이다.

 
2.
전시 공간 내 작은 방에서 ‘트로피 Trophy’(2023) 연작을 만난다. 묵직한 상패를 연상시키는 긴 머리의 두상 이미지를 회화 및 조각의 형태로 변주한 결과물이다. 회화의 화면 위에서 〈트로피〉들은 각각 빛나는 금박, 푸른 청동, 거친 석재를 연상시키는 색채로서 표현된다. 크로마키 스크린의 초록이 이미지들의 배경을 메운다. 캔버스 내 여백뿐만 아니라 공간 벽면 전체를 도색하여 색채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발견된 이미지는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맥락 안에 놓일 수 있다. 좌대 위에 자리 잡은 조각 작품은 매끈한 금박 표면으로 마감된 모습이다. 비로소 삼차원의 부피를 획득한 얼굴의 기념비는 보다 입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매끈한 금빛 피부를 쓰다듬듯, 한 움큼 그 무게를 그러쥐듯 이미지의 감촉을 가늠해 본다. 살아 숨쉬는 현실의 장소 한 편을 차지한 조각의 몸은 전에 없던 뒷모습을 내보인다.
 
옥승철의 〈트로피〉들은 시시각각 정체를 탈바꿈하는 이미지의 특정 지점에 꽂아 둔 일종의 표지와 같다. 어느 찬란한 순간의 전리품처럼, 포획된 얼굴들은 반짝이다 이내 서늘하게 굳어진다. 또 다른 정체, 새로운 존재로서의 이미지들. 최초의 무엇이 되고자 하는 순진한 소망을 미루어둔 채 화면은 같은 이미지의 다 른 해석이 만들어낸 각자의 유일함을 호소한다. 하나의 얼굴 위에 때마다 달리 드리운 색조는 각각의 〈트로피〉로 하여금 독립된 물성이도록, 저마다 서로 닮은 타인이도록 만든다.

 
3.
얼굴은 그 자체로서 상징적이다. 신비한 믿음의 표상을 훔치는 도굴꾼도, 적장의 권력을 탈취한 전리품으로서의 승전 기념물도 유독 타인의 얼굴을 탐한다. 옥승철의 화면은 얼굴의 근접화면을 지속적으로 비추어 낸다. 사실적 묘사가 아닌 만화적으로 가공된 추상적 형태로서다. 표현의 특성 탓에 얼굴 내 구조적 생김새는 극도로 단순화한다. 화면은 개별 인물의 구체적 정체성을 감추어 둔 채 표정이 드러내는 감정만을 극대화한다. 그리하여 근접화면 속 얼굴들은 오직 정동의 순수한 질료가 된다. 얼굴이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도, 표정을 잠시만 달리해도 보는 이와의 관계 속 정서의 향방이 변화한다. 그렇기에 관객을 등진 채 외면하는 〈얼굴 face〉(2023)들은 역설적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도한다. 표정을 숨긴 이들의 상상된 얼굴은 때로 〈이로치 Irochi〉(2023)가 내비치는 곤란보다 더욱 정동적이다.
 
전시장 내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선마다 눈빛들이 서로를 밀고 당긴다. 가만히 응시하다 곤란한 듯 회피하고, 뚫어질 듯 바라보다 금세 고개 돌려 떠나가는 얼굴들. 저마다의 얼굴이 우리의 기억 속 모호한 원형의 정체를 묻는다. 그 유령은 과연 진짜였던 적 있었느냐고 말이다. 누구나 조금씩 달리 기억하는, 그렇기에 무한한 방식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품은 진실 섞인 허구의 원본이 애초에 무엇이냐고. 끊임없이 갱신되는 실재의 날들 가운데 원본과 복제의 경계는 매번 흐릿해진다. 옥승철은 오늘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이미지들 몇몇에 깃발을 꽂아 둔다. 특정한 순간의 이미지를 여기 유일한 물성으로서 새겨두는 일이다. 지금의 찬란한 증표로서, 잊히지 않기 위한 표지로서다.

 
1 마리사 올슨은 인터넷 시대 조형언어를 가리켜 '복사 붙여넣기의 미학'으로 지칭했다. 옥승철의 작업은 올슨이 '인터넷 이후의/양 식의 예술(art after the internet)'(2006)에 관한 설명의 연장선상에서 고안한 용어 '포스트-인터넷 아트(Post-Internet Art)' (2008)의 범 주 안에서 자주 거론된다.
2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원작 표제. 훗날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아쿠타가와의 선집 라쇼몽(生門) 및 그 밖의 이야기』(1915-1921)에 수록된 단편소설 중 「라쇼몽과 「덤불 속을 각색하여 제작한 영화 (1951)으로부터 '라쇼몽 효과 (Rashomon Effect)'라는 신조어가 파생되었다.
3 옥승철은 중앙대학교 학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다 서양화로 전과하여 졸업한 이력이 있다. 주로 서양화 재료를 다루지만 한국화 채색 습관이 남은 면모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에서 돋보인다.
4 질 들뢰즈, 『시네마 1: 운동 이미지 유진상 옮김, (서울: 시각과언어, 2002), p. 197; Gilles Deuleuze, Cinema 1: The Movement Image, trans. Hugh Tomlinson and Barbara Habberjam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p. 103.

References